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없었다. 살아 숨 쉬고 있지만, 어느 누구도 그들을 생각하지 않았다. 아예 잊힌 사람이었다. 부재한 그들은 분하고 화가 났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들은 누군가가 알아봐주길 기대하지 않았다. 부자들에게 천대 받는 삶을 그대로 받아들였고, 외롭고 처연한 삶이지만 누군가에게 지배되거나 눈치를 보지 않은 자신의 삶을 살았다.
가장 격렬하고 비극적인 역사는 부재가 아니라 과잉에서 나왔다. 그들의 부재도 역시 자본주의의 과잉에서 비롯됐다.
영화 <부재하는 사람들>은 자본주의가 쓰나미처럼 휩쓸고 간 통렬한 상처다.
그들은 폐가와 다름 없는 오두막에서 산다. 그 집은 재개발로 곧 허물어질 위기에 처했다. 그곳에 갈 곳 없는 노인이 들어와 살았고, 어느 날 젊은 청년도 그 곳에 들어온다.
풍경은 느리고 고요하다. 다큐멘터리처럼 사실적으로 그들의 삶을 밀착해 여과 없이 노출시킨다. 그들 앞에 정말 카메라가 없는 것 같았고, 그들의 모습 또한 전문 배우가 아닌 듯싶었다.
영상 자체도 편집을 최소화했다. 오랜 시간 카메라로 한 곳을 응시하거나 굼벵이가 걸어가는 것처럼 이동시켰다. 첫 시작부터가 그랬다. 소는 여물을 씹고, 냄비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영상이 2분 정도 이어지다 천천히 식사를 하는 노인의 뒷 모습을 포착하는 식이다.
노인의 몸은 가죽만 남았다. 노인은 소를 먹이고, 빨래를 하고, 총을 닦는다. 또 바다에서 몸을 씻는다. 혼자 사는 것이 익숙한지 몸에 걸치는 옷은 중요치 않다. 청년의 일상도 노인과 같다. 다른 건 하나, 젊다는 것. 훨씬 더 탄력적이고 건강한 육체를 소유했지만 노인과 빙의된 것처럼 행동했다.
나중에 노인과 청년이 후라이팬에 밥을 볶는 장면이 강렬한 전자음과 함께 연출된다. 전혀 다른 현실을 사는 그들을 마술처럼 중첩시킨다. 청년을 통해 노인의 젊은 시절을 불러오는 것 같은 기법이다.
노인의 집은 끝내 철거를 당하고, 노인과 청년은 한 식탁에서 만난다.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모습에서 가슴 찡한 슬픔이 밀려온다. 이 장면은 이 영화에서 가장 마음이 아프다. 평생을 우리 사회의 부재자로 살았다는 생각과 함께 인간성마저 제거시킨 자본주의의 피폐함이 절절하게 느껴져서다.
이 영화는 붉은 기를 들고 팔뚝질을 하는 모습보다 더 처절한 선동이다. 최소한의 서사로 세대를 연결하며 자본주의의 민낯을 드러낸다. 게다가 아련하고 아름답게 펼쳐지는 멕시코의 자연은 눈을 즐겁게 하고 마음의 안식을 선사한다. 영화가 아니면 경험할 수 없는 감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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