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강경대 평전

011. 모든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고 싶다

이동권 2021. 11. 15. 14:54

아버지와 센베이를 먹는 경대

 

강경대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챙겨주는 자상한 아이였다. 진정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기도를 할 때 자기 자신을 위해서는 어떤 것도 원하지 않듯이, 경대는 자신을 잊고 진심으로 상대방이 필요한 것을 살폈다. 


아버지는 술과 담배를 하지 않았다. 그래서 가끔 입이 궁금할 땐 ‘센베이4)’를 사 와서 경대와 함께 먹곤 했다. 경대는 한창 과자를 좋아할 나이에도 더 먹겠다고 욕심을 내지 않고 아버지를 챙겼다. 또 호주머니에 조금이라도 여유가 있으면 집에 들어올 때 꼭 과자를 사 와서 가족들과 함께 먹었다. 


“센베이구나.”


아버지는 경대가 사 온 과자를 보고 말했다.


“아빠가 좋아해서 사 왔어요. 드세요.”


경대는 TV를 볼 때도 그랬다. 좋아하는 만화영화를 보다가도 아버지가 자주 보는 축구나 권투 경기가 나오면 알아서 채널을 돌렸다.


“아빠. 권투 하네요. 보세요.”
“만화영화는 어떻게 하고?”
“괜찮아요. 아빠랑 같이 권투 보는 게 더 좋아요.”


아버지는 마냥 흐뭇해 미소가 가시질 않았다.


경대가 이모 집에 혼자 놀러 갈 때였다. 경대는 술을 좋아하는 이모부를 위해서 술을, 빵을 좋아하는 이모를 위해서 빵을 사 갔다. 누가 시켜서 한 게 아니었다. 


경대 이모는 고마운 마음에 어머니에게 전화를 했다. 


“뭘 그런 걸 보냈어. 잘 먹을게.”
“무슨 소리야?”
“경대한테 술 하고 빵을 보내지 않았어?”
“아니. 난 그런 적 없는데.”
“경대가 사 왔나 보네. 아이고,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하고 말이야. 어린 게 참 생각이 깊네.”


경대 이모는 경대의 남다른 성품을 발견하고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경대는 훌륭한 사람으로 커서 큰일을 할 거야.”


경대는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자상했다.


어머니는 경대를 위해서 교육보험을 들었는데, 하루는 경대가 집에 혼자 있을 때 보험 아주머니가 찾아왔다. 그 시절에는 보험설계사들이 직접 집에 와서 수금을 하곤 했다. 


“엄마, 지금 집에 안 계시는데, 곧 오시니까 여기 앉아서 기다리세요. 마실 것 좀 드릴까요. 아주머니는 어떤 음료수를 좋아하세요?”
“오렌지 주스 좋아하는데.”


경대는 말이 떨어지자마자 냉장고에서 주스를 꺼내 컵에 가득 따라서 아주머니에게 대접했다. 보통 아이 같았으면 미처 신경 쓰지 못할 행동이었다.


경대는 거짓말도 몰랐다. 


경대 가족이 아파트로 처음 이사를 왔을 때였다. 


아파트 상가에 있는 슈퍼는 집집마다 인터폰으로 연결이 돼 있었다. 집에서 전화기를 들고 벨을 눌러 주문을 하면 배달까지도 해주는, 그때 당시 최고의 최신식 아파트였다. 


어느 날 슈퍼에서 전화가 왔다. 


“경대가 과자를 집어 들고 가려고 하지 뭐예요?”


어머니는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고 슈퍼로 달려갔다. 놀라기는 경대도 마찬가지였다. 누명을 쓴 사람처럼 분하고 답답하다는 표정이었다. 


“경대야, 어떻게 된 거니?”


어머니가 책망하듯 물었다.

 
“친구가 그냥 가져가도 된다고 해서 그랬던 거예요.”


어머니는 경대의 말을 의심하지 않았다. 거짓말을 못하는 경대의 성격을 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경대 친구의 어머니는 다른 얘기를 했다.


“경대가 제 아이를 꾀여 먹을 것을 집어 들었어요.”


경대는 억울한 마음도 들었지만 친구가 걱정돼 대꾸를 하지 않았다. 그러나 진실은 금방 밝혀졌다. 경대 친구가 대뜸 실토한 것이다.


“엄마, 경대 말이 사실이에요.”


어머니는 경대를 키우면서 별다른 질책을 하지 않았다. 자기 앞가림을 올곧게 잘해서 신경 쓸 일이 없었다. 모두 가정교육의 영향이었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지만, 1970년대의 사람들도 재산을 모으면 사회에 환원하기보다는 자식에게 물려줘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부유한 사람이나 가난한 사람이나, 유식한 사람이나 무식한 사람이나 풍족한 삶을 유일한 삶의 목표로 삼았다. 그래서 타인의 삶에 관심을 갖는다는 것은 결코 흔한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경대의 부모님은 달랐다. 자식한테 재산을 물려주는 것을 탐탁지 않게 여겼고, 남의 도움을 받지 않고 자수성가하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부질없는 욕망은 건강한 정신을 갉아먹어 삐뚤어진 삶으로 유혹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래서 어머니는 경대에게 입버릇처럼 말했다. 


“재물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생기기 때문에 남의 것을 탐내지 마라. 서로 부담을 주지 않고 배려하면서 사는 것이 좋다. 남의 마당에서는 지푸라기라도 잡지 마라. 도둑으로 몰릴 수 있다. 남의 집의 금은보화보다 내 집의 쇳덩이가 소중하다. 아무리 좋은 것을 먹고 싶어도 빌리지 말고 외상 하지 말고 간장, 소금, 밥이 있으면 그것으로 끼니를 해결해라.”


어머니는 이런 소신 때문에 처음 살림을 일구면서도 남에게 손을 벌리지 않았다. 쌀이 없으면 콩, 수수, 좁쌀을 섞은 잡곡밥을 먹었고, 반찬은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김치에 간장이면 족했다. 지금이야 이만한 건강식이 따로 없지만 그 시절 잡곡밥은 없는 사람들이 부실하게 먹는 주식이었다. 


경대는 자라면서 부모님의 뜻을 본받고자 애썼다. 거역할 수 없는 훈령처럼 자신에게 주어진 숙명으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경대는 주위의 기대와 관심을 져버리지 않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서 밝고 사랑스러운 사람이 되려고 했다. 또 쓸모없는 욕망과 근심을 떨쳐버리고 자신이 갖고 있는 재능과 힘을 겸손하게 사용하기 위해 애썼다. 이러한 고민은 경대가 남긴 일기장에서 발견된다.

나는 사업가가 되고 싶다. 
그리고 죽을 때 모든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고 싶다.

 

 

4) 센베이(せん-べい)는 밀가루나 쌀가루를 반죽해 얇게 구운 수제 과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