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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보자 - 진실이 궁극적으로 국익에 기여한다, 임순례 감독 2014년작

이동권 2022. 10. 27. 22:10

제보자, 임순례 감독 2014년작


줄기세포란 무엇일까? 단지 난치병 환자의 치료와 생명 연장을 위한 과학기술의 산물일 뿐일까?

아니다. 줄기세포는 막대한 부를 창출하는 상품이자 국력을 상징하는 매개이기도 하다. 미국이 그랬고, 소련이 그랬듯이 우수한 과학기술은 돈을 벌게 했고, 자국의 힘을 과시하는 용도로 쓰였다. 그래서 많은 과학자들은 줄기세포 연구에 매달렸다. 국가의 전폭적인 지원도 뒤따랐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수많은 사건도 일어났다. 

일본의 오보카타 하루코 박사가 '제3의 만능세포'로 알려진 STAP 줄기세포의 존재를 과학잡지 '네이처'에 발표해 화제가 됐지만, 논문의 데이터가 부정확하고 결함이 있어, 논문은 철회되고 말았다. 이 사건은 AV영화 제작사가 수려한 미모를 자랑하는 오보카타에게 19억 원의 출연료를 제시한 것을 계기로 국내에 알려져 쓴웃음을 선사하긴 했지만 생명윤리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긴 충분했다. 

영화 <제보자>의 배경도 줄기세포다.

<제보자>는 2005년 한국을 발칵 뒤집었던 황우석 논문조작 사건을 소재로 다룬다. 당시 이 사건을 폭로했던 MBC <피디수첩>의 한학수 PD(윤민철)와 내부고발자 류영준 연구원(심민호)이 주인공으로 등장해, 황우석 박사(이장환) 사건의 진실을 파헤친다. 

이 영화는 황우석 논문조작 사건을 얘기하지만, 초입부터 픽션을 강조한다. 전제적인 스토리도 비교적 단순하고 쉽게 정리해서 그린다. 사건 중간중간에 개입된 인물이나 단체, 에피소드 중 빼먹은 것도 있고, 가볍게 처리한 부분도 있다. 

아무래도 관객이 영화에 쉽게 몰입하도록 도우려는 임순례 감독의 배려겠다. 노무현 정권 때 벌어진 청와대 외압 부분도 부담이 된 듯하다. 

의아했지만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었던 것은 이장환 박사의 인물묘사다. 논문을 조작한 현실 뒤에는 기품 있고 넉넉한 사람, 온화하고 따뜻한 이미지가 짙게 깔려 있다. 게다가 그는 정치적 수환과 언론 플레이에 능했고, 지적인 분위기와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논문 조작 사건이 벌어지고도, 그를 따르는 동료와 제자, 언론과 일반인이 많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이 영화가 관객에게 보내는 메시지는 두 가지다.

하나는 진실 추구를 갈망하고, 그것을 망각하지 않는다면, 언젠가 진실은 드러난다는 것이다.

진실은 존재한다. 하지만 실체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누군가의 의도에 따라 감춰질 때다. 그렇게 한 번 감춰진 진실은 밝혀내기 어렵다.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밝히려는 노력이 허사로 돌아가는 현실이 이를 증명한다. 아직도 세월호가 허망하게 바닷속으로 가라앉은 이유조차 속시원하게 규명되지 못했다. 하지만 진실이 밝혀진다고 해도 그것을 모두가 원하지 않는다. 자신과의 이해관계에 따라 진실을 대하는 태도는 달라진다.

다른 하나는 국가나 조직의 이익을 맹목적으로 추구하는 태도다. 거기에는 인간도, 윤리도 없다. 오직 평판과 돈, 명분과 영향력만 있다. '그래야만 될 거짓'과 '그래서는 안될 진실', '믿고 싶은 속임수'와 '감추고 싶은 사실' 중 무엇이 더 가치 있는 것일까. 이 영화가 관객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영화 <제보자>의 시발점은 방송국으로 걸려온 '난자매매' 제보였다. 그리고 윤민철 PD는 불법으로 매매된 난자가 이장환 박사 연구실로 공급되는 사실을 포착하고 취재를 시작한다.

방송국은 국가의 영웅으로 칭송받는 그에게 흠집을 내는 보도가 부담스럽다. 그럼에도 보도를 강행한 것은 제보자 심민호 연구원의 용기 때문이다. 심 연구원은 윤민철PD를 만나 "진실과 국익 중 무엇이 우선이냐"고 묻는다. 윤 PD가 "진실이 궁극적으로 국익에 기여한다"고 답하자 놀랄만한 진실을 털어놓는다. 이장환 박사가 만든 11개의 인간체세포 줄기세포는 존재하는 않는다는 것이다.

취재는 쉽지 않았다. 진실을 파헤치는 노력은 이장환 박사를 따르는 무리의 집요한 방해를 받는다. 또다른 복병도 있었다. 진실을 밝히는 것이 국익에 반한다는 정부의 압력과 언론의 비난이었다. 게다가 이장환 박사를 옹호하는 여론이 촛불시위로 번진 데다, 인터뷰 과정에서 강압이 있었다는 의혹까지 불거진다.

우여곡절 끝에 이장환 박사의 불법난자 제공과 논문조작을 고발하는 방송이 보도된다. 그럼에도 이 영화의 말미에 이장환 박사는 아무 말도 없이 애꿎은 TV리모컨만 박살내고, 현실에서도 이 박사를 옹호하는 여론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이것이 바로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불편한 이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