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감적이다. 아랑곳없이 너털웃음이 난다. 신묘하고 청월한 느낌보다는 산자락이나 인적이 뜸한 곳에서 밀회를 즐기는 기분이다. 50년 만에 일반인에게 개방된 태릉과 강릉을 잇는 숲길에서 느낀 감상이다. 태릉은 문정왕후의 묘, 강릉은 명종과 인순왕후의 묘다. 명종(1534~1567)은 34살에 승하한 문정왕후의 아들이지만, 이 두 묘지 사이의 숲길 1.8km는 반세기 동안 끊겨 있었다.
이 길이 개방됐다. 일 년에 딱 두 번, 태릉-강릉 숲길을 걸을 수 있게 됐다. 개방일은 4월 1일부터 5월 31일까지, 10월 1일부터 11월 30일까지다. 숲길은 개방된 지 얼마 되지 않아 곳곳에 정비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숲길을 걷는 감흥을 충분히 떨어뜨릴만한 했다. 하지만 신명이 없는 길은 그 어디에도 없다. 자연의 장엄한 일면은 누가, 어떤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즐기느냐에 따라 정도만 달라질 뿐이다.
태릉-강릉 숲길은 시적인 여운을 불러일으킬 만큼 아름다운 길은 아니다. 꽃이 만발한 화원처럼 찬연하지도, 굵직한 노송이 피톤치드를 내뿜는 휴양림처럼 시원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이곳에는 평범함이 주는 편안함이 있다. 아무리 훌륭하게 꾸며놓은 정원이라도 산길 비탈진 곳에 핀 꽃 한 송이보다 못할 때가 있다. 이곳이 딱 그런 느낌이다. 게다가 50년 세월의 뒤안길을 걷는 가슴 떨림, 조용한 숲길에서 진지하게 자신을 되돌아볼 정도의 여유를 느끼기에, 이곳은 안성맞춤이다.
태릉의 초입은 아니나 다를까 매표소다. 성인 한 명 1,000원. 싸다면 싸고, 바싸다면 비싸다. 매표소에서 표를 끊고 들어가면 ‘조선왕릉전시관’이 나온다. 전시는 ‘태릉과 강릉’, ‘조선왕릉의 관리’, ‘한눈에 보는 조선왕릉’, ‘조선의 국장’으로 구성돼 있다. 이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섹션은 ‘조선의 국장’이다. 조선 왕실의 장례는 매우 까다롭고 복잡했다. 조선시대 편찬된 ‘국조오례의’에 따르면 왕이 죽으면 3년에 걸쳐 총 60단계가 넘는 절차를 밟아야 국상이 끝난다. 이곳에 가면 왕이 승하한 순간부터 능에 왕의 관이 묻힐 때까지의 36개 과정을 볼 수 있다.
전시관을 나와 곧장 난 길을 따라가면 태릉이다. 태릉은 충효를 덕목으로 삼았던 조선왕조 519년의 정신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곳이다. 태릉은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지금까지도 잘 보존돼 있으며, 태릉뿐만 아니라 조선왕조 42개 능 모두 훼손 없이 관리되고 있다. 효를 중시했기 때문이 가능했을 것이다. 태릉 오른쪽에 세워진 ‘수복방’도 온전하게 보전돼 있어 놀라웠다. ‘수복방’은 능지기들이 능묘를 관리하기 위해 정자각 오른쪽에 마련된 집이다.
태릉은 조선 11대 임금 중종의 두 번째 계비 문정왕후의 능이다. 중종의 계비 장경왕후가 승하한 뒤 문정왕후가 왕비로 책봉됐다. 하지만 장경왕후의 아들 인종이 임금이 된지 8개월 후 승하하자 문정왕후의 아들 명종이 12살에 왕이 됐고, 문정왕후가 어린 명종을 대신해 수렴청정을 했다.
태릉을 지나 인간처럼 따뜻한 기운이 느껴지는 숲길로 들어섰다. 잘난 것도 모난 것도 없다. 시간의 풍해에도 상처받지 않고 견뎌주어 고마울 따름이다. 산책길로 들어서자마자 산뜻한 색깔의 티셔츠를 입은 묘령의 여인이 내려온다. 순진한 기쁨에 빠져 마음껏 휴식을 취하고 온 것 같다. 미련 없이 한 때를 즐긴 사람처럼 얼굴이 밝고 명랑하다. 그녀의 발걸음 또한 무척이나 가볍고 포근하다.
길은 오르막이다. 조금씩 숨이 차오른다. 무리할 필요는 없다. 천천히 길을 따라 올라가며 숨을 고른다. 귓가에 자연의 숨소리가 공명처럼 울려 퍼진다. 주위를 둘러보니 길마다 꽃이다. 나무들은 새살을 채우고 있고, 산새들은 바삐 자리를 옮긴다. 낯선 곳에 가면 이질적인 풍경에 질식돼 쉽게 동화되지 못한다. 하지만 자연은 아무리 낯선 곳이라고 해도 거부감이 생기지 않는다. 오히려 소담스럽고 고즈넉한 정취에 빠져 더욱 깊게 반하고 만다.
숲길에 몸을 맡긴다. 어느새 이정표는 강릉을 가리킨다. 정돈된 산책로를 따라 곳곳에 반공호가 나타난다. 인제서야 이 숲길이 개방되지 않은 이유를 알 것 같다. 군사시설 때문이다.
인적이 닿지 않았을 길을 따라 걷으면서 아래를 굽어본다. 모든 것이 자그마하고 고독하다. 이 길에서 벗어나면 무엇인가를 찾기 위해 두 눈을 두리번거리는 사람들과 외로움으로 번진 회색빛 도시를 만나야 한다. 누구나 살면서 허무하고 고독한 심회를 맛본다. 타협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비굴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출구 없는 탈출구를 찾기 위해 발버둥 친다. 자신을 속이고 타인에게 상처를 입히며, 그것을 운명처럼 그러안고 살아간다.
생명은 철저하게 고독하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고독하다. 이것을 깨닫는 것이 위대한 정신의 출발일 것이다.
강릉이다. 강릉은 무척 생소하다. 강릉을 모르는 사람이 천지일 것이다. 강릉은 조선 13대 임금 명종과 인순왕후의 능이다. 강릉은 군사시설로 지정돼 일반인들은 들어갈 수 없었지만 2012년부터 전면 개방돼 볼 수 있게 됐다.
태릉과 강릉을 잇는 숲길은 1966년 태릉선수촌이 건립되면서 두 권역이 분리돼 길이 끊어졌다. 하지만 올해 처음 이 숲길이 정비돼 일반인에 공개됐다.
이 숲길은 신록이 물들어가면서 부드럽게 세월을 어루만지며, 봄의 잔치를 준비 중이다. 꽃을 찾아온 나비들이 눈을 즐겁게 하고, 정겹게 세상을 굽어보는 신갈나무가 웃음을 던진다. 조금밖에 걷지 않았는데, 머리가 맑아지고 심신이 가벼워진다. 한편으로는 한겨울의 고통을 이겨낸 새순들이 삶은 연습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 같아 마음이 짠해진다. 사는 것은 인고요, 투쟁의 나날이다. 단 하루도 가벼울 수 없다. 맘껏 사색하고 성찰하자.
한 가지 더, 이곳에서는 웰빙이니, 릴렉스니, 유산소 운동이니, 그런 단어를 잊어버리자. 건강에 대한 지나친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 옹색한 마음의 폭도 넓히면서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보자고 스스로 다짐해보자. 한 번 사는 세상이지 않나.
역시 숲길에서 갖는 사색은 마음을 포동포동 살찌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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