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내가 만난 사람

류기형 우금치 예술감독 - 우금치는 튼튼했고 달랐다

이동권 2022. 9. 25. 21:39

류기형 민족예술단 우금치 예술감독


민족예술단 우금치를 만나기 위해 대전 예술의전당을 찾았다. 단원들은 한두 시간 앞으로 다가온 공연 준비로 모두 부산한 모습이다. 만남은 잠시 미룬 채 티켓을 받아 들고 공연장 안으로 들어갔다.

마당극 ‘쪽빛 황혼’이 펼쳐지고, 얼마지 않아 나는 몰래 눈물을 훔쳐야 했다. 선천적으로 여린 성정을 가진 사람들이 보기에는 희열 가득한 장면의 연속이었다. 마을을 지키는 당산신과 농촌 마을 젊은이들의 흥겨운 춤사위에 이어 노부부의 서울 생활이 시작되자 눈앞이 한꺼번에 캄캄해졌다. 그런 와중에도 배우들은 수줍은 듯 몸을 비틀고, 얼굴을 붉히며, 농을 털어냈다. 날씬한 허리를 뒤뚱거리고 눈을 휘둥그렇게 뜨며 박장대소하다 간질간질한 입담으로 좌중을 울리고 웃겼다. 울다 웃으면 엉덩이에 뿔이 난다고 그랬는데, 저절로 감정이 오락가락이다. 정말 뿔이 나는 것 같다.

공연이 끝난 뒤 류기형 예술감독이 나에게 "10년 더 해도 괜찮을 것 같지 않아요?"라고 묻는다. 노인고령화, 노인복지문제가 우리 사회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으며, 머지않아 우리나라의 노인인구도 천만 명에 이르게 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나는 분명 그렇게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해외 무대에 올려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1984년부터 전국적으로 민중문예운동이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민중에 의해 생산되고 소비되는 문화를 꿈꾸는 학생운동 세력이 주축이 돼 문화예술단체를 만들고 사회적 이슈들을 주제로 예술 활동을 벌였으며, 민중들이 함께 즐기고 어울릴 수 있는 사회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우금치도 그러한 토대 위에 탄생했고 저항했으며, 현장과 무대를 오가며 사회성 짙은 메시지들을 전달했다.

“현장에서 했던 공연들을 작품으로 만들어가다 보니까 관객과 배우의 관계가 형성이 됐고 거기에서 매력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1987년부터 전문극단을 조직하고 1990년 우금치로 개편한 뒤 본격적으로 활동하게 됐죠.”

1990년대 정치 지형이 점점 변하면서 민중문예운동은 쇠퇴기에 접어들었다. 단원들도 하나둘씩 떠났고, 관객들의 요구도 달라지기 시작했으며, 이에 따라 문예운동도 새로운 방향 설정이 필요했다. 류 감독도 “요즘 단체 분위기는 예전과 많이 다르다”면서 “단원들이 물갈이되면서 전체보다는 개인 중심으로 가는 부분도 있다”고 말했다.

민족예술단 중에서 소위 ‘잘 나가는’ 단체가 우금치다. 세상의 변화에 따라 예술전문성을 확보하면서 사회고발적인 운동성, 소외된 사람에 대한 내용에 천착했던 결과다. 이러한 밑바탕에는 우금치의 단원들의 자세도 큰 지지대 역할을 했다. 단원들은 배우로서 역량을 쌓아가는 것 못지않게 극단 운영과 관계된 모든 것들을 자신의 일처럼 한다. 류 감독의 말을 빌리자면 “우금치 단원이라면 기본”일 정도다. 

 

마당극 ‘쪽빛 황혼’에 출연한 류 감독의 사례를 보면 극단 우금치의 내공이 어디에서 뿜어져 나오는지 느낄 수 있는데, 그는 극본, 배우, 연출 등 1인 5역 이상을 하는 것 같다.

“우리 단체에서 필요한 것은 연기만 하는 ‘배우’가 아니에요. 스텝이면서 예술행정가 역할을 할 수 있는 배우죠. 우금치 단원들은 연기도 하면서 기획도 하고 소품제작, 조명, 음향 등 모든 것을 함께 해요. 이것이 우금치와 다른 극단의 차이점입니다. 어느 극단에서도 이런 경우는 찾아볼 수 없을 것입니다.”

극의 내용도 다른 극단과는 차별화돼 있다. 보통 전문작가의 작품이나 번역극을 무대에 올리는 극단들이 많지만 우금치는 창작극에서 예술성의 원천을 끌어내고 있다. 갑자기 창작도 배우들과 함께 하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작품의 소재를 찾기 위해 시사 잡지를 보거나 지역 단체들과 함께 정세 분석을 합니다. 전체적인 민중운동의 흐름도 파악하죠. 또 단원들과 함께 줄거리를 어떻게 잡을지 함께 얘기를 나눕니다. 현장답사도 많이 가고요.”

지방에서 활동하는 문화예술단체들의 애로는 생활영역이 ‘작아서’에서 기인한다. 사이가 좋지 않거나 방향이 다른 단체와도 행사가 있는 날이면 만날 수밖에 없다. 때문에 어떤 상황에서도 웃으면서 악수를 청하고 받을 줄 아는 ‘여유’가 필요하다. ‘인구’의 부족도 원인이다. 문화를 소비할만한 사람이 많지 않아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는 “대전은 예술의전당 주위에 문화지대가 형성돼 있다”면서 “작품이 좋고, 작품에 충실히 임한다면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밝혔다. 실제 관람료가 십만 원씩이나 하는 뮤지컬 ‘캐츠’ 공연에 관객들이 몰렸고, 이번 공연의 R석도 팔리지 않을 것 같았지만 일반석보다 먼저 매진됐다는 것. 대신 우금치는 이번 공연에서 관람석의 가격을 다르게 책정한 것에 대해 신경이 좀 쓰인 눈치다. 하지만 그는 “우금치 공연은 액수별로 객석을 구분하지 않는 게 원칙이지만, 돈 있는 사람들이 극단에 더 많이 기여한다고 생각한다면 합리적일 수 있지 않느냐”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우금치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신자유주의의 광풍에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자유주의적인 시대입니다. 우금치도 다른 극단들과 경쟁을 거쳐야 살아남을 수 있죠. 비보이 공연을 보면서 존경스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탤런트, 영화배우들을 보면 몸도 좋고 외모도 뛰어나죠. 이런 것들을 크게 생각하지는 않지만 자본의 논리에 따라 경쟁을 하고 적응하려면 극단 우금치도 피나는 노력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는 우금치의 발전을 위해 껍질을 깨는 것도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훈련뿐만 아니라 시대를 바라보는 철학, 세계관을 확보해야 합니다. 현재는 먹고사는 문제가 급한 데다 특별한 지원금도 없어 한 해에 많은 공연을 하고 있습니다. 단원들이 무척 피곤해하죠. 때문에 자연스럽게 공부에 매달릴 수 없게 됩니다. 안타깝습니다. 딜레마예요.”

그는 4년 동안 동양철학을 공부하고 있다. 교과목은 장자, 논어, 성리학, 실학 등이다. 동양철학의 아름다움을 극에 접목시키기 위해 틈틈이 날을 새우고 있다. 그는 “내가 먼저 해야 단원들도 하지 않겠냐”라고 웃어버렸지만 더 좋은 극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과 열정을 쏟아붓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답이었다.

우금치를 대표할 만한 작품은 일곱 개 정도다. 단원들이 꾸준히 활동해 아직도 작품이 살아 있다. 언제 어디서든지 요청만 들어오면 무대에 설 수 있을 정도다. 주요 작품으로는 분단 문제를 다룬 ‘꼬대 각시’를 비롯해 환경오염을 경고하는 ‘땅별을 짊어진 농부’, 우리 시대의 남성권위주의를 비꼬는 ‘북어가 끓이는 해장국’, 돈만을 쫓아가는 현대인들의 욕망을 고발하는 ‘노다지’ 등이다.

그는 보수당의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자 민중문화운동진영에 영향이 미치지 않을까 걱정이다. 하지만 전통에 대한 코드가 있는 한 민족예술은 계속될 것이라고 믿었다.

“마당극의 특징은 내용을 공유하면서 출발합니다. 경험이나 인식의 공유를 통해 극에 힘을 싣습니다. 개인의 감동이 아니라 신명으로 끌고 가는 것이 마당극입니다. 영화나 다른 뮤지컬과는 다르죠. 이러한 마당극이 신자유주의적인 환경 속에서 살아남을 대안은 있느냐, 무한경쟁 글로벌 사회에서 향후 우금치는 어떤 모습이냐는 질문을 많이 받습니다. 하지만 우리 민족의 전통을 잘 살려낸다면 가능하다고 봅니다.”

우금치는 우리 민족의 전통연희의 맥을 잇는 한편 현대적으로 발전시킨 마당극으로 재창조해 가장 한국적이면서 세계적인 극단으로 나아가고자 한다.

“우금치는 전국 20여 개 단체 중에서 가장 많은 인지도와 대중성을 확보한 극단이라고 자부합니다. 하지만 공부가 부족한 게 사실입니다. 앞으로 이 부분에 더욱 노력을 기울일 것입니다. 또 해외 공연도 준비하고 싶습니다. 언어에 대한 장애가 있지만 버라이어티 한 점에서는 강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어떤 공연보다 더욱 각광을 받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