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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딜 - 기본적인 인권과 안전마저 내팽개칠 '민영화', 이훈규 감독 2014년작

이동권 2022. 10. 27. 16:41

블랙딜(Black Deal), 이훈규 감독 2014년작


두려움이 앞섰다. 초조와 공포가 엇갈렸다. 공공재가 하나둘씩 민영화된 나라는 피폐와 몰락을 거듭했고, 그 나라의 국민은 하루하루 퍽퍽한 삶에서 허덕이고 있었다. 마치 갈 길마저 잃어버린 나그네 같았다. 가장 비참한 나라는 아르헨티나였다.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는 심한 교통정체로 악명 높다. 이곳은 민간 기업이 전기를 공급한다. 하지만 이윤에만 치중한 나머지 투자와 관리에 소홀해 국지적 단전 사태가 빈번하게 발생한다. 그리고 5일 이상 단전되면, 시민은 거리에 나와 집회를 한다. 이런 집회가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다 보니, 이곳에는 교통정체가 만성이다. 

아르헨티나에서 단전 문제는 새발의 피’에 불과하다. 기업의 배만 불리는 상하수도, 대형 인명사고로 이어지고 있는 철도 등 민영화가 부른 갖가지 고통이 이 나라에 산적해 있다. 만약 대한민국 정부도 저들의 전철을 밟는 선택을 한다면, 우리의 미래도 불을 보듯 뻔하다. 이 영화가 커다란 초조와 공포로 다가온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영화 <블랙딜>을 보는 내내 심한 현기증이 일어 눈앞이 까매졌다. 주마등처럼 세월호 참사 사건이 눈앞을 스쳐 지나갔기 때문이다. 

공공부문 민영화와 친기업 규제완화는 국민의 기본적인 인권과 안전을 지켜내지 못했다. 형편없는 배를 운행하도록 허가했고, 세월호 선원 33명 중 19명을 비정규직으로 만들었으며, 인명 구조조차 민간 기업에 맡길 수밖에 없는 구조로 귀결됐다. 

이 영화는 민영화에 휘둘린 7개 국의 현실을 생생하게 보여주면서 우리나라의 ‘지금’을 묻는다. 근래 수서발 KTX 자회사 설립 추진으로 촉발한 철도노동자의 파업부터 대통령이 프랑스로 건너가 공공부문 시장 개방을 약속하는 장면까지 민영화를 둘러싼 기막힌 현실을 낱낱이 까발리면서, 우리의 미래를 무겁게 경고한다. 

아니 이 영화는 직접적으로 박근혜 정부를 겨냥해 ‘누구를 위한 민영화냐’고 따져 묻는 듯했다. 민영화의 핵심에 정부와 기업 사이의 검은 거래, 즉 블랙딜이 있었다는 가정을 부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실제 이 영화에는 민영화 과정에서 벌어진 블랙딜을 상세하게 소개하고, 의심스러운 우리나라의 사례도 취재한다. 

<블랙딜>은 다큐멘터리 영화다. 다큐 영화라고 하면 굉장히 지루할 것이라는 선입견 혹은 편견이 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아니다. 단 한 번도 한눈팔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쭉 봤다. 

이 영화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지만 경쾌하고 발랄하다. 템포 빠른 편집과 공들인 구성, 초등학생을 가르치는 것 같은 꼼꼼한 해제, 설득력 있는 내레이션, 적재적소에 터져 나오는 배경음악이 하나로 뒤엉키며 놀랄 만한 흡인력을 선보인다. 

수많은 인물 인터뷰도 놓칠 수 없는 흥밋거리이자 이 영화의 신뢰감을 높여주는 요인이다. 이 영화에는 도로테아 레를린 독일 베를린 워터테이블 회장을 비롯해 크리스 홀스테인 전 영국 전략철도청 홍보팀장, 장 자크 프롱시 전 수에즈 CEO 등 해외 유명 인물 30여 명이 출연해 민영화의 실체를 정확하게 이해하도록 돕는다. 

개고생 했을 것 같다. 영화 제작비를 마련하고, 취재 대상을 섭외하고, 7개국을 돌며 촬영하고, 알게 쉽고 재밌게 편집하는 모든 과정이 상상만으로도 혀를 내두르게 한다.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7개국 민영화 관련 자료 수집, 민영화 이후 현재 상황 취재, 현지 코디네이터와 취재원 섭외, 타임랩스 촬영, 잘게 쪼개고 나눠 붙인 편집 등 영화 제작 전 과정이 만만치 않아 보였다. 

민영화가 우리의 삶을 얼마나 피폐하게 만들 것인지 어렴풋이 짐작하는 사람은 많다. 하지만 대부분 당장 피부에 와닿는 문제가 아니기에 관심은 미비하다. 수도, 가스, 교통, 연금, 교육 등의 공공재가 민영화된 나라에서 고통받는 국민조차 비슷했다. 세금이 오르고, 정전과 사고가 빈번하게 벌어져도 왜 그런 문제가 일어났는지 잘 몰랐다. 

역시 아는 게 힘이다. 민영화의 허구성을 잘 알든, 잘 모르든, 짐작만 하든, 누구에게나 도움일 될 만한 영화다. 꼭 봐야 할 영화로 추천한다. 이 영화는 삶의 질은 제쳐 두더라도,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한 해답에 민영화는 없다는 사실을 적확하게 알려준다.  

영화 <블랙딜>은 크게 네 부분으로 구성돼 있다. 이 영화는 말도 안 되는 민영화의 민낯을 들춰내고, 국내외에서 추진되고 민영화의 현실을 사례로 짚어 본 뒤 민영화의 수혜자와 피해자가 누구인지 가린다. 그리고 민영화를 막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과제를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