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객석과 무대

[연극] 똥장 - 똥 누고 밑 안 닦은 것 같은 현실

이동권 2022. 10. 13. 21:16


먹고사는 일. 쉽지 않다. 수많은 군상이 모여드는 나이트클럽, 그것도 화장실이라는 공간은 그 자체로 현대인의 힘겨운 삶을 은유한다. 하물며 화장실에서 돈을 버는 ‘똥장’의 삶은 어떠할까. 똥을 참지 못해 쩔쩔매는 사람이 딱 그의 삶이다. 시끄러운 잡음, ‘찌릉내’가 풀풀 풍기는 변기, 욕설 섞인 말, 시시콜콜한 색정이 흐르는 곳에서 똥장은 머리가 땅에 닿도록 계속해서 절한다. 아~ 똥 마려운 날이다. 바지를 채 내리기 무섭게 총알처럼 쏟아지는 물똥을 누다가 밑 안 닦은 것처럼 찝찝한 현실이랄까. 

화장실의 상태는 각양각색이다. 화장실은 수세식도 있고 ‘푸세식’도 있다. 청결하지만 지저분도 하고, 이상한 냄새가 나지만 진한 인조향도 나며, 도색만화가 그려져 있지만 잔잔한 클래식이 흐르기도 한다. 화장실을 들르는 사람들도 다양하다. 배를 움켜쥔 채 발을 동동거리는 처녀도 있고, 오만상을 찌푸리며 마신 술을 게워내는 청년도 있으며, 의기양양하게 물건을 과시하는 중년의 신사도 있다. 화장실은 그야말로 천태만상. 연극 <똥장>은 이곳에서 삶과 사랑의 의미를 건져 올린다. 

나이트클럽 남자 화장실. 무대부터 예사롭지 않다. 뒤가 급한 사람이 노크할 새도 없이 화장실 문을 덜컥 열었다가 안에서 힘주고 앉아 있는 사람과 눈을 마주친 느낌, 아니면 볼일을 본 후에야 화장지가 없는 것을 알고 당황하는 순간 같다. 연극의 소재야 제한이 없다지만 이 공간을 무대로 끌어다 쓸 생각을 어떻게 했나 싶다. 정말로 똥을 화드득 누는 것 같은 아이디어다. 

무대만큼이나 대사도 자극적이고 맛깔스럽다. 청춘남녀 4명의 시선과 대화는 애욕 속에 녹아 흐른다. 성애에 얽히고, 과감한 만짐이 뒤따르며, 하룻밤 풋사랑을 위해 사력을 다한다. 간사한 가면을 뒤집어쓴 채 뒤에서 별의별 짓거리를 다하는 자들보다 차라리 낫다. 대담무쌍하게 싸지르는 이들의 대화와 태도는 통쾌하다. 하지만 이들에게서 삶의 비탄이 생생하게 감지된다. 완벽한 패러독스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사느냐’. 꼭 그것이 아니라도 좋다. 오랜만에 똥처럼 질퍽한 얘기를 들어봤다. 

우선 이 연극을 제대로 설명하기 위해서는 ‘똥장’이 무엇인지 소개를 해야겠다. 나이트클럽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일한다. 웨이터, 보조, 바텐더, 조명기사, 가수, 밴드, DJ, 똥장(화장실장) 등이다. 이 중에서 가장 힘든 일은 당연히 웨이터와 보조다. 술 취한 사람들 비위 맞추는 일, 보통이 아니다. 똥장도 같은 이유로 힘들지만 차원이 좀 다르다. 좀 구저분하달까. 

똥장은 화장실 구석에 있다가 손님들이 용변을 볼 때 어깨를 주무른다. 손님들이 용변을 본 뒤 손을 씻으면 수건을 건네고, 거울을 보고 있으면 아주 잠시 구두에 광을 내주고, 팔을 올리면 땀 냄새 밴 겨드랑이에 향수를 뿌려주고, 나갈 때는 강장제 같은 마실 것을 쥐어주면서 팁을 받는다. 머리를 조아리는 것은 기본. 손님이 팁을 안 주거나 기분을 상하게 했다고 성질부렸다간 쪽박 차기 일쑤다. 그냥 쫓겨난다. 요즘 젊은이들이 노는 클럽에는 똥장이 없지만 성인나이트클럽에 가면 말끔하게 차려입은 똥장을 종종 만나볼 수 있다. 

색등이 요란하게 켜진 유흥가, 돈 좀 뿌려가며 하룻밤을 새근하게 보내고 싶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물 나이트클럽’. 화장실에는 수줍음 많고 시를 쓰듯 세상을 관조하는 똥장이 있다. 반면 웨이터는 촐싹대고 유머러스하다. 작은 일에도 흥분해 몸뚱이를 몹시도 흔들고, 도리질(재롱)도 잘 친다. 똥장과 동창인 김 전무는 ‘저녁에 술 한 잔’에 집착한다. 고독을 힘겹게 견디는 듯 허무한 마음을 드러낸다. 그의 얼굴에는 ‘삶의 즐거움이란 게 별 것이 아니’라고 쓰여 있다. 

화장실은 용무가 급해서 들르는 곳이라 그랬다. 똥장으로 일하는 남자 화장실에 우연히 옛사랑이 술에 취해 들어와 웨이터의 싸대기를 갈기고 아무대서나 소변을 본다. 똥장은 추잡하고 남사스러운 그녀의 난행에도 웃음을 보인다. 그녀가 하나도 변하지 않은 것에 안도하며, 다시 새롭게 만남을 시작하고 싶다. 하지만 그녀는 똥장을 외면한다. 처음 본 사람인 것처럼 행동한다. 

추억은 질기다. 취기를 이기지 못하고 하룻밤을 보낸 두 사람. 똥장은 그녀에게 다시 잘 해보자고 운을 띄우지만 그녀는 똥장에서 돈을 쥐어주고 다시 가정으로 돌아간다. 그녀의 남편은 모든 여자에게 잘하는 바람둥이. 그래도 그녀는 가정을 버리지 못한다. 똥장은 그녀에게서 과거의 연정을 되살릴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녀는 변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시절, 사랑만으로 사람을 만나던 시절은 지나고 여러 가지 조건을 보는 나이가 됐다. 똥장은 똥장이라는 직업이 우리 사회의 나락이라는 것을 깨닫고 순순히 물러선다. 

똥장은 텅 빈 가슴을 움켜쥐고 자신을 그토록 따라다니는 미혼모를 만난다. 곧잘 맞장구를 쳐주는 말 상대, 먼저 어깨를 내어주는 편안한 그녀를 보면서 눈물이 울컥 쏟아진다. 자신의 처지에 맞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는 그녀에게 냉랭하게 굴었던 자신이 미웠으리라. 똥장은 갑자기 배가 고파진다. 삶의 희망이 샘솟는다. 과거가 어떠하든, 현재의 사랑에 마음을 연다. 설사 그것이 옛사랑만큼 흥분으로 인도하지 않더라도, 무엇이 더욱 행복한지 알게 된다. 

극단 새바가 창단 연극으로 <똥장>을 들고 나왔다. 밑바닥 인생, 겉보기에는 하찮은 인생이지만 먹고살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사랑도, 양심도, 의리도, 인정도 화장실 앞에서는 예외다. 급하면 먼저 싸는 게 인지상정. 제 아무리 잘 생기고, 돈이 많고, 지위가 높고, 다른 음식을 먹어도, 똑같이 화장실에 들려 똥을 싼다. 달리 말하면 빳빳한 돈도, 코 묻은 돈도, 똥 묻은 돈도 다 같은 돈이다. 그런 게 진리라면 똑같아야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똑같은 상황에서도 상대방 대할 때마다 달라진다. 가방끈 길고, 돈 잘 벌면 말부터 달리한다. 사랑까지도 그렇다. 애석한 세상이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입버릇처럼 말하지 마라. 

극단 새바의 앞날을 위해 힘을 주러, 사는 게 뭔지 힘을 받으러 가볼만한 연극이다. 에로틱한 연기도 물이 올랐고, 배우들의 열정도 머뭇거림 없다. 소재도 독특하고, 유머도 탑재했다. 웃음은 ‘개에게 줘버리고 평가하기에 바쁜 기자’들을 상대로 그 정도 보여줬으면 웃기다. 단, 한 가지 당부하고 싶은 점은 있다. 배우들의 대사가 너무 빠르다. 대사를 행동과 감정을 실어 조금만 천천히 음미하며 풀어내면 귀에, 뇌에, 몸에 착착 붙을 것 같다. 서로 싸울 때는, 탐할 때는, 사랑할 때는 말보다 감정이 먼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