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강경대 평전

010. 약속을 지킨 부자

이동권 2021. 11. 15. 14:51

아버지 품에 안긴 경대


경대는 동정심이 많아서 어려운 사람을 보면 지나치지 못했다. 이웃들에게 떡을 갖다 주라고 심부름을 시키면 셋방 사는 사람들부터 챙겼고, 거리에서 구걸하는 사람을 만나면 외면하지 않고 가지고 있는 돈을 모두 주었다. 무거운 짐을 들고 가는 할머니가 있으면 나서서 들어줬으며, 길을 묻는 사람이 있으면 혹시라도 잘못 찾아갈까 걱정스러운 마음에 직접 데려다줬고, 행여 갈 수 없을 만큼 먼 곳이라면 알아들을 때까지 자세하게 설명해 줬다. 소외를 느껴보지도 않았고, 업신여김을 당해보지도 않은 나이였다. 하지만 경대는 영적인 영역으로부터 자연스럽고 소박하게 진실한 마음을 싹틔웠고, 실천했다.


“거리에 어려운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 같아요.”


경대는 애석한 눈빛으로 말했다.


“마음이 좋지 않았구나?”


어머니는 어린 경대의 마음을 풀어주기 위해 물었다.


“예. 그래서 제가 가지고 있는 돈을 모두 주었어요.”
“장한 우리 아들. 사람은 나누면서 살아야 하는 거야.”
“엄마는 제 마음을 이해해 주실 줄 알았어요.”


경대는 일렁이는 햇살처럼 방긋 웃었다. 


경대는 친척들이 자기 집보다 어렵게 사는 것도 마음 아파했다. 그래서 친척집에 놀러 갈 때는 두 손에 음식을 잔뜩 들고 갔고, 사촌형들에게는 돈만 생기면 무엇이든지 사주면서 입버릇처럼 어머니에게 말했다.


“엄마, 우리는 따뜻한 아파트에서 사는데 이모, 외삼촌은 춥게 사는 것 같아요. 저만 너무 많은 것을 누리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경대는 울지 않았다. 절대로 약한 모습을 보이려하지 않았다. 속으로는 슬픈 일도, 괴로운 일도 많았겠지만 의연하게 행동했다. 


부모님 앞에서는 더욱 그랬다. 코뼈가 부러져 깁스를 하고 왔을 때도 고통스러워하기보다는 아들을 애지중지하는 어머니를 걱정시키지 않으려고 애썼다.


“엄마 많이 안 아파요. 좀 있으면 괜찮을 거예요.”


어머니는 경대의 얘기만이 무슨 뜻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걱정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 일부러 고개를 돌려 다른 일을 하는 척하기도 했다. 


경대는 유별나게 자신에게 엄격했다. 고등학교 겨울방학 때였다. 사촌형과 거리를 거닐다 눈 위에 떨어진 10만 원짜리 수표를 발견했다. 


“형. 수표가 떨어져 있네. 누가 떨어뜨렸나봐. 파출소 갖다 주자.”
“파출소에 갖다 주면 경찰관들이 다 써버릴지도 몰라. 이 돈 우리가 갖자.”


사촌형은 경대를 말렸다. 하지만 경대는 마음이 개운치 않았다.


“그래도 될까. 잃어버린 사람은 애타게 찾고 있을 텐데.”
“괜찮아. 이 돈의 주인은 이제 바로 너야.”


경대는 사촌 형의 얘기를 딱 잘라서 무시할 수 없었다. 하지만 꺼림칙하고 찜찜한 기분은 숨길 수 없었다. 경대는 하는 수 없이 그 돈으로 사촌 형의 청바지를 사주고 집으로 돌아와서 어머니에게 자초지종을 털어놓았다.


“엄마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형한테 청바지를 사준 것은 잘했는데, 방법은 옳지 않구나. 그 돈은 애초부터 네 것이 아니야. 주인을 찾아주는 게 옳아. 다음부터는 꼭 주인을 찾아줘. 남의 것은 절대로 탐하는 게 아니야.”
“그렇죠.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다음부터는 안 그럴게요.”


경대는 이후 주운 돈을 함부로 사용하지 않고 주인을 찾아주었다. 


경대는 어렸을 때부터 절약정신이 몸에 뱄다. 백 원짜리 하나라도 허투루 생각하지 않았다. 또 어려서부터 물건을 아끼는 습관 때문인지, 때때로 남들이 버린 물건을 툴툴대며 집으로 가져오곤 했다. 


“엄마. 사람들은 왜 쓸모 있는 물건을 내다 버리는지 모르겠어요.”
“엄마가 보기에는 쓰레기 같은데.”
“아니에요. 깨끗이 닦으면 쓸 만해요. 이 그릇은 연필꽂이로, 이 종이는 공부할 때 연습장으로 쓰면 아주 그만이겠어요. 그리고 이 플라스틱 용기는 밑에 구멍을 뚫어서 작은 화분으로 쓸 거예요.”
“이번 만이다. 다음부터는 주워오지 마라.”
“…….”


어머니는 냉정하게 타일렀다. 그러나 소용이 없었다. 어르고 달래도 말짱 헛수고였다. 포기하는 것이 가장 현명했다. 


이후에도 경대는 계속해서 집으로 뭔가를 주워왔고, 이리저리 짜 맞춰서 뭔가를 만들었다. 어머니는 이런 경대가 순박하게도 보이고, 커서도 빈틈없이 살아갈 것 같아 뿌듯했지만 어린 아이 같지 않아 한편으로는 걱정도 됐다.


경대가 작은 것이라도 아끼고 절약하는 행동은 아버지에게 배웠다. 아버지도 쓸 만한 물건이 버려져있으면 집에 들고 오곤 했다. 어머니는 그때마다 한 마디씩 거들며 핀잔을 줬다.


“당신 닮아서 경대도 주워 오잖아요. 누가 보면 얼마나 궁색하다고 하겠어요. 다음부터는 주워오지 마세요. 필요하면 그리 비싸지 않으니 사서 쓰자고요.”“재활용하면 아무렇지도 않은데 왜 그래요. 자원도 없는 나라에서 이런 거 버리면 벌 받아요. 쓸 데가 있으니까 주워오는 거예요.”


아버지는 호통을 치며 고집을 부렸다. 


아버지는 아들의 교육을 위해서라면 먼저 솔선수범했고, 약속은 꼭 지켰다. 


아버지가 금연하기로 한 것도 경대와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아버지가 오래 사셔야 집안이 평온하죠. 당장 담배 끊으세요.”
“그래, 네가 원한다면 그렇게 하지. 그럼 너도 나하고 약속해라. 대학에 꼭 가는 거다.”
“예. 좋아요.”


아버지는 경대와 약속을 한 뒤 그 자리에서 담배를 비틀어서 휴지통에 버렸고, 그 이후로는 단 한 개비의 담배도 피지 않았다. 


사실 아버지는 담배를 피우고 싶은 유혹을 견디기 힘들었다. 누가 옆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으면 냄새라도 한 번 맡고 싶어 기웃거렸고, 경대 몰래 몇 모금이라도 빨고 싶은 충동도 여러 번이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꾹 참았다. 부모가 자식과 한 약속을 어기면 교육시킬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경대도 아버지와의 약속을 지키는 데 1년이라는 시간이 더 필요했지만, 결국 명지대에 입학해서 약속을 지켰다.

 

아버지와 함께 공원 벤치에 앉아
가족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