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강경대 평전 64

002. 1부 - 푸르디푸른 꽃씨

강경대는 나긋나긋하고 예쁘게 생긴 아이였다. 처음 봐도 누구나 호감이 가고 친해지고 싶은 소년이었다. 건장하고 야무진 자태, 정답고 거침없는 성품, 믿음직하고 진실한 영혼까지, 나무랄 데가 없었다. 또한 경대는 순수하고 진지한 데다 붙임성도 많아 사람들의 마음을 끌어당겼다. 앙상하게 말라붙은 나무를 쳐다보면서도 멋지고 쓸모 있는 나무라고 칭찬할 만큼 마음이 넓었고, 배워야 할 일이라면 머리를 숙이고 당당하게 물어볼 만큼 의욕이 넘쳤다. 이제는 사라져 저 하늘의 별이 됐지만, 죽음으로 인해 더욱더 깊고 섬세해진 삶을 생각하면서, 우리는 기꺼이 그 별의 궤적을 뒤따를 것이다. 하월곡동 밤나무골. 집들이 뒷산 솔밭과 바짝 잇대어 언뜻 보면 공기 좋고 물 맑은 ‘명당자리’라고 생각하겠지만, 이곳은 하루살이가 만..

001. 한 점 꽃잎이 지고

제발 잊지 말자. 경대의 죽음이 남긴 수많은 변화를 되돌아보고, 끊임없이 사색하자. 기억이란 위대하고 경이로운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 많은 이들의 입으로 회자되고, 하나의 행동으로 모아질 때 기억은 더욱 빛난다. 또 모든 지성과 비평이 할 수 없는 일을 하도록 만드는 힘이 있다. 이렇듯 기억은 그 자체만으로도 과거와 현재, 현재와 미래를 잇는 가교이며 어긋날 일들을 지극히 보편적이고 정상적인 것으로 되돌려놓는 촉매와 같다. 강경대의 죽음은 삶의 진정한 가치가 무엇인지 되돌아보는 지혜를 줄 것이다. 강경대는 1972년 2월 4일 서울에서 태어났다. 경대는 어려서부터 소중한 물건을 다루듯 조심스럽고 겸허한 마음으로 삶을 배웠다. 어떤 일에 미숙하거나 어려운 문제에 부딪히면 부모님의 의견을 따랐고, 아름다움에..

내 마음속의 벗, 강경대

1991년. 나는 신입생 수련회조차 빠질 정도로 학교에 소홀하고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대학 새내기였다. 뭔가를 배우기에 가장 좋은 곳이 꼭 불편을 참아야 하는 학교만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삶이란 여정 여정마다 간격을 둬야 차갑고 잔혹한 고통 속에 빠지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고, 좀 더 쓸쓸하고 고독한 것에서 성숙된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다고 굳게 믿었다. 그래서 나는 학교생활 이외에 뭔가 색다른 일을 해보고 싶었다. 입시 지옥에서 벗어났다는 것만으로도 이유는 충분했다.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 민중문화운동단체에 들어갔다. 길을 걷다 우연히 마주친 포스터 때문이었다. 포스터는 두 주먹을 움켜진 채 하늘을 응시하고 있는 몇몇 청년들을 거칠게 파놓은 판화였다. 섬세하지도, 부드럽지도 않은 이미지였지만 왠지 모르게..

강경대 평전 - 1991년 5월 투쟁의 꽃

故 강경대 열사는 1991년 4월 26일 학원 자주화와 노태우 군사정권 타도 시위 도중 백골단이라고 불리는 사복 경찰들의 쇠파이프에 두들겨 맞아 심장막 내출혈로 숨을 거뒀다. 열사의 주검은 노태우 독재정권의 실체를 만천하에 밝히는 계기가 됐으며, 그해 전국적으로 일어난 반독재 민주화운동, ‘5월 투쟁’의 기폭제가 됐다. 나는 이 책을 고리타분하게 쓰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누구나 쉽고 편안하게 읽을 수 있도록 신경을 썼다. 책이란 쓰는 사람이 만족하는 것보다 읽는 사람이 배우고 느끼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혹자는 이 책을 ‘부드러운 평전’이라고 얘기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후회는 없다. 나는 인터뷰와 자료를 바탕으로 이 책을 썼으며, 비록 이야기는 내 방식대로 풀었지만 모두 실제로 일어난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