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스커트는 경제가 나빠질수록 유행한다. 의류 회사들은 소비자의 눈에 잘 띄도록, 소비자들은 스스로 초라해 보이지 않도록 자극적인 디자인과 화려한 색상의 옷을 선호한다. 코미디도 그렇다. 시청자들은 정치 사회가 혼란할수록 개그 프로그램을 더욱 찾는다. 불만과 근심, 찡찡하고 우울한 마음을 해소하지 못해 자연스럽게 개그를 보게 되는 일종의 ‘대리만족’이다.
시사 개그는 혼란한 민심과 경제위기, 미증유의 음모와 정쟁이 끊이지 않는 우리 사회상을 반영한다. 그러나 지상파의 개그 프로그램이 사라지고, 케이블 방송 개그 프로그램에서도 시사 개그가 빠지면서 속 시원한 웃음도, 가슴에 남는 카타르시스도 부재한 상태다. 개그의 소재가 지극히 개인적이고 협소한 데다 19금 개그, 폭력과 무시, 상대에 대한 조롱으로 일관하고 있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이 저출산 대책 마련을 위해 방문했던 어린이집에서 6개월 아이가 걸어다닌다는 둥, 아나바다의 뜻도 몰라 묻는 장면은 얼마나 훌륭한 개그 소재인가?
시청률이 문제긴 하다. 시사 개그는 주제가 무겁고, 흥미를 반감시켜 희극인들이 꺼리는 소재다. 바른 소리, 쓴소리가 웃음으로 승화되지 못하면 유머의 ‘맛’도 떨어뜨리고, 말 한마디 잘못하면 인기에도 치명적이다. 하지만 역대 유명 개그 코너들을 살펴보면 꼭 그렇지 않았다. 시사개그는 정치적 혼란기에 혜성처럼 나타나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1980년대 시사개그의 장을 연 故 김형곤의 ‘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이나 유행어 ‘지구를 떠나거라’로 유명한 김병조의 일밤 뉴스가 대표적인 예다.
시사개그는 공익적 가치가 있다. 희화와 풍자, 패러디로 시청자들의 의식을 환기하고, 우리 사회를 비춰주는 거울 역할을 한다. 또 인간과 세계의 모순과 부조리를 느끼게 하고, 세대 비판이나 사회적인 메시지를 던져 우리의 성찰을 이끌어낸다. 개그맨들과 작가, PD들은 개그 아이디어를 짤 때 고민해봤으면 한다. 정치권력과 재벌, 부패 세력의 잘잘못을 웃음으로 만들어야 할 사회적 책무가 자신들에게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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