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품이다. 참으로 볼만하다. 몸도 날렵하고, 기예도 출중하며, 감성도 풍부하다. 영상만으로도 이런데 실제로 보면 감동의 도가니겠다. ‘연희집단 The광대’는 이름 그대로 전통예술을 우쭐우쭐 제 몸처럼 부려재낀다.
재인들이 다 모였다. 정말 광대다. 기성을 터뜨리고, 흥을 돋우며 훌떡훌떡 판을 휘젓고 다닌다. 이 맛에 연희극을 즐긴다. 아직도 우리 ‘것’이라고 가볍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
옛날엔 세상에 버려진 살덩이로 태어나 광대가 됐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니다. 재기와 솜씨, 기교의 영역을 넘어 우리 전통을 지키는 책무를 스스로 인지해야만 가능하다.
연희집단 The광대, 안대천 대표와 김서진 연출가가 연희에 몸을 담게 된 이유가 궁금해진다.
안대천 대표의 뜻은 소박했다. “연희가 좋은데 장터 들놀이처럼 하고 싶진 않았어요. 드라마가 있는 연희, 연희극을 제대로 해보고 싶어 The광대를 시작했죠.” 반면 김서진 연출가는 처음 연희를 잘 몰랐다. 전문 연출가일 뿐이었다. 하지만 The광대 식구가 되면서 뒤늦게 연희의 매력에 푹 빠졌다.
연희집단 The광대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졸업생 5명과 탈춤을 추던 고성오광대 5명이 2006년 1월 2일에 만들었다. The광대가 추구하는 연희는 악기만 연주하고 춤만 추는 공연이 아니었다. 춤과 사물놀이, 굿, 창 등 모든 전통예술 장르를 아우르면서 관객에게 감동을 주는 이야기를 전달하고 싶었다.
안 대표는 창단 이후 두 번의 공연을 거치면서 전문 연출가의 힘이 절실하게 필요했다. 그때부터 김서진 연출가가 결합해 한솥밥을 먹게 됐다.
The광대가 다른 연희집단과 다른 점은 무엇일까. 두 사람은 이구동성으로 창작에 대한 열정과 단원들의 인간적인 면을 꼽았다.
“The광대는 창단이후 초지일관 극을 만들고 있어요. 줄기차게 열심히, 끊임없이, 전통을 고수하면서 계속 도전하고 있죠. 이런 집단도 없을 겁니다. 또 단원들이 대부분 시골 출신이라 촌스럽지만 인간적이고 튀는 장점이 있어요. 계산도 없고 얌체도 없죠.”
안 대표는 The광대 멤버 중 자타가 공인하는 인기순위 1위다. 주위의 얘기를 들어보니, 그의 캐릭터가 확실하다는 답이 되돌아온다. 무대에 등장만 해도 박수가 쏟아진다는 것. 아무래도 발랄한 마음씨, 코믹한 미소, 무대를 휘어잡는 에너지 때문이겠다. 그런 평가에 대해 정작 자신은 “부담되지 않는 이미지” 덕분이라고 겸손하게 얘기한다. 그러나 인기는 재주와 얼굴만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매력이 있어야 한다.
The광대는 ‘함께’라는 단어가 잘 어울리는 집단이다. 보통 극단의 경우 대표가 연출을 겸한다. 필요할 때마다 연출을 외부에서 촉탁하고 외부의 일에 전념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The광대는 다르다. 대표는 전문 예술가로 무대에 선다. 연출가도 독단적으로 작업하지 않는다. 대표를 비롯해 멤버 한 명 한 명의 견해를 충분히 반영한다.
가끔 도래뼈가 뻑적지근하도록 놀고 싶다. 한바탕 북을 두드리고, 징채를 든 채 신명 나게 춤도 추고 싶다. 막걸리를 연거푸 비우지 않으면 서운하다. 그 시절이 그립다. 20년 전만 해도 이런 풍경은 대학 캠퍼스에서 흔하게 볼 수 있었다. 이젠 아니다. 추억 속에서나 꺼내보는 일기에 불과하다.
시대도 변했다. 요즘 연희 무대는 설 자리가 없어 좌왕우왕이다. 라이선스 해외 뮤지컬과 상업 공연물에 밀려 전통문화를 지키는 일은 고사하고 먹고사는 일조차 온전하게 이어가기 힘들다. 그럼에도 The광대는 오직 연희만을 생각하며 한길을 달려간다. 연희에 어떤 매력이 있기 때문일까?
안대천 대표는 연희도 좋지만 연희를 하는 사람들이 더 좋은가 보다. “처음에는 연희가 좋아서라기보다 연희를 하는 사람이 모여 있는 것이 좋았어요. 사람들이 즐겁고 재밌게 지내서죠. 그래서 연희를 시작하게 됐어요.”
김서진 연출가는 연희의 스펙터클함을 꼽았다. “연희는 표현 수단의 풍성함이 매력이에요. 연희는 춤, 현장 라이브 음악, 노래가 당연히 나와야 충족돼요. 연극에서는 노래가 안 나와도 별로 신경 쓰지 않잖아요.”
주위 예인들은 우리나라 전통 연희단체 중에서 The광대가 가장 열심히 하는 팀이라고 얘기한다. 두 사람에게 이런 평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큰 소리로 “맞다”고 말한다. 가장 잘한다고는 못해도 가장 열심히는 한다는 것. 하지만 이들이 지금처럼 당당하게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무대에서 여유를 갖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김서진 연출가는 처음 단원들이 관객들의 무반응이 불안해했다고 털어놨다. “관객들이 무반응일 때가 있어요. 공감이 되지 않아서일 수도 있고, 진지하게 몰입하기 때문일 수도 있죠. 처음에 무반응을 못 견뎠어요. 관객들이 반응을 보여야 안심했죠. 이제는 좀 달라졌어요. 관객의 진지함을 잘 받아들여요.” 안 대표가 한 마디 거들면서 웃어버린다. “지금은 관객과 밀당이 뭔지 알아요.”
연희는 연희 그대로 빛나야 한다. 극에 필요한 요소가 아니라 그 자체가 연희여야 하고, 출연자들의 장점을 충분히 뽑아내고 살려낼 수 있어야 무대도 살아난다. 무엇보다 여러 사람이 모여 하나의 완벽한 무대를 만들기 위해서는 멤버 간에 마음을 일치하는 게 중요하다. 하지만 항상 그렇듯, 자신의 지향과 집단의 지향이 하나기 되기란 쉽지 않다.
인간적이고 웃음이 끊이질 않는 The광대도 여러 사람이 함께 모여 일하는 곳이다. 어려운 일이 없을 리 없다. 곤궁한 질문을 던지자 안대천 대표는 눈썹부터 위로 올린다. 단원들 걱정에 얼굴부터 긴장한다.
안 대표는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로 재정의 안정을 꼽는다. “좀 더 나은 상황에서 창작하길 희망해요. 창작과 실험에 어려움이 있어요. 누군가의 재정 지원 없이 자력으로 창작하길 바라죠. 그래도 다들 열심히 합니다. 후배들을 위해 발판이 되고 계단이 돼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죠. 아직 뚜렷하게 연희극의 길이 만들어지지 않았어요. 그 길을 만들어가려고 합니다.” 이어 그는 The광대 멤버들에게 “어중간한 것보다는 모 아니면 도가 좋아요”를 주문했다. 상황은 어렵지만, 앞으로도 화통하고 화끈한 무대를 계속 만들어가자는 파이팅이겠다.
김서진 연출가는 잠시 무거워진 분위기를 끌어올린다. “평소에 단원들끼리 잡음이 많아요. 그것이 The광대가 건강하다는 증거지요. 마음속에 묵혀 두질 않고 그때그때 얘기하면서 풀거든요. 잘 해낼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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