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내가 만난 사람

이원주 가수 - 정말 외로운 사람들에게 필요한 노래

이동권 2022. 10. 11. 16:21

이원주 앨범 지구 표지


일상의 자질구레한 일들로 쓸쓸함이 뻗어오는 날에는 음악을 듣는다. 물론 자연의 품에 파묻혀 시원한 바람, 따사로운 햇볕, 들썩이는 파도와 친구가 되는 것이 더욱 좋다. 하지만 일상에 뻣뻣한 고독이 들이닥친다고 당장 떠날 수 없는 게 현실. 이럴 때는 언제나 곁에서 마음을 위로해주는 음악이 최고의 명약이다.

마음이 수척하다면 잔잔하면서 격정적인 음악이 좋겠다. 나아가 여운이 남고 몽환적인 음색이라면 더욱 근사하겠다. 음악에 깊이 동화되면 일종의 중독, 환각 등 말초적 쾌락과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된다. 지각이 둔해지고 형태가 무뎌지는 느낌, 평화와 고요만이 가득한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착각에 빠져든다. (놀랍지만 생전 처음 듣는 이원주의 음악에서 그런 쾌락이 느껴졌다.)

가끔 이런 감각적 쾌락을 육체적 쾌락과 동일시하며 낮잡아 보는 사람들이 있다. 감각적 쾌락은 저급하고 정신적 쾌락은 고급하다는 얘기다. 하지만 쾌락에는 질적 차이가 없다. 쾌락의 강도가 다를 뿐이다. 사람마다 꽂히는 분야도 제각각이다. 누구는 예술에, 누구는 스포츠에, 누구는 섹스에, 누구는 공부에, 누구는 모험에 강한 동기를 부여받는다.

가수 이원주. 다소 생경한 이름이지만 마음속에 매몰된 것을 하나하나 꺼내게 만드는 재주가 있는 뮤지션이다. 그는 클래식한 색조와 대중적인 감각을 함께 지녔다. 그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저절로 눈이 감기고 기분이 이완된다. 축 처진 감정에 뭔가가 플러스가 되면서 쾌락을 유도한다. 한여름 아무도 없는 바닷가 모래사장을 맨발로 걷는 자유 혹은 짜릿함이랄까.

“언젠가부터 사람들은 서로의 외로움에 안부를 묻지도 말하지도 않습니다. 너무 많은 외로움은 특별할 게 없으니, 각자의 외로움은 스스로 위로하고 감당해야 한다는 암묵의 룰이라도 있는 것처럼. 이쯤에서 갑자기 궁금해집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마음에 생겨난 많은 일들을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게 되었을 때 무엇을 할까요. 정말 외로운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세상을 바꿀 엄청난 그 무엇이 아니라 추운 날 버스 안 옆자리에 앉은 타인의 팔과 내 팔이 닿아 따뜻해지는 순간처럼, 말 못 할 외로움을 위로할 온기 담긴 선율이 마음으로 페이드인(Fade in) 하는 것.”

이원주는 싱어송라이터다. 자신이 직접 가사를 쓰고 곡을 만든다. 하지만 그는 머리부터 낮춘다. 연주자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더욱 좋은 음악을 만들 수 있었단다. 그는 앨범을 내기 전 같은 업종에서 일했다. 이번 음반을 내는데도 무척 도움이 됐을만한 일이다.

“EP(싱글판)를 발매하기 전 과거에 아티스트들의 음반 작업을 돕는 레코딩 엔지니어로 일했어요. 지금은 그 일을 그만두고 긴 여행에서 돌아와 평범한(?) 직장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녹음하면서 정말 즐거웠었던 것 같아요. 정말로 많은 분들이 도와주셨고 하나하나의 악기가 제 음악에 입혀져 들어가 곡이 완성돼가는 느낌이 정말 좋았습니다. 예전에는 다른 아티스트들과 함께 그들의 음악을 만들어 가는데 열중했었다고 이야기한다면 이번 작업은 모든 것이 저를 위해 움직이는 그런 느낌이 좋았다고 할까요? 하여튼 정말로 즐거웠습니다.”

이원주 음악은 어딘지 모르게 사람을 억제하고 위압하기는 면모가 있다. 듣기는 편하고 허밍도 구속하지 않지만 절대로 따라 부를 수 없는 풍미에 압도된다. 아마도 그는 노래 부를 때 이글이글 타오르는 얼굴로 오만상을 찌푸리며 열창할 것 같다. 어렵지만 쉽고, 단단하지만 무른, 듣는 이에 따라서 다르게 해석될 요지가 충분한 음악이다.

노랫말은 현실이 반영된 서정시다. 사람이 살다보면 감성은 점점 닳고 낡아 둔해지고, 그 빈자리를 원숙미가 채워준다. 그래서 중견 가수에게는 신선함을 능가하는 세월의 무게가 기량 차이로 나타나기도 한다. 하지만 그의 노래는 평범 이상의 섬세한 감성과 원숙미가 동시에 뿜어져 나온다. 그 원숙미의 실체는 포용력이다. 포용력은 사상이나 식견, 지혜 등이 경지에 올라서가 아니라 사람과 사랑을 보듬은 너른 어깨다. 그는 자신을 위해 노래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 간곡한 마음이 듣는 이들에게 전해지는 것 같다.

“이 EP담긴 노래들은 모두 저를 위한 노래입니다. 여행을 다니면서, 혹은 여기저기로 이동하면서 ‘내가 들을만한 노래, 내가 따라 부를 수 있는 노래를 내가 만들면 정말 좋겠다’라는 생각 아래서 하나하나의 곡들을 완성해 나갔고요. 스튜디오로 출근할 때, 늦은 밤 녹음을 마치고 집에 들어갈 때, 혼자 여행을 떠날 때마다 적어놓은 글들이 가사가 돼 이번 앨범이 완성됐습니다.”

이원주의 ‘지구 (The Earth)’ 앨범에는 <지구>, <두 개의 별>, <비 오는 사막>, <자연스레> 네 곡과 인트로곡 <바람>, 연주곡 <자연스레 Inst>가 담겨 있다. 수록곡들은 잔잔하고 고요하지만 격정적이다. 듣기 편했지만 한편으로는 묵직했다. 사람마다 취향은 다르겠지만 이런 음악은 보통 모두들 좋아할 만한 레퍼토리다. 지치고 복잡한 마음을 위로해주기 때문이다.

“부끄럽지만 제가 만든 노래들을 들으면서 저는 자주 위로 받아요. 그래서 저와 비슷한 취미와 감성을 가지고 계신 분들이라면 충분히 위로가 돼 드릴만한 음악이 될 것 같아요.”

게다가 이원주의 아름다운 미성은 한줄기 빛처럼 귀를 간질인다. 그냥 맑은 미성은 아니다. 호흡이 막히듯 숨소리 가득히 담아낸 소리다. 그의 목소리를 처음 들으면 여성이 아닐까 약간 혼동이 온다. 노래 분위기와 멜로디마저 부드럽고 감미로워 더욱 그렇다. 하지만 그것은 그다지 중요하지는 않다. 그의 노래는 듣다보면 스스로 누를 수 있을 만한 흥분으로 가득 찬다는 사실, 청명한 하늘에 얕은 회색빛 구름이 엉겨 붙어 이질적이지 않다는 것이 포인트다. 가끔 어떤 음악들은 감정에 폭주해 질식해버릴 것 같은 느낌을 주곤 했다. 그러나 그의 음악은 숨이 멎을 것 같은 아련함 속으로 빠뜨려 무장해제를 시킨다.

이원주는 지금 이 느낌 그대로, 앞으로도 “조금 더 솔직하고 담백한 음악을 하고 싶다”고 말한다. “억지로 어렵게 만들고 과하게 무거운 음악보다는 잔잔하고 편안한 가을 호수 같은 음악이요. 가능할까요?” 그런데 이원주는 이렇게 자신이 얘기가 뉴스에 소개되는 것이, 자신의 얼굴이 세상에 알려지는 것이 무척 부끄러운가 보다. 얼굴 사진은 “앨범 자켓 그림으로 대신하면 어떻겠느냐”며 정중히 사과한다. 어쩔 도리는 없다. 하지만 그의 음악을 꼭 들어보시라. 기회가 되면 앨범 전곡을 꼭 들어보시라. 그 감동을 어떻게 설명해야할 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