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강경대 평전

013. 마음씨 좋은 예비사업가

이동권 2021. 11. 15. 15:03

눈 내리는 날 선미와 경대

 

강경대는 유혹이 일거나 무례한 일을 당할 때, 언제나 원칙을 세우고 사랑으로 일관하며 흔들리는 마음을 바로 잡았다. 친구들과의 다툼이 생길 때에도 먼저 상대방의 입장이 돼 자신을 질책했다. 얻어터지고 싸우는 일이 있어도 상대방을 먼저 아끼고 용서했으며, 이러한 행동이 남자답고 옳은 일이라 생각했다.


사춘기 시절 남학생들 중에는 상대방이 조금만 비위에 거슬려도 화를 참지 못하고 무조건 주먹을 날리는 애들 때문에 싸움이 커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경대도 친근한 마음으로 했던 장난 때문에 그런 일을 당했다.


수업이 끝나고 쉬는 시간이었다. 경대는 장난을 치다 책상에 엎드려 자고 있던 친구와 부딪쳤다. 힘 꽤나 쓰는 친구였다. 그 친구는 짜증 나는 얼굴로 일어나서는 이를 드러내 놓고 웃으며 빈정거렸다. 


“야, 뭐야.”
“어, 미안. 장난치다 부딪쳤어. 미안해.”
“미안하다면 다야.”
“친구끼리 장난치다 모르고 그럴 수도 있잖아.”
“뭐라고.”


친구는 팔다리를 잡아끌면서 경대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경대도 참을 수 없어 막무가내로 치고 박았다. 


다른 친구들은 숨을 죽이고 이 싸움을 흥미진진하게 구경했다. 괜히 싸움을 말리려고 나섰다가 불똥이 튈까 걱정하는 눈빛이었다. 싸움은 쉬는 시간이 끝나고 수업이 시작되면서 자연스럽게 정리됐다.


경대는 코가 터져서 집에 왔다. 어머니는 퉁퉁 부어오르고 빨갛게 생채기가 난 경대의 얼굴을 보고 깜짝 놀랐다. 평소에 이런 일이 없었기 때문에 마음이 초조하고 불안해 어찌 할 바를 몰랐다.


어머니는 경대의 어깨를 감싸면서 물었다.


“경대야. 얼굴이 왜 그래. 무슨 일이야?”
“아무 일도 아니에요.”


경대는 고개를 숙인 채 담담하게 말했다. 


“아무 일도 아니긴. 얼굴 좀 봐봐. 얼마나 아팠을까.”
“친구랑 싸웠어요. 제가 먼저 잘못해서 그런 거예요. 그 친구는 잘못 없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어머니는 애지중지하던 아들의 얼굴에 난 상처를 보고 눈물이 핑 돌았다. 차라리 자신이 다쳤으면 이렇게 마음이 아프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경대가 이런 어머니의 마음을 모를 리 없었다.


“엄마. 걱정 끼쳐서 죄송해요.”


경대는 고개를 숙인 채 더 이상 얘기를 하지 않고 학교에서 했던 일 중에 가장 바보스러운 짓을 했다고 자책하며 방으로 들어갔다. 


어머니는 어깨가 축 쳐진 경대를 안쓰럽게 보면서도 남자 아이들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어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1년이 지난 뒤, 어머니는 경대와 싸웠다는 친구의 어머니에게 뜻밖의 얘기를 들었다. 


“경대 어머니. 죄송합니다.”
“무슨 말씀이세요?”
“예전에 우리 아이가 경대를 때린 거 말이에요.”
“경대가 먼저 잘못해서 생긴 일이라고 하던데요?”
“아니에요. 저희 아이가 먼저 잘못한 거래요.”
“애들끼리 싸울 수도 있죠.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어머니는 놀라지 않았다. 역시 ‘경대구나’ 하고 피식 웃었다.


사람들은 사춘기를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말한다. 사납게 부는 바람, 무섭게 소용돌이치는 물결과 같은 시기라고 해서 그렇게들 비유한다. 이 시기가 되면 남학생들은 대부분 말 수도 줄고 반항적으로 변하며, 이성에 관심이 많아지고 퉁명스럽기까지 해 어른들의 걱정을 산다. 그러나 경대는 사춘기마저도 까다롭지 않게 넘겼다. 스스럼없이, 험 잡을 데 없이 고요하고 평화로운 시간을 보냈다. 


휘문고 동문들도 경대를 ‘자신이 해야 할 일은 빈틈없이 하려고 노력’한 친구로 기억한다.


“축구를 좋아하고 순진하며 모든 일에 열심이었던 친구였어요. 너그럽고 성실했죠. 이해심도 많고요. 무엇보다도 경대는 착했어요. 진정으로 사람들을 위할 줄 알았죠. 해맑게 웃는 모습이 정말 보기 좋았어요.”


경대는 부모님 말씀이라면 무조건 복종했다. 시골에 사는 아이들보다 더 순박할 정도였다. 어떻게 보면 마마보이처럼 순종적이었고, 집과 학교만 왔다 갔다 했다. 어머니와 함께 있는 것을 너무도 좋아해서다.


경대는 애교도 많았고 늘 어머니가 좋아하는 말만 했다. 동시에 행동거지도 점잖고 무게가 있어 매사에 어른스러웠다. 


“엄마, 소자이옵니다. 하루 종일 별고 없으셨는지요?”
“그래, 아들도 학교에서 별일 없었지?”
“엄마 아들이잖아요. 열심히 공부하고 왔어요. 제가 커서 효도할 날만 꼽고 있는 거 아시죠.”


어머니는 이런 얘기를 들을 때마나 경대가 너무도 자랑스러워 품에 안아줬다. 


어머니를 향한 경대의 마음은 선물을 살 때 가장 확연하게 드러났다. 수학여행 때였다. 경대는 용돈이 부족해서 가족들의 선물을 모두 살 수 없었다. 그래도 어머니 선물만은 꼭 챙겼다. 


아버지는 어머니만 생각하는 경대를 보면서 서운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장난스럽게 농담을 했다. 


“경대는 엄마만 좋아하나봐. 아빠는 아무것도 아니네.”
“용돈이 없어서 엄마 선물밖에 못 샀어요. 이해해 주세요. 아빠. 나중에 효도 많이 할게요.”


경대는 따뜻한 말로 아버지를 달래며 안아주었다.


아버지 말씀이라면 하늘같이 따르던 경대였지만 그에 못지않게 아버지의 자식 사랑도 보통은 아니었다. 
경대가 대학에 들어가기 전이었다.


“너 아빠한데 고추 한번 보여줄래.”
“아빠, 요번이 마지막이에요. 자, 엄마 아빠의 멋진 작품이니까 감상하세요.”


경대는 웃으면서 허리춤을 풀었다. 사춘기 때였지만 경대는 부모님의 짓궂은 요구에도 예민하게 굴지 않았다. 심지어 경대는 아버지의 젓을 물기도 했다. 보통 자식들은 조금만 크면 부모님의 손을 잡는 것도 어색해하거나 싫어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경대는 그렇지 않았다. 


경대는 명지대학교에 가고 싶지 않았다. 더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싶었다. 하지만 ‘재수’라는 부담이 만만치 않았다. 그 당시 명지대는 전기 모집에서 낙방한 학생들이 후기대 전형으로 응시해 들어가던 학교였다. 그래서 공부는 좀 하지만 재수하기 싫은 학생들이 많이 입학했다.  


어머니는 경대가 ‘삼수’를 했으면 하고 바랐다. 아들의 공부 욕심을 막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아버지는 단호했다. 재수 이상 공부하는 것을 강하게 반대했다. 또 누나가 같은 대학 중문과에 다니고 있어서 이 정도면 됐다 싶었다. 


아버지는 경대의 명지대학교 합격통지서를 받아들고 고민하다 경대를 불렀다.


“삼수를 하고 싶다고?”
“예. 다시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가고 싶어요.”
“한 번이면 족하다. 삼수는 허락할 수 없다. 누나가 먼저 다니고 있으니까 함께 손잡고 다녀라. 대학도 중요하지만 이제는 사회를 배울 생각을 해.”
“예. 알겠습니다.”


경대는 군말 없이 아버지의 뜻을 따랐다. 아들을 항상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주기 위해 노력하는 아버지의 판단을 의심하지 않았다. 경대가 경제학과를 선택한 이유도 사업을 시키려는 아버지의 권유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경대가 사회에 나가기 전에 사회를 몸소 체험하길 원했다. 그래서 아버지는 혹독한 훈련을 준비했다.


“경대야. 대학을 졸업하면 곧바로 취직하지 마라.”
“시키실 일이 있으세요?”
“리어카를 사줄 테니까 일 년 동안 배추장사를 해봐라.”


경대는 갑자기 배추장사를 하라는 말을 듣고 머리를 갸우뚱했다. 아버지의 속 깊은 뜻이 무엇인지 궁금해 신경을 곤두세웠다.


“피부로 직접 경험해야지만 세상을 안다. 밑바닥에서부터 굴러봐야 세상을 헤아릴 수 있고, 사회의 일원으로서 제대로 된 역할을 할 수 있지. 그래야 사업을 해도 성공할 수 있다. 사회를 그만큼 알아야만 해.”
“예, 열심히 배울게요.”


아버지가 무엇을 가르치려고 하는지 간파했던 경대는 흔쾌히 승낙했다. 하지만 경대는 어린 나이지만 사업에 대한 자신만의 생각은 확고했다.

어른들이 너무 자본주의적 세파에 찌들어 이기주의와 출세주의의 늪 속에서 헤매고 있다. 나는 졸업 후에는 그렇게 살지 않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