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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1970 - 당신은 무엇을 위해 사나요? 유하 감독 2015년작

이동권 2022. 10. 28. 00:10

강남 1970, 유하 감독 2015년작


묵직한 영화였다. 시종일관 진지하고 숙연했다. 화려한 액션과 자극적인 대사가 난무하는 조폭영화라고 예상했는데, 아니었다. 두 청년의 삶이 남긴 메시지가 너무도 강해 가슴이 찡해왔다. 시커먼 터널 안에서 빛이 쏟아지는 터널 끝을 바라보며 손짓하던 청년의 모습은 우리 사회의 고통과도 중첩됐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서 이렇게 앞만 보며 달려온 것일까. 

영화 <강남 1970>은 물질이 최고인 자본주의 사회에서 행복하게 살기 위한 방법을 알려준다. 생각하며 사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는 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욕망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하지만 욕망의 대상은 모두 다르고, 욕망을 성취하는 과정도 같지 않다. 삶의 행복은 ‘가치 있는 일’에 얼마나 최선을 다했는지에 달려 있다. 욕망의 대상이 그릇되거나, 자신만의 문제로 국한하거나, 부정한 방법을 동원하거나, 잘잘못을 성찰하지 않으면 제아무리 최선을 다한 삶이라도 행복할 수 없다. 

인생은 성실하게 사는 것이 정답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이 되면 ‘열심히’만이나 ‘버티는’ 것만이 능사가 아닌 때가 온다. 그때가 오면 선택의 갈림길에서 놓이고, 모든 것을 깨끗하게 받아들이거나 놓을 수 있는 겸손과 용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이런 삶의 요구에 응하지 않고 앞만 보며 달리면 누군가에게 실컷 이용만 당하다 자신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는 비극으로 치닫고 만다.  

가난에 쪼들리던 1960년대, 두 청년은 넝마를 주워 팔아 생계를 유지했다. 먹을 것이라곤 생라면과 멀건 된장죽. 사나운 북풍이 몰아치는 겨울인데도 차디찬 구들장을 덥힐 돈이 없다. 게다기 잠시 몸을 눕힐 수 있는 작은 판잣집도 무허가다. 이 무허가 판잣집이 헐리면서 영화 <강남 1970>은 시작된다. 이 영화가 ‘집’과 관련한 얘기라는 것을 암시하는 첫 장면이다. 

삶에서 최고의 행복은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을 스스로 인지하는 것이다. 복음성가 중에서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노래가 전 국민의 히트를 친 이유도 거기에 있다. 하지만 두 청년에게 행복은 없었다. 부모 없는 고아였고, 고아원에서 뛰쳐나와 의형제처럼 서로 의지하며 살 뿐이다. 권력과 돈의 욕망에 사로잡히기 전까지 두 사람은 완벽한 가족이었다. 

두 청년은 깡패가 된다. 이유는 단순하다. 먹고살기 위해서다. 삶은 영혼을 살찌울 일에 열정을 쏟는 투쟁이어야 하지만 이들의 관심은 돈과 땅밖에 없었다. 가진 것이라고는 두 주먹과 불알 두 쪽, 지금 이보다 더 나빠질 수 없었다. 결국 두 청년은 야당 전당대회 훼방 작전에 투입된 뒤 서로를 잃어버리고, 각자의 자리에서 주먹계의 중간 보스로 성장한다. 

이 영화에는 오랜 깡패 생활을 하면서 진정한 삶의 의미를 깨달은 늙은 깡패가 메시아적인 인물로 등장한다. 그는 조직 내 이권과 얽힌 일에 휘말렸다 딸 앞에서 칼부림을 당한 뒤 모든 것을 내려놓고 평범한 삶을 산다. 가정에 사건이나 불화가 생기면 이를 만회할 기회가 적다는 것을 그때서야 알게 된 것이다. 그리고 오갈 곳 없는 두 청년 중 한 청년을 양자로 거둔다. 하지만 청년은 그를 속이고 깡패의 길을 계속 걸어간다. 그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된 그는 자신의 생명을 건 싸움에 뛰어든다. 누군가의 삶에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일처럼 큰 보람은 없을 것이다. 그는 청년이 한순간에 불과한 삶을 깡패 생활로 허비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다시 조직에 돌아온다. 

삶은 호락하지 않고 깊은 슬픔을 남긴다. 인생의 비극은 매우 빨리 찾아오고, 그 순간에 이르러 비로소 인간은 현명해진다. 하지만 후회해봐야 소용없다. 인간의 욕망과 어리석음이 스크린에서 뚝뚝 떨어지는 순간 가슴팍에서 얼음장처럼 딱딱한 뭔가가 잡힌다. ‘우리는 무엇을 욕망하며 질주하고 있는가’라는 질문과 함께. 

<강남 1970>은 유하 감독의 10년에 걸친 ‘거리 3부작’ 중 최종편이다. 유 감독은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제도 교육의 폭력성에 유린되는 청춘들을 그렸고, <비열한 거리>로 돈이 폭력을 어떻게 소비하는지 보여줬다. 그는 <강남 1970>에서 강남땅의 개발이 막 시작되던 1970년대를 조명한다. 가진 것 없는 청춘이 폭력과 만나 땅과 돈을 향한 욕망으로 질주하는 이야기로 자본주의의 참상을 고발한다.  

이 영화에서 액션 장면은 추천할 만하다. 야당 전당대회에 동원된 깡패들과 조직 간에 벌어진 진흙탕 육탄전, 중간중간 인정사정없이 죽고 죽이는 싸움은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