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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트 - 누가 이 세상을 아름답다고 하는가, 부지영 감독 2014년작

이동권 2022. 10. 27. 21:12

카트, 부지영 감독 2014년작


영화적으로 평가하면 혼내주고 싶다. 영상은 이렇고, 플롯은 저렇고, 연기는 어떻고, 음악은 그랬고 등으로 평가는 할 수 있지만 영화 <카트>는 진심, 감독과 배우들이 전달하려는 메시지에 더욱 귀를 기울여야 한다. 무엇보다 배울 게 있어 좋은 영화다. 우리 주위에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어떤 이들이 고통을 겪고 있는지 이 영화가 알려 줄 것이다. 

물론 잘 만들었다. 감동은 기본이고 몰입도도 있다. 무거운 주제를 위트 있는 대사와 상황으로 가볍게 풀어낸 점도 박수를 쳐주고 싶다.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관심 없는 사람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친절한' 영화다.

영화 <카트>는 마트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의 비참한 현실을 그렸다. 고객은 청결하고 말끔한 곳만 드나드니, 이곳에서 일하는 여성들이 어떻게 생활하는지 잘 모를 것이다. 궁금하다면 이 영화를 보면 된다.

<카트>의 첫 장면은 구호로 시작된다. "고객이 왕이다. 고객 감동 서비스. 회사가 살아야 우리가 산다. 사랑합니다." 고객 친절이 강조되는 마트의 평범한 분위기다. 하지만 열심히 하면 정규직이 될 수 있다며 가짓부리를 하는 모양새부터 기분이 언짢다.

그다음 펼쳐지는 장면은 실로 놀랍다. 업무 외 연장근무를 아무렇게나 요구하는 관리자, 이를 정중히 거절하자 관리자는 짜증 나는 얼굴로 눈을 부라린다. 근무 태도가 좋지 않다고 반성문도 쓰게 한다. 회사가 알려 준대로 규칙을 준수해도 고객과 다툼이 일어나면 고객 앞에 무릎을 꿇게 한다. 인간이기를 포기한 진상 고객을 상대하기도 버겁다. 이중고다. 게다가 노동자들은 지하 층계 밑 창고로 쓰일만한 곳에서 밥을 먹는다. 칸막이로 대충 만들어놓은 탈의실에서, 남자 관리자들이 불쑥 들어와도 모를 곳에서 수십 명의 여성 노동자들이 뒤엉켜 옷을 갈아입는다. 그래도 생존이 달린 일자리다. 불평불만은 씹어 삼킨다. "회사가 잘 되면 저희도 잘 될 줄 알았죠."

여성 노동자들은 마트에서 기간제 계약직으로 일했다. 계약 기간이 끝나면 재계약 여부가 확실치 않아 불안하다. 그래도 순박하다. 열심히 일하면 쥐꼬리 만한 월급이라도 받을 수 있다고 안심한다. 비정규직의 임금은 정규직 임금의 60% 정도로, 대부분 100만 원 이하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하루아침에 해고를 당한다. 마트는 임의대로 도급 계약까지 마쳤다. 간접고용이 되면 파견업체가 일정한 이윤을 챙겨야 하기 때문에 임금이 더욱 적어진다. 또 복지, 승진, 수당 등 여러 부분에서 차별이 심해진다. 말을 듣지 않은 노동자들을 해직하기도 쉽다. 아니, 마트와 고용 계약조차 끝나지 않았는데 맘대로 해고했다. "계약직이 암만 파리 목숨이라도 이건 아니다." 

노동자들은 마트에 대항해 노동조합을 만든다. 마트를 점거하고 농성에 들어간다. 그리고 자신들은 돈을 버는 부품이, 쓰다 버리는 물건이 아니라고 외친다. "부당 해고예요. 일방적인 계약 위반이라고요." 정규직 노조도 이들과 함께 자리를 지킨다. 그러면서 투쟁의 '투'자도 모르는 이들은 투사가 되고, 싸움은 거세진다. 그렇게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현실이 이들을 그렇게 만든다. 하지만 사측은 모르쇠다. 협상 테이블에도 나오지 않는다. 노조 지도부를 무시하기 일쑤다. 또 조합을 깨기 위해 회유와 협박에 들어가고, 무력까지 동원한다. "죄 없는 사람 잡아가고, 돈 있는 사람 지키는 게 경찰이가." 

이 영화를 보고 있으면 화가 나 참을 수 없다. 기업들이 생색내며 떠들어대는 '인간중심'은 번지르르한 거짓말이다. 저들이 번 돈은 모두 저들 주머니로 들어간다.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더 가질 수 있다면 어떤 말인들 못하랴.

그냥 하는 토로가 아니다. 실제 대형마트 홈플러스는 경품 사기극, 고객정보 불법판매, 갑질횡포 이어 모기업 테스코의 분식회계 사건까지 겹쳐 부도덕한 기업이라는 낙인이 찍혔고, 이곳에서는 '10년을 일해도 월급은 100만 원이 안 된다'는 노동자들의 절규가 끊이질 않았다. 

염정아와 문정희가 노조지도부로 연기했다. 이와 함께 김영애, 김강우, 이승준, 황정민, 천우희 등 톱스타들이 몸을 아끼지 않고 열연해 영화가 확 살았다. 보이그룹 엑소의 도경수가 출연한 것도 화제라면 화제다. 

영화 속 인물들의 삶을 보고 있으면 그냥 눈물이 난다. 예를 들면 남편 없이 두 아이를 키우는 주인공이 아들 급식비를 마련하지 못해 쩔쩔매는 모습은 가슴을 아프게 한다. 이들이 사측과 더욱 처절하게 싸울 수밖에 없는 이유다. 

여성 노동자들이 마트에서 경찰에게 끌려 나가는 장면이나 물대포에 맞서 카트를 밀고 마트로 돌진하는 장면에서는 온몸에 소름이 들이닥친다. 누가 이 세상을 아름답다고 얘기하는가. 틀렸다. 

"조금 있으면 지쳐 떨어지겠지. 아줌마들이 해 봤자지. 뭐." 하지만 대량해고와 노조탄압에 맞선 투쟁은 오랫동안 계속됐고, 결말은 파업을 주도했던 노조 지도부들이 복직을 포기하는 조건으로 나머지 조합원은 전원 일터로 돌아갔다. 지도부의 희생으로 쟁취한 절반의 승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