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엣지 오브 투모로우 - 지적 활동이 만들어낸 승리, 더그 라이만 감독 2014년작

이동권 2022. 10. 27. 16:28

엣지 오브 투모로우(Edge of Tomorrow), 더그 라이만(Doug Liman) 감독 2014년작


예측은 빗나갔다. 총과 수류탄을 움켜쥐고 민첩하게 돌진해 흉측한 외계 생물체를 몰살하는 전쟁 영화 정도로 생각했다. 아니면 시꺼먼 포연이 피어오르는 전장의 참혹한 풍경과 혁혁한 전과를 세우는 영웅의 활약상을 교차시킨 SF 서사물이라 여겼다.

아니었다. 시산혈해를 이루는 전장, 피비린내 나는 전투는 맞았다. 하지만 예견할 수 없는 요소가 개입되면서 새로운 SF물의 양상을 만들어냈다. 오랜 시간 전투를 할 수 있도록 비상식량과 탄알이 계속해서 보급되는 것처럼, 죽어도 죽어도 끊임없이 하루 전으로 돌아가는 '시간이동'이 그것이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 영화 <엣지 오브 투모로우>가 단박에 전해주는 메시지다. 비록 그것이 '시간이동'이라는 영화적 요소로 마모되긴 했지만 이 영화는 승리는 우연히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각고의 노력과 지적인 활동이 결합돼야만 가능하다고 알려준다. 

이 영화 추천한다. 간간한 영화다. 지레짐작으로 스토리를 예단하면 큰코다친다.

인류의 존망이 걸린 외계와의 전투. 직접 총을 들고 싸우지 않아도, 전장에는 나갈 수 없다. 자칫 잘못하다 죽을 수 있다. 주인공은 종이에 살을 베는 것조차 끔찍하게 여기는 군인. 그는 전투에 나가는 게 싫어 공보장교가 됐다고 자신을 소개할 만큼 나약하고, 나태하다. 

‘탈영죄’가 성립된다. 자기 살기만 바쁜 남자. 동료가 죽든, 인류가 멸망하든 관심 없는 군인, 두렵고 하기 싫으면 명령마저도 거절하는 웃긴 장교. 그는 전장에서 싸우고 있는 군인을 홍보하는 일을 거절하고 끝내 ‘탈영죄’ 명목으로 훈련소에 잡혀간다.  

계급은 소령에서 이병으로 강등된다. 훈련도 받지 못하고, 장비 다루는 법도 모른 채 자살 작전이나 다름없는 전투에 투입된다. 

동료들의 발길에 걷어차이기 일쑤다. 개나 고양이만도 못한 취급을 받는다. 비행기에 실려 전장에 나가는 순간에도 슈트 안의 시체로 놀림을 당한다. 하지만 떵떵거리던 동료들이 모두 풀썩풀썩 쓰러진다. 레이저탄이 우박처럼 쏟아지고, 외계 생명체가 날뛰기 시작하자 동료들의 시체가 걸레조각처럼 대지에 나뒹군다. 그리고 그도 죽는다. 하지만 시간은 다시 하루 전으로 돌아가고, 그는 살아난다. 죽을 당시 외계 생명체와의 접촉으로 같은 시간대를 반복하는 타임 루프에 갇혔기 때문이다. 이후 그는 똑같은 전장에 수도 없이 나가면서 자각한다. 자신만이 인류를 구할 용사라고 인식하고, 위대한 전사로 거듭난다.

무식하게 총질만 하는 영화가 아니다. 화려한 컴퓨터 그래픽으로 눈만 현혹하고, 절대적인 힘을 소유한 거성을 등장시켜 적을 대적하지 않는다. 어쩌면 너무도 평범하고, 부족했던 주인공은 끊임없는 노력과 강인한 의지로 외계와의 전투를 이겨내며 인류에 평화를 선사하다. 

설정이 무척 새롭다. 여태까지 보지 못했던 시간이동이다. 전술은 비교적 간단했다. 반복되는 상황을 겪으면서 적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내고, 적의 공격을 읽어낸 뒤 신속하게 적을 물리치고, 계속 나아가다 ‘대빵’을 죽인다. 하지만 거기에 시간이동이 맞물려 이야기는 다른 상태로 전개되고, 흥분을 고조시킨다. 

마지막 일군의 무리가 외계 생명체들을 조정하는 ‘대빵’을 죽이기 위해 목숨을 내던지는 장면은 내용상 꽤 진부하다. 하지만 이 영화의 결말은 승리란 우연히 만들어지지 않다는 것을 알려준다. 아울러 이들은 타인을 위해 자신을 버리는 행동에 기쁨과 환희를 경험한다. 자신이 아니라 타인을 위한 삶, 값지게 살다 죽는 마음가짐이 진정한 행복의 해답이라고 알려주려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