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객석과 무대

[무용] 춤추는 허수아비 - 탐욕에 대한 경고

이동권 2022. 10. 27. 19:08

춤추는 허수아비


춤추는 허수아비는 부동산 개발자의 탐욕에 맞서 고향땅을 지키려는 허수아비의 이야기다. 이 무용극은 도덕과 정의보다 돈이 우선인 우리 사회의 부조리를 정공법이 아니라 풍자와 조롱으로 풀어낸다. 노익장을 과시하는 할머니와 순수한 처녀, 허수아비와 닭, 풀과 숲의 정령 등이 부동산 개발업자와 맞서며 관객들을 웃기고 울린다. 

춤추는 허수아비의 미덕은 감동을 이끌어내는 섬세한 화법에 있다. 이 무용극은 무용가들의 역동적인 연희, 관객들을 동화시키는 무대매너, 영상과 무용수의 춤을 접목시켜 작품의 퀄리티를 한층 더 끌어올렸다. 

부동산 개발업자의 춤사위와 어우러지는 포클레인 영상은 이 무용극에서 빼놓을 수 없는 백미다. 또 허수아비와 다툼을 벌이는 닭의 코믹 연기도 볼만하다. 무용과 재미를 연결시키는 매듭이 아주 견고해서 코믹한 연기조차 무용처럼 보였다. 그리고 닭이 털을 뽑힌 뒤 발레리나 옷을 입고 백조의 호수를 패러디한 부분은 박장대소를 이끌어낸다. 

음악은 경쾌했다. 영화 자토이치의 음악이 생각날 정도로 투명하고 유쾌한 기분에 젖게 하는 배경 음악이었다. 신디사이저로 타악기 소리를 내며 리듬을 탄 것 같았다. 게다가 극에 몰입하는 무용수들의 얼굴 표정과 절도 있는 춤사위는 기본 실력 못지않게 진심을 다하는 것을 느끼게 해 훈훈한 감동을 줬다. 정말 춤을 즐기고, 뭔가 간절하다는 느낌이랄까. 

허수아비와 처녀의 순수한 사랑이야기도 가슴을 따뜻하게 했다. 사실 허수아비의 죽음과 재생은 극의 중반부터 예상했던 절정이었다. 그래서 예인동 예술감독이 이 무용극의 클라이맥스를 어떻게 끌고 나갈지 궁금했다. 역시 예상되는 결말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어색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아마도 우리 무용의 엄숙함을 깨뜨린 형식과 내용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