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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는 남자 - 액션은 후끈한데 눈물은 왜 그렁그렁?

이동권 2022. 10. 25. 23:31

우는 남자, 이정범 감독 2014년작


첫 장면은 강렬했다. 피도 눈물도 없는 총질에 가슴이 구멍 났다. ‘저건 킬러가 아니라 살인마야.’ 하지만 이 남자, 한 여자 아이의 죽음에 엄청 집착한다. ‘살인마가 설마?’ 하지만 그때부터 멋진 장동건이 좀 이상해진다. 두 눈엔 눈물이 그렁그렁. 왜지? 한 번의 실수 때문에? 인생도, 사랑도 그렇지만 개연성 없는 애착은 과수를 두게 만들고, 사고를 잃은 집념은 인생을 망친다.  

영화 <우는 남자>. 액션 영화 팬이라면 봐도 후회는 없겠다. 피가 낭자한 칼부림과 사무실 결투 장면은 압권이다. 물론 가짜 피고, 가짜로 죽는 것이니 그렇다. 보편적으로 사람 죽이는 거 보고 웃을 사람 없다. 그런데 이 영화 아깝다. 화려한 액션이 한바탕 끝난 뒤 가슴에 남겨지는 ‘잔상’이 부족하다. 진부한 신파와 느낌 없는 편집증, 유년시절 트라우마가 오락가락하면서 헛기침을 유발한다.  

자고로 킬러의 아우라는 수도승과 같은 감정의 조절에서 나온다. 순수와 무소유, 정의를 꿈꾸는 와중에도 뒤돌아보면 모두 백일몽, 인생은 거대한 짐을 짊어지고 걸어가는 길이고, 슬픔과 좌절, 고독의 연속인 게다. 거기에서 킬러의 매력은 거세게 밀려 나온다. ‘우는 남자’는 애초 킬러가 되기에 자질이 부족해 보인다. 마지막 장동건이 자신을 죽음으로 내모는 장면은 저절로 한숨이다. 

영화 <아저씨>의 이정범 감독. 우리나라 최고의 남우 장동건과 N세대 스타 김민희. 물오른 연기를 선보인 김희원, 브라이언 티, 김주성. 미국 현지 로케까지 거사한 제작비. 와우! 이러한 요건에서 만든 영화치고는 아쉬움이 남는다. 

<우는 남자>가 재미없지는 않았다. 몰입도 된다. (팝콘에 가는 손을 멈출 만한 정도는 아니다.) 깡마르고 창백한 장동건의 얼굴, 으뜸이다. 백치미가 살짝 흐르는 역을 소화해낸 김민희의 연기, 볼만하다. 모든 일에 발정 난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해낸 김희원, 준수한 용모에서 터져 나오는 머더퍼커 김주성, 의리에 살고 죽는 장수를 연상시키는 브라이언 티, 괜찮다. 배우들의 연기와 영상미, 세밀한 연출력은 나무랄 수준이 아니었다. 하지만 스토리가 문제다. 관객의 공감을 끌어내지 못한 내러티브가 억지 감정을 부추겨 불편했다. 

장동건이 목숨을 걸고 지키려고 했던 그녀의 목숨. 상황을 인정하기에는 지나치게 연관성이 없다. 이국땅에서 사선을 넘나들며 킬러로 성장했던 냉혈한이 한 여자 아이의 죽음에 충격을 받고, 이 아이의 엄마를 구하기 위해 자신을 내던지는 영화 속 현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관객이 감동을 느끼는 것은 주인공과 동화됐을 때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관객의 감정선을 건드리기 위해 무리하게 상황을 설정하려다 오히려 반감을 일으킨 격이다.  

영화 <아저씨>는 아내를 잃고 홀로 전당포를 꾸리며 사는 원빈이 유일하게 자신을 찾아와 친구가 돼 줬던 옆집 소녀를 범죄조직으로부터 구출한다. 외로웠던 그에게 다가온 친구. 왜 원빈이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경찰의 추격을 받으면서까지 소녀를 구하기 위해 나섰고, 무시무시한 폭력을 휘두르게 됐는지 설득력이 있다. 청부살인업자와 소녀의 순수한 우정을 그린 영화 <레옹> 같은 경우, 마틸다가 레옹과 친구가 돼가는 과정을 충분히 삽입해 관객들을 영화 속으로 이입시켰다. 

하지만 <우는 남자>는 상황이 설득되지 않으니 자연스레 영화가 뿜어내는 강렬한 덩어리는 사라졌다. <아저씨>에서 보여준 슬픔의 색채, 폭력의 정당성이 덩그러니 빠진 ‘액션’과 ‘감성’만 둥둥 떠다녔다. 집으로 말하자면 대들보나 기둥이 없었다. 

이 영화는 스토리만 보완되면 옛 <아저씨>의 영광도 어렵지 않겠다. <아저씨>와 같은 것 같지만 스토리의 각도를 다르게 설정한 점은 높이 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