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내가 만난 사람

김인배 조각가 - 새햐얀 감각과 열정

이동권 2022. 9. 25. 20:50

김인배 조각가


전시장에 들어가자마자 갑자기 모든 것이 달라졌다. 세차게 불어오던 북풍에 움츠렸던 몸도, 부산하고 바쁜 일상에 찌들었던 마음도 모두 순간적으로 제자리에 돌아오는 듯했다. 뿌연 물안개가 자욱하게 내려앉은 벌판이나 새하얀 눈이 뒤덮인 산악지대를 걷는 기분처럼 뭔가 아찔하고 훈훈한 향취에 절로 취해버린 느낌이었다.

흑백 조각들은 스스로 달아오르면서 뜨거운 기운을 쏟아냈다. 어떤 작품은 무거운 껍데기를 벗어버리려는 하얀 나비, 혹은 가지에 쌓인 잔설을 털어내려는 장송(長松)처럼 느껴지기도 했고 또 어떤 작품은 미끈하게 빠진 얼음덩어리처럼 세련된 분위기가 오감에서 감지되기도 했다. 하지만 모든 작품들이 공통적으로 내 풍기는 느낌은 금방이라도 불길이 후끈 치솟아 오를 것만 같은 ‘긴장감’이었다. 동물들이 실컷 겨울잠에 빠져 있는 동안 땅 위에 쌓인 눈을 녹여내고 어느덧 살랑한 바람을 불어오게 만드는 봄의 에너지 같은 팽팽한 긴장감.

김인배 조각가를 만났다. 첫 번째 개인전 '차원의 경계에 서라'로 미술계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그는 이번에 '진심으로 이동하라'를 주제로 전시를 열었다. 

"첫 전시는 어느 쪽에도 이동하지 못한 채 경계에 서 있는 모습이었다면 이번 전시는 진심으로 이동한다는 방향성을 잡았습니다. 여기에서 진심이란 뜻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담아서 행동하는 것을 말합니다. 몸과 마음으로 느끼고, 뼈에 새기다 보면 그때 나오게 되는 생명력 같은 것이 진심입니다."

그의 작품에서 뿜어져 나오던 '긴장감'의 원천이 무엇인지 눈치 챌 수 있었다. 그것은 단지 빛나는 대상이 아니라 작가의 열정과 땀이 만들어낸 고난의 산물이었다. 또 마음 내키는 대로 작업을 이끌어나가는 동기유발과 그의 미적 감각이 쏟아내는 아름다움이었으며, 시선에 이끌리고 생각에 끌리는 대로 순간순간 최선을 다하는 마음 곧 '진심'이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일도 스스로 좋아하고 즐기면서 사명감을 가질 때 인생에 있어 가장 값진 선물을 받을 수 있다. 어떤 경우에는 형편없는 결과를 낼 수도 있다. 하지만 진심을 담았다면 그 열매에 연연하지 않을 수 있다. 또 진심은 단순히 보고 들으면서 전파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과 감정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주체를 ‘움직이게’ 만드는 생명력을 갖는다. 

그의 작업은 일상의 드로잉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는 드로잉 하면서 컨셉(Concept)을 잡고 그중에서 마음에 드는 이미지를 입체로 형상화한다. 그리고 검은색 연필로 조각에 부분을 채워 넣는다. 조각을 그림과 비슷하게 만들기 위한 치밀한 설정이다.

미술은 그에게 있어 삶 자체이다. 그러나 좋아하는 걸로만 따지자면 음악이 우선이다. 마음이 편해진다는 이유다. 그는 장르를 가리지 않을 정도로 음악을 좋아하며 술은 몸에 받지 않아 마시지 않은 대신 담배를 즐겨 태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