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강경대 평전

014. 편애 속에 꽃핀 남매愛

이동권 2021. 11. 15. 15:06

선미의 초등학교 입학 전날

 

강경대는 자신에 대한 사랑, 가족에 대한 애정 없이는 이웃에 대한 헌신도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가장 가까이에서부터 사랑을 발견하고 실천했으며, 자신의 순수한 마음에 해가 된다면 그 어떠한 것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어머니는 딸 선미보다 아들 경대를 더 사랑했다. 남아선호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어머니의 경대 사랑은 남달랐다. 어머니의 마음은 온통 경대에게 치우쳐 있었다. 남편도, 딸도 아니고 경대가 최우선이었다. 사골 국을 끓여도 경대 먼저 챙겨줄 정도였다. 


대신 아버지는 선미를 더 사랑했다. 딸은 아빠 딸, 아들은 엄마 아들이었다. 


어머니는 경대 때문에 ‘유난스러운 엄마’라는 놀림을 많이 받았다. 시간이 나는 대로 경대와 대화하고, 손을 잡아주거나 쓰다듬어주었다. 하루라도 경대를 안아주지 않으면 이상할 정도였다. 


동네 아주머니들은 경대에게만 관심을 쏟는 어머니를 볼 때마다 핀잔을 줬다. 그래도 어머니는 별 상관없다는 듯 개의치 않고 웃어넘겼다.


“경대 엄마는 아들밖에 몰라. 시장에 가면 보통 신랑부터 챙기는데, 아들만 챙기잖아.”
“아들이 잘 먹으면 신랑도 좋은 거지. 뭐.”
“경대 엄마, 아들한테 너무 치우쳐서 키우다 이다음에 아들 결혼시키고 난 뒤 그 허전함을 어떻게 감당하려고 그래. 경대의 관심에서 멀어지는 것을 견딜 수 있겠어?”
“그때 되면 풀 숙제지요.”


어머니는 경대가 먹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지 직접 해줬다. 경대가 늦은 밤에도 비빔국수를 해달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큰 대접에 3인분씩 비벼줬다. 한 번도 나가서 사 먹으라는 소리를 하지 않았다. 자식의 건강을 위해서였다. 


경대가 몸에 좋지 않은 인스턴트 소시지를 먹고 싶다고 할 때에도 소시지뿐만 아니라 야채와 달걀을 더 많이 넣어서 실컷 먹게 했다. 그 당시 집에서 요리하기 힘들었던 햄버거도, 돈가스도 모두 다 손수 만들어주었다. 쉽게 사다 먹여본 적이 없었다. 


때론 집에서 하기 힘든 장어구이, 피자, 숯불갈비 같은 음식을 먹고 싶다고 하면 망설임 없이 식당에 데려갔다. 돈이 많아서라기 보다는 남부럽지 않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어머니는 그런 마음으로 경대를 키웠다. 


어머니의 별난 경대 사랑을 부러워했던 선미도 사실은 경대를 끔찍하게 아꼈다. 누나를 아끼는 경대의 마음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선미와 경대의 사이는 좋았다. 경대는 선미를 잘 따랐고 둘이 싸운 적이 없었다. 하나가 보이지 않으면 서로 먼저 찾았고, 거리낌 없이 장난도 잘 쳤으며, 가끔씩은 비밀이야기도 스스럼없이 나눴다. 


경대는 선미의 심복이기도 했다. 누나를 보호해야 한다는 의식이 투철했다. 혹시 무슨 일이라도 당할까봐 근심이 많아서 심부름도 대신 갔다. 


밤늦은 시간 통행금지가 있을 때였다. 


“선미야. 슈퍼에 가서 양파하고 달걀 좀 사와라.”
“예. 다른 건 필요 없어요?”


선미는 옷을 챙겨 입으면서 말했다. 


“엄마. 큰일 나요. 제가 다녀올게요. 누나는 여자잖아요. 요즘 강력범죄가 얼마나 많이 일어나는데요.”


경대가 강하게 반대했다. 


어머니는 웃으면서 경대에게 다녀오도록 했다.


경대는 대학에 다닐 때, 누나와 함께 집에 가기 위해 늦게까지 기다리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래서 선미는 외아들 겸 막내둥이인 경대가 부러울 때도 있었지만 늘 고맙고 든든해했다. 


하지만 경대는 부모님보다 선미를 더 어려워했다. 여자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경대는 공중목욕탕에 간 적이 거의 없었다. 아파트에 살다 보니 어머니가 집에서 목욕을 시켜주는 일이 많았다. 


경대가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신체적으로 변화가 오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뼈대가 굵어지고, 생식기 주변에도 털이 자라기 시작했다. 경대는 부끄러운 마음에 어머니에게 종종 이런 말을 했다.


“엄마, 누나한테는 비밀이에요.”
“누나가 알면 어때서 그래?”
“누나가 알면 창피해요.”
“……”


어머니는 남매를 키우면서도 경대만 챙겼기 때문에 마음 한 구석에는 선미에게 미안함이 많았다. 의식적으로 선미를 꼼꼼히 챙기려고 노력해 보았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은 일이었다.  

 

누나와 함께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는 경대
집 앞 골목에서 놀고 있는 선미와 경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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