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생각나무

성소수자들이 다니는 술집도 일반 술집과 똑같다

이동권 2022. 10. 7. 20:50

 

편견이었다. 타락과 쾌락의 대명사로 불리는 것은 억울했다. 오해의 이유는 분명했다. 게이, 레즈비언, 트랜스 젠더, 바이 섹슈얼들이 드나드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 원초적인 편견은 이들이 하는 모든 것을 ‘더러운 것’으로 만들어버렸다.

실증적으로 얘기해보자. 성소수자들이 가는 업소에 한 번도 가보지 않고 이렇다 저렇다 얘기하는 게 맞을까. 수치화된 자료도, 객관적인 자료도 없는데 말이다. 싫어한다면 더 이상 할 말은 없다. 하지만 무조건적인 공격은 안 된다. 인간이 위대한 것은 부끄러움을 느낀다는 점이다. 그렇게 높고 고상한 인격체라고 자부하는 인간이 자신과 다르다는 이유로 타인에게 욕설을 퍼부어서야 되겠는가.

성소수자들이 다니는 업소를 찾았다. 사람들은 성소수자들에 대한 편견 때문인지 이들이 다니는 업소에 대해 거북할 만큼 힐난한다. 흥청망청 술을 마시고, 광기가 흐르고, 번잡하게 섹스를 하고, 몸을 함부로 굴리는 사람들로 득실댄다고 책망한다. 과연 그럴까. 이 근거 없는 트집에 대한 반론은 몸소 경험하는 것이 최고다. 그래서 직접 찾아가 봤다. 맥주바부터 소주방, 가라오케, 이태원 트랜스 젠더 클럽까지. 더 이상의 오해나 상상, 험담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어렵게 업소 문을 두드렸다.

종로 3가 인근 S술집. 어수선할 것 같은 생각은 선입견이었다. 단정한 종업원과 깔끔한 테이블, 편안한 무대가 눈에 들어왔다. 이른 시간이어서 그런지 손님은 많지 않았다. 종업원은 나에게 자리를 안내하고 물수건부터 건넸다. 이곳을 찾는 손님들은 서비스나 환경에 예민한가 보다. 메뉴판보다 물수건이 먼저다. 아니나 다를까 종업원은 핀잔부터 준다. “깔끔하게 손부터 닦으세요.” 종업원도 예외는 아니었다.

사람들은 바에 앉아 있었다. 나도 이들과 같이 나란히 앉아 맥주를 시켰다. 종업원은 안주를 고르게 한 뒤 노래방에서나 볼 수 있는 선곡책자를 건넸다. “노래 한 곡 하세요.” 이곳에서 노래를 부를 때는 무조건 두 곡 이상이다. 알게 모르게 불문율이란다. 노래를 부르는 데 돈이 들어가지는 않는다. 일반인들이 가는 가라오케는 보통 한 곡당 1만원이 기본이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완전 무료다. 친구들과 술 마시다가 부르고 싶은 노래가 있으면 종업원을 불러 번호를 눌러달라고 하면 된다.

노래는 각양각색이다. 가요에서 엔카까지 모든 종류의 유행가가 흘러나온다. 놀라운 것은 일반 남자들보다 옷차림이 센스 있고 노래 솜씨가 뛰어나다는 것. 미사리 라이브 가수 정도의 실력을 가진 사람들이 즐비하다. 사람들의 말투도 부드러운 편이다. 자기들끼리만의 커뮤니티 같은 끈끈함이 있어 보인다.

종업원은 손님들에게 ‘마담’으로 불린다. 마담들은 서빙뿐만 아니라 손님들의 테이블에 앉아 술을 따르고 말동무가 돼준다. 이들이 나누는 얘기는 보통 사람들과 비슷하다. 다른 게 있다면 남자 얘기가 화제로 올라온다는 것. 직장 이야기, 연예인 이야기 등 별별 이야기가 다 나오지만 단연 관심을 끄는 이야기는 남자나 혹은 애인 이야기다. 남자들이 모여 여자 얘기를 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마담들은 서로를 ‘언니’라고 부르며 분위기를 활기차게 만든다. 어색하기도 하고 재밌어 웃음이 피식 나온다. 종업원에게 ‘왜 언니라고 부르냐.’고 너스레를 떠니, 업소에서만 그렇게 한단다. 술 마시러 온 손님들한테 즐겁고 재밌게 해주려는 의도다. 이들은 밖에 나가면 다시 사회인으로 돌아가 일반인들과 똑같이 생활한다. “밖에 나가서 이랬다간 몰매 맞아요.”

마담들은 가끔 서로 마음에 드는 손님들이 나타나면 만남도 주선해준다. 다른 건 없다. 서로 술 한 잔 건네는 것. 일반인들도 흔히 하는 호감 표시다. 그 외에는 별다른 게 없었다. 간단하게 술을 마시고 회포 푸는 장소, 뭐 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한다는 게 이상할 정도다. 단 이곳에는 소주를 팔지 않았다. 맥주와 양주만 팔고, 안주도 과일과 포(마른안주) 두 가지만 준비된다.

인근 K술집. 이곳은 S술집과 인테리어도, 서비스도 거의 흡사했다. 다른 것이 있다면 성별을 가리지 않고 모두가 즐거운 한 때를 보낸다는 사실. 그런데 이곳에서 만난 여성들은 남성들보다 더 잘 놀았다. 무대와 마이크를 거의 놓지 않고 점령했다. 한 일행은 사장과 특별한 관계가 있는지 앞자리까지 독차지했다. 사람 사는 데는 다 비슷비슷하다.

종로 소주방이 밀집해 있는 골목의 A술집. 이곳은 완벽하게 일반인들이 가는 곳과 똑같았다. 안주도, 맥주도, 서비스도 다 비슷하다. 하지만 청결함을 유지하는 것은 보통 소주방보다 월등했다. 소주방인데도 물수건을 줬고, 그릇도 너무 깨끗했다. 안주도 푸짐하고 맛있는데, 요리 솜씨도 보통 이상인 듯싶다.

소주방을 찾는 사람들은 다양했다. 20대에서 60대까지. 양복을 차려입은 사람, 등산복을 입은 사람, 꽉 낀 청바지를 입은 젊은이도 있고 혼자 온 사람, 친구들과 여럿이 온 사람도 있었다. 이들은 자신을 성소수자라고 소개하지 않으면 전혀 티가 나지 않았다. 그런데 이곳에는 마담이 없었다. 가게 사장이 손님과 얘기도 나누고 술도 따라준다.

손님들은 처음 본 사이인데도 서로 잘 통했다. 아무래도 같은 고민을 해왔던 만큼 서로를 이해하는 폭이 일반인보다 더 넓은 것 같았다. 옆에 앉아있는 두 사람은 연인 같았다. “애인이세요?” 둘은 애인이 아니라고 손사래를 쳤다. “친구예요. 어딜 봐서 제가 이년하고 애인으로 보여요. 얘는 내 식이 아니에요.” 옆에서 웃던 사장이 한 마디 뀌뜸한다. “게이는 사랑이 우선이에요. 조건 보는 사람들도 있는데 자기 식성이 아니면 쳐다보지도 않아요. 돈도 있고, 얼굴도 잘 생기면 좋겠지만 중요한 건 서로에 대한 취향이에요.”

사랑이 우선이라는 말에 가슴이 움찔했다. 살면서 뭔가를 잊고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나 할까. 이곳 사람들은 서로에 대한 취향을 ‘식성’으로 희화화 해서 부른다. 음식에서 식食자와 똑같은 한자를 쓰는데 ‘식이 된다’고 하면 좋아한다, 성적으로 끌린다는 말로 이해하면 된다.

이태원 해밀턴호텔 사거리 인근. 미군 범죄로 시끄러운 광경이 연출됐던 곳인지 황량하고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무척 개방적으로 보였다. 여성들은 ‘하의실종’ 같은 패션으로 거리를 활보했고, 국적을 막론한 외국인들도 즐비했다. 순전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건달처럼 보이는 외국인들도 많았다.

누가 봐도 아름답다고 감탄할 정도로 늘씬한 여성들이 밖에 줄줄이 앉아 호객행위를 하고 있었다. 재밌게 해준다는 소리에 이끌려 T트랜스 젠더 클럽에 들어갔다. 클럽 안은 여느 술집과 다르지 않았다. 트랜스 젠더라고 티도 내지 않았다. 다른 게 있다면 술값이 무지 비싸다는 것. 자리에 앉자마자 기자 앞에서 백인 남성의 팔에 엉겨 붙어 걸어가던 여자애를 비꼬며 말한다. “이태원에 미친년들 많아요. 외국인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애들.”

클럽에는 외국인 몇몇과 즐겁게 얘기를 나누는 트랜스 젠더들이 있었다. 웬만큼 회화 실력이 되는 것 같았다. “이태원에서 일하려면 일상적인 영어회화는 해야 해요. 우리가 여기서 일하니까 천박하게 보는 사람들도 있는데 우리들 배울 만큼 배운 여자들이에요.”

시간이 조금 흘러도 왠지 이곳 여성들이 트랜스 젠더처럼 보이지 않아 물었다. 진짜 트랜스 젠더냐고? “맞아요. 이 오빠 속고만 살았나 봐.” 그리고 이들이 재밌게 해주는 건 다름 아닌 말상대였다. 옆에 앉아 술도 마셔주고, 신나게 춤도 같이 춰준다. 다른 게 뭔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경험상 그게 다였다.

우리 사회에는 성소수자들이 드나들거나 이들이 운영하는 업소는 왠지 위험하고 무서울 것 같다는 선입견이 있다. 하지만 직접 경험을 해보니 다르지 않았고, 오히려 일반 업소보다 깨끗하고 편안했다. 공공연하게 성매매를 일삼는 단란주점 같은 업소와 비교하는 건 의미가 없다. 사람 사는 곳은 어디든 비슷하다는 오랜 철학 때문이다. 단지 성소수자들과 얽혀있다고 해서 색안경을 끼는 것은 옳지 않아 보였다.

종로와 이태원뿐만 아니라 서울 곳곳에 성소수자들이 가는 업소들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더 이상 취재를 진행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판단했다. 문제는 성소수자들에 대한 시선이었다. 그것만 바뀐다면 더 이상 이상한 풍문과 거짓이 전파되지 않을 것이다. 향락의 질을 따진다면 돈과 섹스밖에 모르는 사람들이 더욱 나쁘다. 일반이냐 성소수자냐가 아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