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폭스캐처>는 미국 최고의 재벌 ‘듀폰가’에서 벌어진 충격적인 살인사건을 다룬다. 이 살인사건은 실화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 이 영화는 충분히 볼만하다.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듀폰가 사람들의 일상과 생각, 대화는 상식을 초월한다. 듀폰가의 상속자 존 듀폰은 돈이면 다 되는 사람이다. 자기 하고 싶은 대로 살며,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으면 돈으로 해결한다. 그는 갖고 싶은 것이 있으면 무엇이든 손에 넣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다. 그래도 안 되면 분노한다.
사람도 총으로 쏴 죽인다. 그는 어머니에게 인정받고 사회에서 존경받기 위해 레슬링팀 ‘폭스캐처’를 꾸리지만, 끝내 레슬링 코치를 죽이고 만다. 이유는 얼토당토않다. 자신을 무시했다는 것. 그러나 레슬링 코치는 자기 신념대로 일을 열심히 했을 뿐, 단 한 번도 그를 무시한 적이 없다.
모두 돈이 만들어낸 망상이었다. 그리고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그는 견디지 못했다.
존 듀폰의 마음은 종이처럼 얇고 유리잔처럼 약했다. 작은 일에도 일희일비하며 갖가지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사람을 믿지 못하고 부정적이기도 해, 상대방을 간섭하고 의심하며 옥좼다. 신경쇠약이 의심될 정도다. 한 마디로 존 듀폰은 ‘똘아이’요, 자본주의 사회가 만들어낸 ‘괴물’이다.
영화 <폭스캐처>는 전대미문의 항공기 회항사건의 주인공 조현아 대한항공 전 부사장을 떠올리게 했다. 조 전 사장은 견과류 일등석 서비스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승무원과 사무장에게 폭언과 폭행을 행사했고, 항공기를 탑승게이트로 돌리는 램프리턴을 지시했으며, 사무장을 비행기에서 강제로 내리게 했다. 게다가 사건이 논란이 되자 회사 차원의 조직적 증거인멸도 시도했다. 상황은 전혀 다르지만, 본질적으론 비슷하다. <폭스캐처>나 ‘땅콩회항’이나 일반적인 이해, 판단, 사리 분별로는 납득할 수 없는 일을 벌인 재벌가의 2세, 3세의 이야기다.
이 영화는 재벌에 대한 분노를 부른다. 수억을 호가하는 경주용 말 수십 마리를 사람보다 애지중지하거나, 군수업체에서 구매한 탱크에 기관총이 빠졌다고 투덜거리거나, 자신을 선수들의 멘토 혹은 아버지로 부르도록 강요하는 장면은 자연스레 짜증을 유발한다. 한 마디로 기가 막힌다.
<폭스캐처>는 돈에 따라 자신의 운명조차 결정해버리는 현대인에게도 경종을 울린다. 사는 게 힘겹고 고달파도 돈이 삶의 전부가 돼서는 안 된다. 삶의 목적은 돈과 권력이 아니라 봉사이어야 한다. 이타적인 마음으로 더불어 살아가려는 마음을 조금이라도 가져야 삶은 폭주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부자가 되지 말라는 얘기는 아니다. 열심히 일해서 잘 사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니다. 다만 삶의 방향성을 어떻게 잡느냐가 중요하다.
레슬링 선수 마크 슐츠는 1984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다. 하지만 그는 전 국민의 영웅으로 칭송받는 친형 데이브 슐츠의 후광에 늘 가려 있었다.
그에게 미국 최고 재벌가의 상속자인 존 듀폰이 제안을 해온다. 서울 올림픽을 준비하는 레슬링 팀 ‘폭스캐처’에 합류해달라며 고액의 연봉을 제시받는다. 폭스캐처는 미국 상류층이 사냥개를 데리고 여우를 사냥하는 여가생활을 뜻하는 말로, 이 영화에서는 중의적인 의미 지닌다.
마크는 성공을 원했다. 자신의 레슬링 코치이기도 했던 형의 그날에서 벗어나 유명해지고 싶었다. 결국 그는 폭스캐처에 들어가 훈련에 매진한다. 하지만 성공에 대한 집념 때문에 분별력을 잃는다. 존 듀폰의 비위를 맞추다 마약까지 하게 된다. (이 영화에서는 많은 부분이 생략돼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우리가 상상하지 못한 일들이 그들 사이에 벌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마크는 존 듀폰의 변덕스러운 성격과 기괴함에 점점 환멸을 느끼고 서서히 무너진다. 망가져가는 그를 도운 건 형이다. 형은 끝까지 그를 위로하고 훈련시켜 서울올림픽에 출전할 미국 대표로 만든다. 그러나 상황은 이미 악화일로에 치달았고, 되돌릴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마크는 형 밑에서 묵묵하게 훈련하던 선수였다. 하지만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기보다는 형의 바깥 모습을 보기에 치중했고, 그것은 고스란히 열등감으로 이어지고 말았다.
인생은 거울과 같아서 마주 보지 않으면 비치지 않고, 자신 또한 성찰하지 못한다. 마크가 딱 그러한 예다. 그는 또 인생의 성공은 열심히 노력하며 기다릴 줄 아는 사람에게 온다는 것도 몰랐다. 빨리 성공하고 싶은 생각에 존 듀폰의 무분별한 난행에 동참한다. 이 영화게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다.
형 데이브 슐츠는 사후에 레슬링 명예의 전당에 올랐고, 동생 마크 슐츠는 1988 올림픽 이후 은퇴해 현재 레슬링 크리닉을 운영하고 있다.
존 듀폰은 2010년 교도소에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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