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뿐사뿐 발걸음을 쭉 내딛으며 빙글빙글 회전하는 춤사위가 눈부시다. 두 사람이 한 몸처럼 밀착한 채 몸을 휘고 흔들며 무대를 누비는 모습은 환희다. 시종일관 생기에 찬 얼굴과 움직임에서 우리 조상들의 ‘족도환무’(신명 나고 즐겁게 추는 춤)를 떠올린다. 우리 민족은 주악과 가무를 즐겼고, 이에 능했다.
군사독재 시절 댄스스포츠는 ‘사교춤’으로 불렸다. 그 당시 사교춤은 희롱을 좋아하는 남자들이나 즐기는 쌍스러운 춤이라고 경멸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아니면 놈팡이, 제비, 꽃뱀, 조폭, 건달, 사기꾼 등이 들락거리던 카바레에서 추는 춤으로 인식됐다. 완벽한 ‘편견’이었다. 한편으로는 술에 취한 남녀가 농염한 색소폰 소리에 맞춰 흐느적거리듯 춤을 추는 장면이 영화나 드라마에 묘사되면서 사교춤을 ‘불륜’의 대명사처럼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사모님 제비 한 마리 키우시죠?’라는 대사도 영화에서 처음 나온 얘기다.
이러한 편견은 우리 민족의 정서 안에 유교사상과 엄숙주의, 자유와 평화를 억압하는 문화가 깊이 침윤한 것에서 비롯됐다. 하지만 사회가 민주화되고, 생활수준이 높아지면서 ‘사교춤’에 덧씌워진 ‘일탈’의 이미지는 사라졌다. 요즘은 남녀노소가 즐기는 건전한 놀이로, 여가를 즐기는 취미생활로, 사람들과 소통하고 관계를 넓히는 사교활동으로, 정신적 즐거움과 육체적 건강을 위한 스포츠로 각광을 받고 있다.
박성우, 조수빈 선수는 댄스스포츠 국가대표다. 2011년, 2012년 전국체전 금메달, 2013년 인천실내무도아시아게임에서는 은메달을 땄다. 두 사람은 수상 경력만으로도 자신들의 위치를 증명한다. 실제 이들의 춤을 보고 있으면 동작 하나하나에 경탄을 금치 못한다. 마치 아리따운 새 두 마리가 구름 속을 유영하는 모습 같다.
이들의 주 경기 종목은 ‘스탠다드 댄스’다. 댄스스포츠는 ‘스탠다드 댄스’와 ‘라틴아메리칸 댄스’로 나뉜다. 스탠다드 댄스는 두 선수가 떨어지지 않고 춤을 추면서 고상하고 기품 있는 동작을 선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스탠다드 댄스는 5종목으로 세분된다. 퀵스텝, 왈츠, 탱고, 비엔나 왈츠, 슬로 폭스트롯이다. 반면 라틴아메리칸 댄스는 두 선수가 자유자재로 춤을 추면서 역동적이고 강렬한 움직임을 연출하는 춤이다. 라틴아메리칸 댄스도 5종목으로 나뉘는데, 룸바, 차차차, 자이브, 삼바, 파소도브레다.
박성우 조수빈 선수의 춤은 시원하고 유려하며 분명하다. 그럼에도 동작과 동작의 이음새가 자연스럽고 박력이 넘친다. 특히 이들의 실력은 고난도의 ‘퀵 스텝’에서 빛을 발한다. 기본에 충실한 기교와 정열적인 자세, 타고난 재능과 피땀 흘린 노력이 버무려진 결과다.
두 선수는 신체적인 요건도 세계 유수의 선수들에게 빠지지 않는다. 키도 크고 용모도 훌륭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서로에 대한 교감과 배려심이 깊다는 것. 이것이야 말로 이들이 다른 커플과 가장 다른 특성이자 한국을 대표하는 국가대표 선수가 된 이유다.
박성우 선수는 “파트너가 된 기간이 다른 커플보다 길다. 올해 5년차다. 파트너는 하루에 절반 이상을 같이 지낸다. 공과 사를 같이 한다. 그러다 보니 트러블이 생겨 헤어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우리는 서로에게 배려한다. 그것이 우리 커플의 가장 큰 강점”이라고 말했다.
댄스스포츠는 타고난 재능이나 실력도 중요하지만 파트너와의 호흡이 굉장히 중요하다. 두 사람이 한 팀이 돼 치르는 경기이기 때문이다. 각자 실력이 제아무리 뛰어나도 서로 마음이 맞지 않으면 좋은 결과를 내지 못한다. 매실로 담근 술에서 매실 냄새가 안 빠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세상엔 공짜도, 쉬운 일도 없다. 돈 벌기도 힘들고, 인간관계도 수고스럽다. 마음을 쓰지 않고는 저절로 이뤄지는 결과도 없다. 특히 누군가와의 경쟁에서 이겨야 하는 압박을 감당해야 하는 스포츠 선수들은 더하다. 자기 자신과의 투쟁만큼 힘든 것도 없다. 박성우 조수빈 선수도 마찬가지다. 한바탕 무대를 돌고 나면 숨을 들이마시기조차 힘들 정도로 심장이 뛰고 폐가 쪼그라든다. 경기를 막바지에 앞둔 상황이라면 어떠하겠나. 하지만 이들의 얼굴은 밝다. 힘겨움을 자신의 것으로 체화하는 과정이 생활화돼 있다. 두 사람은 평소 하루에 3~4시간 정도 연습하고, 사람들에게 댄스스포츠를 가르치는 일을 한다. 국가대표 선수이기도 하지만 누군가의 선생 역할을 하고 있다. 사생활이 거의 없을 정도다. 그럼에도 이들은 시간이 나면 공연도 관람하고 여행도 떠나려고 노력한다. 모두 배움의 연장이다.
넉넉하지 못한 주머니 사정은 이들에게도 난제다. 박성우 선수는 “돈이 많이 든다. 공부하는데 레슨비가 싸지 않다. 부산출신이다. 서울에서 혼자 생활하면서 어려움이 많았다. 이제는 자리를 좀 잡아서 괜찮아졌다. 그래도 지원은 많지 않아 어렵다”고 말했다. 조수빈 선수도 “공부하는 부분에 지원이 안 된다. 춤은 창조적인 작업이다. 답이 정해진 게 없다. 배우지 않으면 뒤처진다. 우리는 백문종, 정명숙 선생님에게 배운다. 또 1년에 두 번 외국에 나가 1달 정도 머물면서 공부한다. 외국에도 따로 선생님이 있다”고 말했다.
다행스러운 점은 댄스스포츠에 대한 사회의 인식이 달라졌다는 사실이다. 조 선수는 “사람들이 부정적인 인식보다 오히려 멋있다고 하더라. TV에서 댄싱위드더스타 같은 프로그램이 방송되면서 대중적인 인지도도 많이 올라갔다”고 지적했고 박 선수도 “초등학교 때 처음 춤을 췄는데 친구가 ‘사교’ 배우느라 멋모르고 하던 말은 생각난다. 하지만 요즘은 많이 달라졌다. 전혀 느끼지 못한다”고 강조했다.
박성우 조수빈 선수는 국가대표가 된 뒤 수많은 대회에 참가하며 웃고 울었다. 모든 경기가 가슴에 남았을 테지만 매번 감동이 똑같을 수는 없다. 그중에서 가슴이 터질 것 같은 감동, 그 진한 감동에 콧날이 시큰해지고 눈빛이 희열로 가득 찼을 경기가 궁금하다.
조수빈 선수는 “2013년 여름에 열린 콜롬비아 월드게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조 선수는 “아시아 경기에는 많이 나가봤지만 전 세계가 참가하는 국제적인 경기에 참여한 것은 처음이었다. 투우장에서 경기가 열렸는데, 남미의 분위기는 한국과 매우 다르다. 콜롬비아는 댄스스포츠를 모르는 나라였지만 세계 슈퍼스타들이 온 것처럼 대우를 해줬다. 관객들의 호응도, 열정도 장난이 아니었다. 박수와 함성이 다가 아니라 자리에서 일어나 모두들 춤을 췄다. 진심으로 즐거워한다. 긴장감, 부담감 없이 즐겼다”며 웃었다.
박성우 선수는 가장 인상 깊었던 경기로 “첫 번째 국가대표선발전”을 꼽았다. 박 선수는 “3위 안에 들어야 국가대표가 되는데 2위가 됐다. 실력이 부족했지만 편한 마음으로 경기에 임했고, 패기 하나로 그 자리에 올랐다. 그때부터 인생이 바뀌었다. 대우도 달라졌다. 댄스스포츠는 인기종목이 아니라서 재정지원의 어려움이 많다. 국가대표가 되니 춤에 관함 마음가짐이 달라지고 희망도 생기더라”고 말했다.
댄스스포츠는 한국 선수들이 국제대회에 참가할 만큼 기량과 인지도 면에서 성장했다. 하지만 다른 나라와 달리 한국은 선수들에 대한 경제적인 뒷받침이 거의 없는 상황. 국가에서 모든 것을 지원하는 중국과는 사뭇 다르다. 물론 홀로 인내하며 대성한 선수도 있지만, 큰 성과를 낸 선수들의 이면에는 훌륭한 개인기 못지않은 교육과 재정적인 뒷받침이 작용했다.
박성우 선수는 “스폰서가 많이 들어왔으면 좋겠다. 국가와 대기업의 지원이 필요하다. 협회도 재정문제로 도움이 한정적이다. 선수들이 열성을 가지고 잘해나갈 수 있도록 도와 달라. 한국에 인재가 많다. 절대 안 꿀린다”고 말했고, 조수빈 선수도 “인기종목과 비인기 종목의 차이가 많다. 댄스스포츠의 발전을 위해서는 지원도 활성화되고 관심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댄스스포츠는 몸과 마음을 이완시켜준다. 긴장과 스트레스도 해소하고, 신체의 건강을 찾아주며, 이성 간의 건전한 만남을 주선한다. 댄스스포츠는 누구나 쉽게 배우고 즐길 수 있다. 하지만 배울수록 체력과 고도의 기술, 파트너와의 조화가 요구된다. 댄스스포츠에 대한 평가가 어떻든, 편안한 마음으로 즐기다 보면 모두 다 감도 잡고, 해결될 일이다. 일단 먼저 배워보고 얘기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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