이야기/내가 만난 사람

김지숙 설치미술가 - 어둠이 일궈낸 고집과 집념

이동권 2022. 9. 25. 22:14

김지숙 작가


어두운 빛이 쏟아져 내렸다. 으스스한 숲 같았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고 달콤한 꽃향기가 피어올라도 아무런 감흥조차 느끼지 못할 만큼 전시장 안은 수척하고 고요했다. 마치 시간의 물결에 휩쓸린 한 나그네가 쓸쓸한 꿈속에서 자아를 찾아 헤매는 모습처럼 매우 몽환적이었다.

김지숙 작가의 작품에 드리운 어둠은 아득한 광막이었다. 어느 한순간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태어나고 자라면서 그의 영혼 속에 천착된 하나의 상 같은 것이었다. 융화된 생활은 아름답지만 혼자만의 행복이 즐겁지 않은 것은 그 무엇보다도 슬픈 일. 아무런 파란도, 동요도 없이 텅 빈 마음으로 그의 어두운 숲을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김 작가는 밝고 환한 미소를 가졌다. 그러나 그 미소 속에는 ‘삶의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 또는 ‘소통의 부재’에서 비롯한 불안함 같은 것이 스며들어 있었다. ‘고양이는, 친구들은, 주위 사람들은 나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런 시선에서부터 복잡하고 무거운 사색은 시작되고 있었으며, 이러한 생각은 자연스럽게 어두운 빛을 뿜어내게 했다.

“전시장을 더 어둡게 하고 싶었어요. 온통 검은색으로요. 마음이 어두워요. 밝은 생각이 들지 않아요. 영화를 봐도 공포영화만 봐요.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데로 행동하는 거예요.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밝은 달을 보면서 느껴지는 우울함. 그 우울함이 정말 좋아요.”

괴상하게 어두울 것도, 뭔가 특별할 것도 없는 일상이었을 것이다. 그의 작품도 자신의 내면에 두껍게 쌓인 한밤의 공상, 혹은 어린 시절의 기억이나 자질구레한 일상의 단면일 뿐이다. 그러나 그의 마음속에 드리운 어둠은 일상을 되새김질하는 자잘한 성찰을 만들어냈고, 이는 다시 어둠으로 확장돼 그의 삶과 작품에서 여과 없이 표출됐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어두운 가운데에서도 우울하지 않고 은은하며, 가볍지 않고 진중했다. 가끔은 느리고 고요한 것이 빠르고 소란스러운 것을 제압하는 경우가 있다. 바로 그의 작품이 그러한 경우다. 그의 나무 조각에서는 방황과 시련이 가르쳐주는 지혜를 터득하기 시작한 젊은이의 고뇌가 깊게 느껴진다.

한편에서는 잘게 부서진 톱밥을 머리에 뒤집어쓰고 누워있는 나무 여인이 있었다. 톱밥은 나무의 부유물로, 서로 다른 질감을 가지고 있지만 매우 잘 어울리는 재료다. 이 여인은 피할 수 없는 현실에 끌려 다니거나 강요된 삶에 억압된 채 살아가고 있는 여러 군상들, 그리고 구세대나 낯익은 것에서 벗어나기를 갈구하는 우리 시대의 절규 같은 것을 연상시켰다. 또 밤마다 머나먼 사색의 바다를 몇 번이고 왔다 갔다 했을 작가의 모습과도 자연스럽게 교차됐다.

김 작가는 나무작업을 주로 한다. 돌이나 금속보다는 작업이 수월한 편이지만 보존이 용이하지 않아 작가들이나 콜렉터들이 꺼려하는 소재다. 나무는 불이 나면 타버리고, 물이 스며들면 썩어버리며, 태양에 그을리다 보면 쪼개지고 만다. 제아무리 잘 만들어도 조그만 힘에 흠이 날 정도로 무른 게 나무다. 그러나 그는 나무의 속성과 깊이에서 예술의 지향점을 발견하고자 했다.

“철이나 돌 같은 차가운 작업이 싫었어요. 정해진 형식 없이 자라는 나무의 나이테 같은 것이 제가 추구하는 예술과 맞는다고 생각해요. 나이테는 원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돼서, 순간순간이 쌓여서 만들어지잖아요. 다른 재료로 작업을 하면 돈도 벌고 그렇겠지만, 작가라면 고집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나무가 좋아요. 또 미니멀한 것보다는 작품에 많은 것을 표현하고 싶어요. 힘겨운 노동이 느껴지고, 잘 만든 작품을 보면서 멋있다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저마다 웅크린 채 마음 구석구석에 쌓여 있는 이야기를 속삭이는 나무들을 보면서 변화의 위대성을 다시 한번 느낀다.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가고, 그 속에서 오래도록 머무는 것만큼 가슴 벅찬 일이 있을까. 이제 예술가로서 초입에 발을 내민 그의 행보가 나무 조각의 선구자로, 고집스러운 풍토를 만들어내는 예술가로 알려지길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