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뜩했다. 무서웠다. 으스스한 오한이 날 것 같았다. 두 사람이 만나 평생을 함께 사는 일은 그렇게 끔찍한 위선 덩어리였다. 오랜만에 작은 탄성을 지르며 스크린에서 빠져나왔다. 세상에 태어나 단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던 것을 떠올려보게 됐다. 이런 기분 오랜만이다.
사랑하고, 아껴주며, 항상 옆에 서 있는 배우자의 진심을 의심해본 적이 없었다. 보이는 그대로 믿었다. 그러나 영화 <나를 찾아줘>는 겉으로 보이는 부부의 모습과 진실이 완벽하게 다를 수 있다고 말한다.
부부 관계는 늘 달콤하고 감동적인 시간만을 주지 않는다. 한때는 수정처럼 순수한 빛으로 타오르기도 하지만 갑자기 화산재로 돌변해 평화로운 숲을 덮치기도 한다. 부부관계뿐만 아니라 모든 관계가 그렇다. 환희나 행복, 꿈이나 눈물, 아니 인간적이라고 불리는 모든 즐거움을 잉태하기도 하지만 은밀하고 비밀스러운 슬픔으로 답례하기도 한다. 이것이 바로 관계다. 하지만 그것마저 모두 계획적이고 꾸며진 것이라면 어떠할까. 너무도 오싹하고 처절한 생존경쟁이 아닐 수 없다. 설정 자체가 사이코패스의 엽기행각처럼 다뤄지긴 했다. 그러나 부부의 소소한 허위를 유추해내긴 어렵지 않은 줄거리다.
이 영화를 보면 누구나 한 번 정도는 배우자의 마음을 의심하게 될 것이다. 밥을 차려주고, 머리를 쓰다듬고, 잠자리를 갖는 배우자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질 것이다.
영화 <나를 찾아줘>는 누구나 얘기하기 불편해하는 부부의 비밀을 얘기한다.
영화 속 부부는 겉으론 굉장히 행복해 보였다. 하지만 그 행복 안에는 진심 없는 대화, 의미 없는 구애, 필요에 의한 헌신, 이기적인 적의, 배우자에 대한 강박, 뿌리 깊은 불신이 쌓여 있었다.
부부는 현실에 대한 과도한 압박과 새로운 것에 대한 지나친 동경에 빠져 있었다. 자신을 향한 지나친 믿음과 배우자의 소소한 간섭으로부터 적당한 보호를 받으며 끊임없는 해방감을 즐기는데 열중했다. 그럴수록 삶의 갈망과 열병은 더욱 강렬해졌고 배설하는 것처럼 욕정을 풀었다. 그럼에도 부부는 행복해 보이도록 껍데기를 뒤집어쓰고 살았다. 자잘한 일상의 문제로 다툼이 생길 정도만 서로 가면을 썼다. 그러다 사건은 터지고 말았다.
이 영화는 강렬한 심리묘사와 야무진 플롯으로 무장했다. 두 시간 넘는 러닝타임이지만 지루하지 않았고, 엄청난 몰입감을 선사했다.
이 영화는 세 가지 축으로 진행된다. 하나는 5년 동안 문제가 없었던 부부 생활이고, 또 하나는 아내가 부부생활을 바라보는 시선이며, 마지막은 결혼 5주년 기념일에 아내가 사라지며 밝혀지는 부부의 끔찍한 현실이다. 여태까지 진실로 알았던 배우자의 말과 행동은 모두 거짓이었다.
어쩌면 삶은 철저히 혼자가 되는 것에서 완성된다. 사랑은 욕구나 욕망의 대상도 아니고, 자신의 의도대로 만들어 가는 것도 아니다. 혼인서약을 하고, 혼인신고를 하고, 늙어 죽을 때까지 한 지붕 밑에서 산다고 사랑이 되지 않는다. 홀로 오롯이 서서, 사랑이라고 믿는 것을 완전히 내려놓고 바라볼 때야 비로소 사랑이 된다.
우리는 애초 이 세상에 태어날 때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았다. 관계만 있었을 뿐이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마치 그랬던 것으로 착각하고 위로하며, 허세 부리고 걱정하며 살고 있다.
삶은 고독이 쌓여가는 과정에서 자신과 씨름을 하는 것과 같다. 자신에게 결여된 것을 느끼는 순간부터 삶은 시작되고, 그것이 차가운 응어리로 굳어 가느냐, 흐르는 물처럼 흘러 가느냐는 오직 자신의 성찰에 달렸다. 그리고는 끝내, 인간은 말 없는 사람들과 대화하는 가장 순수한 모습으로 사라진다. 거침없이 독립된 채 침묵과 몽상과 망령을 얘기하며 사라져 가는 것이 인간의 삶인 것이다. 그럼에도 무엇이 더 필요해진다면, 삶은 파멸로 종지부를 찍게 된다.
이 영화는 성인 남녀라면 누구에게나 삶과 사랑, 결혼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게 할 것이다. 정말 명품 스릴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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