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7~8시에 등교해 아침자습을 하고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수업을 듣는다. 수업이 끝나면 보충수업이 이어지고, 저녁을 먹은 뒤 야자(야간자율학습)를 하고 밤 9시에 하교한다. 그러나 대부분 집에 가지 않고 학원으로 향한다. 학원 교습 제한 시간이 될 때까지 '열공'이다.
학생들은 자정이 넘어 집에 들어가지만 자지 않고 다시 책장을 펼친다. 4당 5락, 4시간 자면 붙고 5시간 자면 떨어진다는 말처럼 공부 삼매경이다. 이유는 단 하나다. 2호선이 지나는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서다. 그리고 마침내 합격 통지서를 받고 방방 뛰며 기뻐한다.
서울에 있는 대학, 특히 2호선이 지나는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혹독한 경쟁을 치른 뒤 꿈을 이룬 학생들의 대학생활은 어떠할까?
뮤지컬 ‘2호선 대학생’은 행복하지 않다고 말한다.
대학생들은 지옥 같은 입시경쟁에서 탈출했다고 여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새로운 경쟁이 이들을 기다린다. 출세하려고 저마다 숨 가쁘게 달음박질하는 사람들이 보이고, 바로 옆에는 좀 더 나은 직장에 들어가기 위해 책을 붙들고 스펙 쌓기에만 열중하는 친구들이 있다.
아니 그 정도면 다행이다. 2호선이 지나는 대학은 족집게 과외를 받은 부자들의 자녀가 점령했다. 어느새 가난은 죄가 된다. 어떤 학생은 좋은 승용차에 클럽을 전전하면서 즐거운 한때를 보내지면, 어떤 학생은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으면 등록금마저 감당하기 힘들 만큼 불균형이다.
그것뿐인가. 금수저(강남 8학군, 특목고)와 일반고 출신의 서열이 정해지고, 학과마다 등급이 매겨지며, 아버지의 직업과 집안의 형편에 따라 계급도 정해진다.
청춘들은 삶의 목표마저 잃어버린다. 입시 지옥에서 빠져나온 세상은 열등감과 상대적 박탈감을, 부조리한 사회는 무력감을 느끼게 한다. 또 사회의 잣대와 오랜 관습은 젊음을 발산할 기회까지 억압한다. 사회는 더 높이만을 외치며 경쟁을 강요할 뿐이다.
그때서야 청춘들은 뭔가가 잘못됐다고 느낀다. 간판주의에서 비롯된 경쟁은 삶이 끝나는 날까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이제는 뭔가 목소리를 내야 한다. 이들은 세상을 향해 외친다. 무엇을 위해 그렇게까지 경쟁해야 하는지 묻는다. 승자도 패자도 모두 불행한 경쟁이라고.
뮤지컬 ‘2호선 대학생’은 경쟁 사회의 맨얼굴을 들춰낸다. 어려운 이웃조차 둘러보지 못하는 악착스러운 경쟁에 이기주의는 날로 팽배하고, 그 경쟁에서의 패배를 굴종으로 여기면서 철저히 상처받고 병들어가는 청춘을 그린다.
학생들은 경쟁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아귀다툼해 왔다. 경쟁을 견디지 못하면 도태된다고 가르쳐서다. 부모도, 교사도, 주위 모든 어른들 모두 나서서 아이들의 경쟁을 부추겼다. 인생의 전부는 오직 하나. 입시생들에게 대학만 가면 행복이 주어진다고 믿게 했다. 하지만 세상은 만만치 않았다. 행복도 주어지지 않았다. 대학은 더욱 처절한 경쟁의 도가니였다.
‘2호선 대학생’은 경쟁을 통해서만 목표가 성취된다는 교육관부터 불식돼야 한다고 말한다. 더 나은 세상이 경쟁으로만 얻어진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의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슬픈 눈으로 고개를 떨군 대학생들의 자화상을 통해 인간은 실종되고, 물질만 남아 신음하는 대학을 투영하면서 우리 시대의 인식이 변하길 절실하게 꿈꾼다.
신촌 연세로 스타광장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앉아서 이 뮤지컬을 봤다. 그때 그 시절의 이야기가 여전히 유효한 것 같아 마음이 저린다. 당시 이 뮤지컬에 출연했던 청년예술가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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