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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큘라: 전설의 시작 - 드라큘라와 수니파의 시원, 개리 쇼어 감독 2014년작

이동권 2022. 10. 27. 22:16

드라큘라: 전설의 시작(Dracula Untold), 개리 쇼어(Gary Shore) 감독 2014년작


무료한 일상을 흥미롭게 바꿔주는 자극제로 충분했다. 대담한 선과 훈훈한 액션, 감동적인 스토리에 매료됐다. 수천 마리의 까마귀들이 바람을 일으키며 날아올랐다 바닥으로 내리 꽂히고, 그 충격에 수많은 병사들이 나자빠지는 장면은 통쾌하기 그지없었다.

영화 <드라큘라: 전설의 시작>은 드라큘라의 시원을 밝힌다. 좋은 가문에 덕망 높고 용맹했던 그가 왜 사람의 피를 빨게 됐고, 태양과 십자가에 민감해졌는지, 이 영화는 그 이유를 설명한다.

영화의 배경이 된 중세는 사회적으론 봉건제도가, 사상적으론 기독교가 지배하고 있었다. 합리적인 과학 이론마저 기독교의 사고방식과 다르다는 이유로 억압당하던 시절이다.

영화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오직 기독교의 잣대로 선과 악을 판가름한다. 그 어떤 선의도 교회의 뜻과 다르면 무시해 버린다. 드라큘라가 십자가를 두려워하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또한 이 영화는 이슬람교를 철저하게 악으로 그린다. 실제로 기독교가 더욱 악랄하게 다른 종교를 핍박하고, 개종과 영토 확장, 약탈을 위해 전쟁을 일으켰던 사실은 누구나 아는 상식이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200년에 걸친 기독교와의 전투로 불관용적인 이슬람교도 수니파가 잉태된 역사를 상기시킨다.

역사적 배경을 떠나 드라큘라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두 가지에 놀라게 된다. 하나는 드라큘라가 우리가 상상했던 것보다 엄청남 힘을 가졌다는 점이다. 드라큘라는 슈퍼맨이나 스파이더맨과는 조금은 다르지만 그들처럼 적을 제압하고 정의를 실현하는 할리우드 영웅의 공식을 뒤따른다.

또 하나는 드라큘라의 분신이 까마귀로 그려진 점이다. 드라큘라는 밤에 나돌아 다니는 습성 때문에 박쥐로 대변되곤 했다. 과거 <드라큘라> 영화 중에서 종종 까마귀가 등장하기도 했지만, 이 영화처럼 완벽하게 까마귀를 전면에 내세운 것은 처음이다. 드라큘라가 있는 곳엔 늘 까악까악 까마귀가 시끄럽게 우짖고, 머리 위 하늘을 뱅뱅 날아다닌다. 그가 빠르게 몸을 움직일 때는 몸이 수백 마리의 까마귀로 해체됐다 합체되길 반복한다.

드라큘라는 탄탄한 기독교 신앙을 바탕으로 평화롭게 나라를 다스린다. 하지만 이슬람 제국의 술탄이 사내아이 1천 명과 드라큘라의 아들을 조공으로 바치라고 명령한다. 드라큘라는 술탄의 요구를 거절하고 전쟁을 선포한다. 술탄은 이슬람교의 종교적 최고 권위자인 칼리프가 수여한 정치적 지배자의 칭호다.

드라큘라는 엄청난 군사력을 자랑하는 술탄을 이길 수 없다고 판단한다. 가족과 백성을 지키는 유일한 방법은 악마에게 절대적 힘을 얻고 자신을 버리는 것이었다.

드라큘라는 악마의 힘을 빌려 가족과 백성을 구하려고 했다. 그러나 백성들은 그가 흡혈귀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오히려 그를 악마라며 죽이려고 했다. 드라큘라가 자신을 희생하지 않았다면 모두 술탄의 칼날에 죽었을 터였지만 백성들은 그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드라큘라는 실제로 악마였으나 어떤 의미에서는 마타도어 혹은 마녀사냥을 당했다. 백성들은 그의 마음을 헤아리지 않고 수도사의 행동에 동의하며 그를 맹목적으로 불신했고, 기독교를 절대화한 광신도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드라큘라의 진정성은 그것을 넘어섰고 이겨냈다.

자녀들과 함께 보고 토론하면 재밌을 영화다. 가족과 백성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악을 선택한 드라큘라와 그를 바라보는 주위 사람들의 반응 그리고 중세 기독교의 역사까지 토론 주제가 만만치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