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객석과 무대

[무용] 춤추는 허수아비 - 인간의 탐욕에 대한 자연의 경고

이동권 2022. 10. 4. 15:19

춤추는 허수아비


수천 년을 내려온 산과 들, 강과 숲, 논과 밭이 사라지고 있다. 인간은 편해지기 위해, 행복해지기 위해 자연을 개발해 왔지만 인간의 탐욕은 끝이 없었다. 더 많은 것을 채우기 위해 약자들의 소중한 삶의 터전을 빼앗았고,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파괴해 왔다.

서울시무용단의 무용극 ‘춤추는 허수아비’는 인간의 탐욕에 정면으로 저항한다. 인간이 아니라 ‘허수아비’라는 자연을 저항의 주체로 삼아 지구에 닥쳐올 재앙을 빗대어 얘기한다. 예인동 서울시무용단장의 감각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우리는 보통 이상기후와 지구온난화 등으로 빚어진 문제를 자연의 ‘저주’라고 규정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탐욕에 더 이상 침묵하지 않겠다는 자연의 ‘경고’라 할 수 있다.

서울시무용단에게는 일종의 기대가 있다. 일정한 수준 이상의 작품성을 보장한다는 기대가 늘 따라다닌다. ‘서울시무용단’이라는 타이틀 때문이다.

무용단은 ‘백조의 호수’를 비롯해 여러 작품을 선보였다. 모든 작품을 다 보지는 못했지만 서울시무용단의 공연은 항상 기대를 충족시켜주었고, 매번 창작이라는 게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느끼게 했다. (이것은 예술가들의 노력에 대해 섣부른 평가를 내릴 수 없는 지점이기도 하다.) 그런데 무용단이 정기공연 작품으로 ‘무용극’을 들고 나왔다. 정극 위주의 묵직함을 깨고 ‘파격’적인 형식을 새롭게 도입했다. 특히 작품의 소재가 압권이다. 조선시대 양반사회의 부조리를 까발리는 민중들의 마당극이 떠오를 정도다.

무용극 춤추는 허수아비는 부동산 개발자의 탐욕에 맞서 고향땅을 지키려는 허수아비의 이야기다. 이 무용극은 도덕과 정의보다 돈이 우선인 우리 사회의 부조리를 정공법이 아니라 풍자와 조롱으로 풀어낸다. 노익장을 과시하는 할머니와 순수한 처녀, 허수아비와 닭, 풀과 숲의 정령 등이 부동산 개발업자와 맞서며 관객들을 웃기고 울린다.

춤추는 허수아비의 미덕은 감동을 이끌어내는 섬세한 화법에 있다. 이 무용극은 무용가들의 역동적인 연희, 관객들을 동화시키는 무대매너, 영상과 무용수의 춤을 접목시켜 작품의 퀄리티를 한층 더 끌어올렸다.

부동산 개발업자의 춤사위와 어우러지는 포클레인 영상은 이 무용극에서 빼놓을 수 없는 백미다. 또 허수아비와 다툼을 벌이는 닭의 코믹 연기도 볼만하다. 무용과 재미를 연결시키는 매듭이 아주 견고해서 코믹한 연기조차 무용처럼 보인다. 그리고 닭이 털을 뽑힌 뒤 발레리나 옷을 입고 백조의 호수를 패러디한 부분은 박장대소를 이끌어낸다.

음악은 경쾌했다. 영화 자토이치의 음악이 생각날 정도로 투명하고 유쾌한 기분에 젖게 하는 배경 음악이었다. 신디사이저로 타악기 소리를 내며 리듬을 탄 것 같았다. 게다가 극에 몰입하는 무용수들의 얼굴 표정과 절도 있는 춤사위는 기본 실력 못지않게 진심을 다하는 것을 느끼게 해 훈훈한 감동을 줬다. 정말 춤을 즐기고, 뭔가 간절하다는 느낌이랄까.

허수아비와 처녀의 순수한 사랑이야기도 가슴을 따뜻하게 했다. 사실 허수아비의 죽음과 재생은 극의 중반부터 예상했던 절정이었다. 그래서 예인동 예술감독이 이 무용극의 클라이맥스를 어떻게 끌고 나갈지 궁금했다. 역시 예상되는 결말이었다. 그런데 어색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아마도 우리 무용의 엄숙함을 깨뜨린 형식과 내용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공연이 끝난 뒤 밖에서 담배를 피던 무용수의 얼굴이 떠오른다. (아무리 돈을 내고 본다고 해도) 무대에서 땀을 흠뻑 흘리며 열정을 쏟아내는 무용수들의 노고에 고마움을 갖길 바란다.

 

 

공연 장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