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생각나무

삼성과 전두환이 같지만 다른 점

이동권 2022. 10. 9. 18:56

Happy Tears, Lichtenstein


1995년 전위예술단체인 플럭서스의 일원이자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예술가로 평가받는 작가 요셉 보이스의 '조지 마치우나스를 위한 수사슴 기념비'가 국제갤러리에 전시됐다. 이 작품은 홍라희 삼성 리움 관장이 직접 전시 오프닝 행사까지 참여해 관람하고, 결국 구입했다. 당시 이 작품의 가격은 수십억에 달했다. 재벌이 아니라면 쉽게 사들일 수 없는 작품이다. 보통 미술관의 권위는 어떤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지, 어떤 연구와 기획으로 전시를 여는지로 결정된다. 그런 면에서 삼성 리움은 요셉 보이스의 작품이 꼭 필요했을 것이다. 설사 그것이 재벌들의 재산을 불리는 치부의 수단이라고 해도 이해가 되는 측면이 있다. 

재벌들은 비자금을 마련하거나, 재산을 불리거나, 자식들에게 세금 없이 재산을 물려주기 위해 미술품을 이용하는 일이 많다. 삼성도 자유롭지 않다. 지난 2007년 이건희 회장의 부인 홍라희 관장은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행복한 눈물’, ‘베들레헴 병원’ 등 작품 30여 점을 비자금으로 샀다는 의혹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특히 리히텐슈타인의 ‘행복한 눈물’은 시가 200~300억 원으로 평가되는 작품이어서 국민들을 허무감에 빠지게 했다. 하지만 이건희 회장이 사망하자 유족들은 고인의 보유했던 2만 3000여 점의 미술품과 유산 일부를 사회에 환원했다. 미술품의 평가 금액은 3조 원에 이른다. 미술품을 상속할 경우 미술품 평가액의 절반을 세금으로 납부해야 했을지언정 이른바 '이건희 컬렉션' 기부는 손뼉 칠 만하다.

전두환 컬렉션은 다른 운명을 맞았다. 검찰은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유혈 진압한 전두환 씨의 은닉재산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200여 점 이상의 미술품을 압수했다. 전 씨의 사저 내부 사진을 꼼꼼히 분석한 뒤 압류물품을 찾아냈다. 압류된 작품들 중에는 박수근, 천경자, 권여현 등 현대미술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작가들의 작품이 수두룩했다. 그중에는 한 뼘 크기의 작품이 억대에 이르는 작품들도 포함돼 있다. 

전두환 씨는 무슨 돈으로 이 많은 작품을 구입할 수 있었을까. 미술관도 아닌 개인이 수장고까지 마련해 미술품을 수집하는 경우는 백만장자가 아니면 극히 드물다. 미술품들이 부정한 경로를 통해 전두환 일가로 들어가지 않았을까 의심이 가는 대목이다. 미술품 거래는 투명하지 않다. 장부에 드러난 것이 전부가 아니다. 장부에 올리지 않고 뒤에서 거래되는 작품도 많고, 재벌과 갤러리가 짜고 돈세탁을 하기 위해 이용되기도 하며, 뇌물로 이용하기 위해 뒤로 빼놓는 경우도 있다. 전두환 씨의 일가에서 압수된 미술품도 이러한 경로를 통해 들어갔을 가능성이 높다.

 

전두환 씨가 사망하면서 남은 추징금 약 956억 원은 환수가 어려워졌다. 전 씨는 지방세도 9억 8200여만 원도 미납한 상태였다. 이건희 전 회장의 사후와 많이 다른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