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이 떴다. 시커먼 구름을 뚫고 나온 정월 대보름달. 달을 보면서 오랫동안 침묵에 잠겼다. 언제나 젊고 아름답게 살고자 했다. 하지만 늙음을 모르는 젊음이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을까. 쾌락을 모르는 절제가, 이별을 모르는 사랑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자신의 삶 또한 타인을 자신 안으로 끌어들이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정월대보름에 달집을 태우는 인월을 찾았다. 전통행사가 점점 사라지고 있는 요즘에도 이곳에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달집을 만든다. 지역 주민들은 생소나무를 쌓아 올려 커다란 달집을 세웠다. 불길이 약하면 흉년이 드니 나무 사이사이마다 짚과 잔가지, 솔잎도 채워 넣었다. 불만 당기면 한꺼번에 타오를 기세다. 달집 무게는 10톤, 높이는 20미터에 이른다.
젊은 남자는 가족의 건강과 안녕을 기원하며 풍연에 이름을 써 올렸다. 할머니는 아이를 낳지 못한 며느리가 안쓰러운지 소나무 사이에 고쟁이를 몰래 끼워 넣었고, 청년들은 악귀가 깃들지 말라며 생죽(生竹)을 세웠다. 나도 하얀 종이에 또박또박 글씨를 써 달집에 넣었다. 풍연에도 똑같은 글씨를 써서 달집에 매달았다. ‘저항의 봄’이라는 글씨를.
여섯시 삼십 분경. 해가 떨어지고, 어둑어둑 황혼이 깔리기 시작했다. 맛깔스러운 전라도 음식이 생각나는 시간이다. 대보름이 되면 오곡밥과 함께 겨우내 말린 시래기를 볶아 먹곤 했다. 껍질이 단단한 호두를 우두둑 망치로 깨 속살도 주워 먹고, 마른 명태에 두부를 넣고 끓인 국을 먹기도 했다. 생각만 해도 군침이 돈다. 하지만 어떠한 산해진미도 이 순간의 황홀과 비교할 수 없다. 곧 있으면 몽실몽실 피어오르는 푸른 연기와 붉은 불꽃이 장관을 이루리라. 달집을 둘러싼 사람들의 얼굴도 주홍빛으로 익을 것이고, 아이들은 쥐불을 넣은 깡통을 들고 신이 나 뛰어다닐 것이다. 입속에 도는 군침을 꿀꺽 삼켰다.
순식간에 눈앞을 분간할 수 없을 만큼 어둠이 내려앉았다. 바람소리까지 유난히 크게 들려왔다. 아니나 다를까 보름달이 휘영청 떠올랐다. 보름달의 신비로움에 빠져드는 것도 잠시, 갑자기 눈썹이 솔잎처럼 빳빳해지면서 두 다리에 힘이 꽉 들어갔다. 어느 한 군데 마음 놓고 기댈 곳이 있나 생각이 들어 맘속에 긴장이 바짝 들었다.
보름달을 보니 희망과 환희, 충동과 동경이 빈 가슴속에 스며들었다. 하다못해 사소한 잘못, 별의별 추억들까지 떠올라 웃음이 피식 새어나왔다. 반면 곁을 떠난 사람들의 얼굴이 보름달 안에 하염없이 나타나 견딜 수 없었다. 할 수 있는 거라곤 잘 살고 있다는, 걱정하지 말라는 마음만 띄워 보내는 것뿐. 참으로 생명은 속절없다. 삶은 우주에 비하면 허무에 가까울 만큼 작다.
하얀 고깔을 쓴 농악대가 달집을 돌며 흥겹게 풍물을 울린 뒤, 풍요와 무사안녕을 기원하는 제례의식이 시작됐다. 찬바람이 불어오는 날씨에도 만복을 기원하는 지역주민의 마음은 겸손하고 엄숙했다. 절을 하는 몸가짐도 예답고 정갈했다. 제 올리는 시간이 길어지자 군데군데서 분운하다. 제 올리는 시간이 길다는 재촉은 아서라. 허구한 세월과 문화를 지키고, 과거와 미래를 잇는 마음이 축적되지 않았다면 오늘날 우리도 없었다.
전통은 언제나 훌륭한 스승의 역할을 했다. 세상에 빗겨선 지혜 같지만, 세상의 모진 풍파가 몰아칠 때마다 든든한 힘이 된 것은 민족의 전통이었다. 예를 들면 ‘환난상률’은 우리 겨레의 오랜 미풍양식이다. 우리 조상들은 어려운 일이 생길 때 서로 힘을 보태고 위로하면서 극복해왔다.
요즘엔 민족을 팔아먹은 족속들도 전통을 들먹인다. 가장 대표적인 부류는 ‘친일’ 숙주들이다. 생각해보면 이것만큼 마음 아프고 어리석은 일도 없다. 세상이 어떤 모양으로 바뀌더라도 무궁한 뿌리를 잊으면 자신도 사라진다. 겨레의 고통을 나누지 못하면 언젠가는 자신도 벼랑 끝에 내몰리고 말 것이다.
제례의식이 끝난 뒤 커다란 달집에 불을 댕겼다. 활활 타는 불꽃이 주위를 밝히면서 달집 꼭대기로 푸른 연기를 뭉게뭉게 품어냈다. 사람들은 달집을 둘러싼 채 탄성을 질렀다. 서로의 안녕을 기원하며 광명의 한 해를 기약했다. 두 손을 모은 채 간절하게 기도를 올리는 여자도 있었다. 그녀의 표정은 너무도 정성스럽고 지극해 마음을 뒤울렸다.
마음속에서 온정과 인심, 근심과 걱정이 강렬하게 교차했다. 세상 사람들이 달집을 태우는 마음처럼, 서로를 위하며 평화롭게 살았으면 좋겠지만 현실은 서늘하기만 하다. 뜨거운 불씨가 날리는 와중에도 차가운 물이 와르르 떨어지는 폭포 앞에 서 있는 느낌이다.
불길은 바람에 춤추듯 퍼르르하게 몸을 옮겨가며 달집 구석구석을 태웠다. 달집 밑동이 타면서 열기를 위쪽으로 끌어올리자 하늘을 찌를 듯 솟아오른 대나무에도 불이 붙었다. 달집에 꽂아 뒀던 ‘저항의 봄’도 이글이글 피어오르는 불길 속으로 사라졌다.
어둠이 깊어지면서 멈추지 않을 것 같았던 ‘불잔치’도 점차 수그러들었다. 들판 쪽으로 긴 꼬리를 흔들며 피어오르던 연기가 시나브로 사라졌다. 추위에 떨던 사람들도 한가득 소망을 가슴에 담고 하나둘씩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달집은 식은땀을 흘리는 사람처럼 계속 몸을 떨며 마지막 붉은 기운을 토해냈다.
사력을 다하는 불꽃이 마음에 위안을 안겨줬다. 마치 예술적인 충격을 겪고 난 뒤 정화되는 느낌이었다. 제 몸을 사르는 장작이 자신의 모든 것을 내놓아서 아름다울까. 아니다. 장작은 자신의 역할에 충실했기 때문에 아름답다. 장작이 태워지지 않고 무르거나 썩어버렸다면 어떠했을까.
사람들은 자신을 내던지듯이, 자신을 상실하듯이 사랑하는 것을 진실한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뜨겁지만 온전한 사랑은 아니다. 자신을 지키고, 자신의 역할을 다하는 것이 사랑이며, 사람은 죽음으로서만 완전한 무로 돌아갈 수 있다.
동네 이장님 댁으로 발길을 옮겼다. 한없이 따사로운 바람이 불어왔다. 정말이지, 삶에 대한 열정으로 설레게 하는 밤이었다. 밤새 내내 이야기도 길어질 것 같았다.
달집은 다음날 아침에도 꺼지지 않고 미미한 연기를 쏟아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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