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비료와 농약에서 벗어나려는 프랑스인들, GMO는 완전금지
인상 좋은 프랑스 남자다. 이름은 페트릭 쁠랑. ‘마리노에’라는 유기농 기업의 사장이다.
페트릭 쁠랑은 대학에서 전기를 전공하고, 아주 유명한 컴퓨터 회사에 들어갔다. 하지만 29살 때 인생의 진로를 바꿨다. 이렇게 살다가는 아무런 재미도 느끼지 못하고 늙어 죽을 것 같은 불안감이 엄습한 탓이다. 페트릭은 퇴직 후 무작정 북쪽 바닷가 지역 ‘부르따뉴’로 떠났다. 거기에서 아내를 만났고, 해초 연구에 뛰어들었다. 자신의 삶을 일상의 안주가 아니라 창의와 정성, 보람에서 찾은 것이다.
페트릭의 해초 연구는 불모지에서 꽃을 찾는 것과 비슷했다. 한국은 산이 많고 먹을거리가 풍족하지 않아, 오래전부터 해초를 식량으로 삼았다. 반면 프랑스는 산이 없고 농경지가 넓어 농산물이 풍부했다. 그래서 해초를 먹을거리로 생각하지 못했다. 지금도 상황은 비슷하다. 해초의 맛이 좋은지, 나쁜 지조차 모를 정도다.
“한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한국 사람들은 활력이 넘쳐 보였다. 사람들이 바쁘게 살고 있는 것 같았다. 또 좋은 차가 너무 많고, 비싼 옷을 입은 사람들이 많아서 놀랐다. (……) 내가 한국에 온 이유는 김, 미역 등 한국의 해초와 한국의 웰빙 식품을 프랑스에 소개하기 위해서다. 진도에 다녀왔다. 양식장도 깨끗하고 시설도 좋더라. 김 생산은 전통적인 방식이지만 공장 안 기계는 현대식인 점이 인상적이었다. 20년 전 프랑스인들은 해초를 못 먹는 것, 안 먹는 것으로 생각했다. 벌레 보듯이 했다. 지금은 서서히 좋아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언론에서 해초의 좋은 점도 알려주고, 아시아인들이 많이 먹는다고 소개해서다. 하지만 아직도 김이나 미역 등 식재료를 파는 것이 아니라 완제품을 만들어서 팔고 있다.”
정부차원에서 유기농을 지원하는 프랑스
전문매장과 직거래 활발, 시장규모 계속해서 증가
유기농 식품은 단순히 건강에 좋아서 선호하는 것이 아니다. 화학비료와 농약을 사용하지 않으면 지구환경까지 건강해진다. 하지만 유기농 식품은 오랫동안 효율성, 합리성, 생산성에 현혹된 대부분의 사람들 때문에 외면당했다. 요즘 들어 분위기가 좋아졌다고 하지만 실상은 다르지 않다. 가격도 비싸고, 겉모양은 못생겼고, 키우는 과정도 믿을 수 없고, 아무 데서나 구할 수 없다는 이유로 여전히 찬밥신세다. 무엇보다 더 많은 이윤을 추구하는 물질문명의 이기는 유기농의 성장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이다. 이러한 사정은 프랑스도 비슷하지만 유기농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소비자들은 한국보다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과거 프랑스인들은 먹을거리의 질에 대해 고민하지 않았다. 최근 10여 년 전부터 유기농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면서 질 문제를 따지기 시작했고, 유기농이나 친환경에 관심을 갖게 됐다. 나는 개인적으로 해초에 대한 열정 때문에 자연스럽게 유기농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회사에서도 유기농만 취급한다. 유기농을 찾는 소비자 그룹, 익힌 음식이 아니라 생것 상태를 먹는 소비자들, 채식주의자들을 상대로 마케팅하고 있다.”
프랑스 유기농 식품 시장은 한국보다 넓다. 프랑스에는 유기농 전문매장이 1,700개 정도가 있고, 마트나 마켓에서는 유기농코너를 별도로 운영한다. 직거래 판매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프랑스 전체 식품 시장 중 유기농이 차지하는 비율을 3~4%, 시장 규모는 매년 20~25% 정도 성장하고 있다. 프랑스 정부의 지원도 유기농 식품 시장의 성장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프랑스는 유기농 단체급식을 의무화해, 학교나 직장 등 단체급식에서는 식품의 20%를 유기농 식품 원재료로 써야 한다. 연간 1억 6000만 유로에 해당하는 지원금이다.
“프랑스 소비자들이 유기농을 바라보는 관점은 3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건강을 위해서 먹는 것이다. 이런 경우에는 해외에서 들여온 유기농 식품이라도 괜찮다는 식이다. 또 하나는 자연을 보호하고 존중하는 의미에서 찾는다. 이런 경우는 자기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 제철에 나는 식품, 농약과 비료를 치지 않은 음식을 선호한다. 마지막은 인각적인 측면이다. 생산자에게 공정한 값을 지불하고 먹으려는 소비자들이다. 안전한 먹을거리, 함께 더불어 살려는 소비자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한국도 머지않아 프랑스처럼 유기농 식품 시장이 급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2006년 1300억 원대에 불과하던 식품시장 규모가 지난해 4000억 원을 돌파했다. 하지만 한국 유기농 식품에 대한 한국 소비자들의 신뢰는 높지 않다. 현실 또한 그렇다. 한국은 유기농 가공식품의 전량을 거의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소비자들이 비싼 돈을 주고 유기농 식품을 구입하는 이유는 건강에 좋다는 것 외에, 사회적인 요인도 있다. 소비자들은 유기농 식품이 유기농 같지 않다고 판단될 때 지갑을 열지 않는다. 아무리 홍보를 해도 이러한 불신을 쉽게 깨기 힘들다.
예를 들어보자. 한국에서도 유기축산을 표방하는 농장주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의 축산구조는 원천적으로 유기 축산이 불가능하다. 국제식품규격위원회 코덱스(CODEX)의 규정에 따르면 유기축산은 유기농 농산물로 만든 사료를 먹여 키운 축산물이다. 그러나 한국은 미국의 GMO(유전자재조합식품) 옥수수로 만든 사료를 가축들에게 먹이지 않고는 유지될 수 없는 상황이다. 개체수가 많아 먹일 것이 부족한 데다 GMO옥수수를 사용하지 않으면 사료 값이 비싸지기 때문이다. 애초부터 코덱스의 기준에 부합되지 않는다. 그래서 소비자들은 유기축산을 신뢰하지 않는다.
유기농 식품에 대한 소비자 신뢰를 얻는 것이 관건
GMO는 프랑스에서 상상할 수 없는 식품
유기농에 대한 인식을 확산시키는 방법은 소비자들에게 유기농 식품에 대한 가장 원초적인 믿음을 심어주는 일이다. 프랑스에서는 라벨에서 방법을 찾았다.
“소비자들은 프랑스에서 생산되는 유기식품을 믿는다. 정직하게 기업을 운영하기 때문이다. 우리 회사는 ‘에코서트’라는 회사와 협정을 맺고 유기농인증 라벨을 받고 있다. 에코서트는 일 년에 두 번 공장을 방문해 현장검사를 진행하고, 영수증 검사까지 한다. 만약 음식에 깨가 들어가 있으면 깨를 산 영수증이 있어야 하고, 구입과 생산, 판매내역까지 모두 맞춰본다. 만약 검사에서 걸리면 에코서트 라벨을 붙일 수 없다. 법적으로도 처벌을 받게 된다. 그래서 소비자들은 유기농 라벨을 절대적으로 신뢰한다. GMO도 마찬가지다. 프랑스에서는 GMO를 상상할 수 없다. 완전 금지다. 유기축산 생산자가 직접 사료를 만들어 쓰고 있다. 생산 농가 규모도 작다. 50마리에서 많아야 200마리다. 미국식 하고는 다르다.”
한국은 세계에서 2번째로 GMO작물을 많이 수입한다. 하지만 어느 식품에서도 유전자 변형 농산물 사용 표기를 찾아볼 수 없다. 유럽연합이나 중국 등은 최종 제품에 외래 DNA나 단백질의 잔존 여부와 관계없이 해당 표시를 하도록 강제한다. 미국도 GMO를 원료로 사용한 식품은 해당 표시를 의무화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다르다. GMO가 식품의 주재료 5가지 안에 들지 않거나, 간장, 주류, 식용유, 당류 등처럼 최종 제품에는 해당 표시를 하지 않아도 된다. 그래서 한국에서 제조되는 상당수 GMO식품들은 표시의무에서 제외된다.
GMO는 생물체의 유전자 중 필요한 유전자를 인위적으로 조작한 농산물이다. 주로 제초제에 대한 저항성 강화, 병이나 해충 저항성 강화, 저장성 향상, 고영양분 성분 함유 등의 장점을 갖도록 재배되기 때문에 수확량이 늘고 품질 향상에도 높아진다. 하지만 GMO의 위해성은 아직까지 정확하게 제시되지 않고 있다. 다만 포유류에 대한 실험결과가 부정적인 보고서가 속출해 잠재적 위해식품으로 판단되고 있다. 2012년 9월 프랑스 연구팀은 GMO 옥수수를 쥐에게 2년 동안 먹이는 실험을 했다. 통상 GMO의 동물실험은 90일간 진행되지만 기간을 늘렸다. 그 결과 종양과 장기 손상이 보통 쥐보다 많이 발생했다. 해당 옥수수는 한국을 비롯한 21개국에서 이미 섭취되고 있어 큰 충격을 주었다.
인류는 화학물질에 중독됐다. 화학비료와 농약을 쓰지 않고 농사를 짓지 못할 단계에까지 왔다. 거대 화학기업들이 미래보다는 이익만을 추구한 결과다. 유기농은 단순히 먹을거리를 선택하는 문제가 아니다. 사회문제와 연결돼 있을 뿐만 아니라 기아, 수질오염, 기후변화, 에너지 등의 문제와도 닿아 있다. 땅에 곤충이 살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 얼마나 위험한 욕망인가. 천천히 사색할 필요가 있다.
'이야기 > 내가 만난 사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안건모 월간 작은책 편집장 - 아름다운 독자가 만드는 아름다운 책 (0) | 2022.08.04 |
---|---|
최성기 재일조선인 교환학생 - 나는 남북 아닌, 조선사람 (0) | 2022.08.04 |
최병수 현장미술가 - 한열이를 살려내라 주인공, 민중의 의식전환 필요하다 (0) | 2022.07.30 |
전희구 노원구청 생활복지국장 - 아버지 의문사 책으로 펴내다 (0) | 2022.07.30 |
이경순 감독 - 우리 사회의 부조리와 모순에 내민 도전장 (0) | 2022.07.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