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란의 시대다. 세월호 침몰과 함께 ‘우리나라호’는 목적지 없는 항해 중이다. 애초부터 정부의 진정성 있는 사과와 발 빠른 대책 수립, 철저한 진상규명이 뒤따랐다면 얘기는 달라졌다. 하지만 무능한 정부는 국민의 생명과 안정에 책임감 있는 태도를 보여주지 못했다. 아니, 아픈 마음조차 위로해주지 못해 국민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가는 곳마다 ‘멘붕’이다. 이 나라를 떠나고 싶다는 넋두리는 보통. 이제는 세월호 침몰의 책임을 묻는 시민을 연행하고, 해경 해체로 모든 책임을 면하려는 정부를 보면서 희망 없는 탄식을 쏟아내고 있다. 또 어렵게 세운 민주주의도 훼손됐다며 두려움까지 표현한다. 이 정부 들어서면서 언론통제, 친기업 정책, 권력기관 강화, 복지정책 후퇴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마음의 치료가 필요할 때다.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그림을 보는 것만으로는 덜어지지 않는 불안과 걱정에 정상적인 생활이 힘들 정도다. 자꾸 무슨 일이 일어날까 조마조마하고, 눈물이 핑 돈다. 본능적으로, 위기의 상황에 직면했다고 느끼는 사람들에게 뭔가가 필요할 때가 됐다.
정해영 심리치료사는 서로의 관심이 절대적이라고 지적한다.
“당연한 기대감에 전혀 부응하지 못했던 정부, 유가족은 슬픔을 위로받기는커녕 좀처럼 그들의 마음을 알려하지도, 대화를 시도하지도 않는 태도와 진정성이 결여된 대책으로 오히려 슬픔에 분노만 가중시켰다. 분노의 대상인 정부는 그들의 화를 풀어주지 못하고 있고, 그런 화는 그들을 감당하기 어려운 육체적, 심리적 고통으로 몰고 있다. 어떻게든 그들의 분통이 트일 수 있는 있도록 돕는 게 주위에 있는 우리의 몫이다.”
나는 정해영 심리치료사가 워낙 앞에 나서는 것을 싫어해 깊게 물어보지 않았다. 그녀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심리치료사로 활동해왔으며, 한국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사실. 또 올해 초 시청 광장에서 민예총 사람들과 함께 오종선 작가의 국정원 부정선거 풍선달기 퍼포먼스를 할 때 그 자리에 같이 있었다고 담소를 나눌 정도다.
정 심리치료사는 “뭘 도울 일이 있으면 알려 달라”면서 비상식적인 한국사회의 단면을 꺼내 든다. 세월호 실종자 구조 때, 자원봉사를 나온 민간 잠수사들도 다들 겪은 일이다.
“세월호 유가족들을 돕고 싶었다. 그런데 협회 소속 심리치료사가 아니면 도울 수 없다고 하더라. ……. 그래서 협회에 가입신청을 했고 심사를 기다리는 중이라고 했다. 정신치료, 심리치료, 상담치료, 그 말과 접근방식, 그리고 초점이 조금씩 다르다 할지라도, 공통적으로 중요시되는 것이 치료 대상자의 기운(기), 즉 몸과 마음의 근본적 상태를 얼른 알아차리고, 가장 적절한 방식으로 개입해 육체적, 정신적 건강을 회복, 유지하도록 돕는 것이라고 본다. 세월호 유가족, 그들의 마음을 감히 이해한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상담자로서의 지식과 기술을 일단 내려놓고, 우선 그들 개개인의 심정을 진심으로 공감하면서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함께 알아차리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몸이 아픈 것과 달리 마음의 병은 겉으론 멀쩡해 보인다. 하지만 그것이 곪고 쌓여 고름이 들어차기 시작하면 사회 부적응적인 행동을 하게 되고, 자신을 해치는 상황으로까지 발전할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정신이 이상해지는 것에 대해 무관심하다. 병원에 가는 것도 꺼린다. ‘내가 무슨 심리치료’, ‘좀 있으면 나아지겠지’, ‘언젠가는 좋아지겠지’라며 소극적인 태도를 취한다.
심리치료를 꺼리는 한국인에 대해 정해영 심리치료사는 얘기한다.
“가령 아르헨티나라는 나라에서는 국민의 80% 이상이 심리치료를 받고, 그곳에서는 심리치료를 받아본 적이 없는 사람이 마치 ‘비정상’인 것처럼 여겨진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그 반대이다. 옳고 그름을 떠나, 문화가 다른 것이다. 심리치료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많이 달라졌다고는 하나, 아직 성인의 심리치료에 대한 깊은 사회적 편견과 낙인은 여전하고, 그 굴레를 우리는 쉽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다리가 아파서 걷지를 못하면 걷는 게 어렵겠다고 당연히 반응하지만, 마음이 아파 나갈 수가 없다고 하면, 우린 쉽사리 ‘문제‘라고 여겨 버린다. 아이가 학교생활로 어려움을 겪는데, 엄마는 아이가 문제가 있다며 ‘문제해결사’로서 치료사를 찾는다. 몸이 아프면 생활이 어려워지는 것처럼, 마음이 아프면 생활이 어려운 것이다. 마음의 병을 ‘문제’로 보는 우리 사회, 문화의 무게가 도움을 받고자 하는 사람들까지도 쉽사리 도움을 청하지 못하는 이유일 것이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서로 마음이 어긋나거나 무시해 화가 날 때가 있다. 정해영 심리치료사에게 적절한 조언을 구했다.
“화가 난다는 것은 부정적이지도 긍정적이지도 않는 그저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감정들 중의 하나다. 마음의 병은 대개 일어나는 감정을 털지 못하고 묻어 두기 때문이다. ‘나’의 화가 ‘남’과 얘기되고 납득됐을 때, 진정한 ‘화’ 풀이를 느낀다. 하지만 우리 사회적 상황과 여러 관계 코드 속에서, 바람직하게 ‘화’를 표현하고, 소통하고, 해소하는 것이 무척 버겁다. 무조건 화를 누르거나, 숨기는 것은 좋은 방법이 될 수 없다. 그것은 흔히 뜬금없거나 혹은 지나친 화를 내게 하든지, 반대로 스스로에게 화를 내 심한 우울증에 빠지게 할 수 있다. 화를 표현하고 소통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고 할 때, 최소한 화를 해소할 수 있는 나름의 건전한 방안들, 이를 테면 아이처럼 즐거워할 수 있는 화풀이 방법들을 스스로가 강구해야 할 것이다. 화나게 하는 대상이나 상황을 없애는 것이 방법이 될 수 없을 때, 화를 표현하고 소통하지만 상황의 전환에 대한 기대를 저버릴 수 없을 때 - 지금 세월호 유가족의 분노처럼 - 그 화는 잊혀서도, 좌절돼서도 안 될 것이다. 다만 이 분노가 궁극적으로 해소되는 그때까지, 버틸 수 있도록 우리도 함께 분노함을 기억해야 할 것이고, 유가족의 분통에 공감하고, 그들 감정의 무거움을 완화시켜 줄 수 있도록 도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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