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어지럽다. 머리가 쑤셔온다. 감기에 걸린 것도 아닌데, 오한이 나고 골치가 지근지근 아프다. 과거 빛바랜 사진 속에서 마주했던 경악과 공포가 떠오른다. 푼더분한 옷을 입은 사람들의 얼굴에 감돌던 죽음의 그늘부터 인간성마저 짓밟아버린 이데올로기의 갈등, 붉은 머리띠 동이고 팔뚝질을 해대는 청년들의 시위까지 우리나라 역사 속 장면들이 주마등처럼 눈앞을 스친다.
꼭 과거의 일이지만은 않다. 세상은 한 편의 대하소설처럼 양면적이고 정교한 혼란에 휩싸여 흘러가고 있다. 한쪽에서는 과하리만큼 불안과 부조리를 감추고, 다른 한쪽에서는 중첩된 부정과 비민주성에 몸서리를 친다. 일련이 사건들이 겹겹이 쌓이고 과중되면서 올바른 말, 정의를 외치는 사람들은 모두 ‘종북’과 ‘빨갱이’로 몰렸고, 힘 있는 자들은 자신의 말을 듣지 않으면 혼내주겠다고 몽둥이를 들었다.
우리는 어떤 마음을 가져야 이 난국을 슬기롭게 넘어갈 수 있을까. 동시대를 사는 중견작가이자 ‘빨치산의 딸’ 정지아 작가에게 그 묘책을 물었다.
“언제인들 세상이 평화롭기만 했겠는가? 뉴스만 봐도 머리가 아픈 사회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니, 머리가 아프기는 하다. 뉴스야 문제만 보도하는 것이니까. 그래도 옛날을 돌이켜보면 우리 사회는 상상 이상으로 발전했다. 민주화의 측면도 마찬가지다. 물론 부족하지만 7,80년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국민 대다수의 생각도 그러할 것이라고 추측한다. 그 결과가 지난 대선, 총선으로 보이지 않았나. 물론 우리 사회에 문제는 많다. 그러나 지구상에 완벽한 사회는 없다. 다만 더 많은 사람들의 인권이 보장되는 세상으로 변화하고 있을 뿐이다. 발전을 위해 비판도 필요하고 때로는 투쟁도 필요할 것이다. 비판하고 투쟁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문제투성이라서만은 아니다. 설령 완전한 민주주의가 실현된다 해도 우리는 더 나은 무엇인가를 찾아낼 것이고 더 나은 무엇인가를 위해 비판하고 투쟁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전보다 나아진 것도 인정해야 하지 않겠나. 예전보다 낫다는 간단한 생각만으로도 조금은 마음이 가벼워지지 않을까?”
우리 사회는 오리무중이다. 수도 없는 문제들이 내내 사회불안의 요소로 작용할 것 같다. 우리 사회의 자화상을 잔잔하게 훑어내면서 삶과 죽음, 인생의 의미를 반추해온 정 작가의 생각이 궁금하다.
“언제나 단순하고 솔직한 게 제일 좋다. 아무리 사람을 믿지 않는 사람도 어린아이는 믿는다. 어린아이는 꾸미지 않기 때문이다. 좋은 정치는 어린아이와 같이 단순 명료해야 한다고 믿는다. 우리 사회의 불통이 현 정부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야당도, 진보진영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우리 국민에게 정치는 술수에 지나지 않는다. 술수이니 서로가 서로를 믿지 않는 것이다. 해방 이후 오늘날까지 쌓여온 불신이 하루아침에 사라지겠는가. 사람의 업도 세상의 업도 쌓아온 그만큼의 세월과 노력이 있어야 풀어진다. 그 시간을 묵묵히 견뎌내야 하는 것이 그 시절을 살아온 우리의 업보 아닐까. 우리의 어떤 행위나 말들도 어떻게든 우리 사회의 불신에 한몫을 했을 터이니. 나는 야당과 진보진영에 더 많은 비판을 하는 사람이다. 아마 내 편 같은 마음일 것이다. 여당의 잘못이야 당연히 그러겠지 지나가지는데, 야당과 진보진영의 잘못에 대해서는 분노가 치민다. 나는 야당과 진보진영이 먼저 변했으면 좋겠다. 자신들의 오류와 실수부터 반성했으면 좋겠다. 자신들의 오류를 덮은 채 여당을 공격하는 것은 진보진영의 존재 이유를 배반하는 행위다. 지금 당장 야당이나 진보진영의 입지가 좁아지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입지는 이미 충분히 좁아졌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세(勢)가 아니다. 얼마나 긴 세월이 걸리든 제대로 하는 것이 중요하다. 친일파 청산부터 시작하여 모든 것을 제대로 하지 않았기에 오늘날 우리 사회가 이런 고통을 겪고 있는 것 아닌가. 제대로 해야 한다는 것이 지난 우리 현대사가 남긴 교훈이다. 제대로 하지 못하면 언젠가는 그 값을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세상에 공짜가 없듯 역사에도 공짜는 없다. 잘못됐다면 사실을 밝히고, 사과하고, 도려내면 그만이다. 똑같은 말을 나는 현 정부가 아니라 야당과 진보진영에 하고 싶다.”
일이든 우정이든, 사람과 관계된 문제는 공감과 소통이 중요한 것 같다. 하지만 현대인들은 점점 이것을 잃어버리면서 사는 듯 보인다. 자기만 중요하고, 자기 것만 챙기려고 경쟁하다 보니 사회는 더욱더 불통의 시대로 간다.
“사람인 이상 공감하지 않고 소통하지 않고는 살 수 없다. 현대인들도 간절히 소통을 원한다. 왜들 그렇게 SNS에 빠져 있겠는가? 소통하고 싶고 세상 속에 나라는 존재를 드러내고 싶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현대인들이 다른 사람이나 세상에 관심이 없어 보이는 것은 우리 사회의 상부구조가 급격한 세상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경제적으로 윤택해지기는 했으나 극심한 경쟁 속에서 삶은 이전보다 더 피곤해졌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여야가 무슨 소리를 하든, 무슨 짓을 하든, 그저 덜 경쟁하고 더 여유롭게 사는 것을 원하는 것 같다. 정치가 해야 할 일은 그들의 수고를 알아주고 덜어주는 것이요,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우리의 욕심을 덜어내는 것이다. ‘더 여유롭게’가 모든 것을 가능케 한다는 의미는 아니기 때문이다. 더 여유롭게 살기 위해서 어쩌면 더 편리하게 더 풍요롭게 살고 싶은 욕망을 어느 정도 포기해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물질적으로 풍요롭고 더할 나위 없이 편리하면서 경쟁하지 않고 여유로운 삶이란 유토피아 아닌가. 유토피아는 지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정지아 작가는 대학시절 뜨거운 심장을 가진 운동권이었다. 숙명적이라고 해야 할까. 정 작가는 25살 되던 해 3권짜리 소설 <빨치산의 딸>(부제 ‘소설로 쓴 남한인민유격투쟁사’)을 써냈다. 이 소설은 자신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삶은 담아낸 작품으로 출간 직후 판매금지가 됐다. 실제 그의 아버지는 전남도당 조직부부장이었고, 어머니는 이현상부대 정치지도원이었다. 정지아라는 이름도 빨치산의 근거지였던 지리산의 ‘지’ 자와 백아산 ‘아’자를 따와 부모님이 지은 것이다.
이후 정 작가는 소설 <행복> <봄빛> <숲의 대화>과 르포집 <벼랑 위의 꿈들> 등 <빨치산의 딸>과는 사뭇 다른 제목의 작품을 발표해왔다. 빨치산 가족사에 머무르지 않고 역사와 인간을 다면적으로 통찰했으며, 인간을 규정하는 경계 너머에서 거대한 가치를 찾아내려고 애썼다. <숲의 대화> 같은 소설은 삶의 바라보는 정 작가의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는 작품이다.
<숲의 대화>는 노비로 살던 주인공과 동갑내기 도련님의 얘기다. 도련님은 이념을 좇아 빨치산이 됐고, 자신의 아이를 가진 여자를 주인공에게 보낸 뒤 죽게 된다. 이후 주인공은 그 여자와 평생을 같이 살게 된다. 하지만 여자의 마음은 항상 도련님에게 가 있다. 죽은 뒤 유골을 뿌려달라는 장소도 도련님과 헤어진 바위다. 뒤돌아서면 억장이 무너지는 삶이다. 그럼에도 주인공은 끝까지 주변의 모든 것을 지켜낸다.
이외에도 마흔 너머까지 장가를 못 가는 아들을 조선족, 태국, 필리핀 여자와 차례로 결혼시키는 어머니의 이야기 <핏줄>, 끝없이 절망하고 추락하면서 ‘희망에 대한 공포’를 느낀 노숙자의 삶을 담은 <절정> 같은 작품들도 있다. 그럼에도 정지아 작가의 소설에는 빨치산 활동을 했던 사람, 이념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인물들이 자주 등장한다. 스스로 ‘빨치산의 딸’이라는 별칭이 부담스러웠다면 어려웠을 일. 소설 <혜화동 로터리>라는 작품이 대표적이다.
<혜화동 로터리>는 이념으로 갈등을 겪은 노인들의 삶을 그린 작품이다. 최 씨는 빨치산, 박 씨는 미군켈로부대 출신, 김 씨는 이들 사이에 낀 후배다. 최 씨는 공산당 전력 때문에 집안이 폭삭 망했고, 박 씨는 전쟁 중 미군부대에서 큰 상처를 입고 힘들게 산다. 서로 생각도, 걸어왔던 길도 달랐지만 가장 친하게 지내고, 김 씨는 그런 두 사람을 친형처럼 생각한다.
요즘 같으면 정지가 소설가도 빨갱이라고 불릴지 모르겠다. 정부에 조금이라도 반대하는 얘기를 하면 빨갱이, 종북이라고 몰아세우는 세상이다. 이념 갈등이 맹목적인 경향으로 흐르는, 이런 세상이 좀 무섭기도 하다.
“빨갱이였던 내 아버지가 말년에 가장 친하게 지낸 분은 조선일보를 구독하는 태생적, 계급적 우파였다. 그런 분과 왜 가까이 지내시냐고 물었더니 그놈이 인간성은 젤이라고 대답하셨다. ‘혜화동 로터리’의 주인공들도 실존인물이다. 그분들에게 이데올로기는 그저 성격이 다르듯 다른 생각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이념대립은 이렇게 이성적으로만 해결되기에는 너무도 크고 묵직한 게 아닌가 싶다. 이데올로기가 전쟁으로 이어졌고, 양측 모두 그 전쟁에서 직접적인 피해를 입었기 때문이다. 내 아버지는 사회주의자였지만 나는 극우가 되지 않을 수 없었던 사람들 역시 내 아버지와 똑같은 피해자라고 생각한다. 북한에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서면서 상당수의 사람들은 평생 자기 집안 소유였던 재산을 모두 빼앗기고, 부모나 형제가 지주라는 이유로, 종교인이라는 이유로 처형당하기도 했다. 그리고 대대손손 살아온 고향땅을 떠나야 했다. 그런 사람들의 삶 또한 사회주의자라는 이유로 20년 가까이 감옥살이를 했던 내 아버지의 삶만큼 고통스럽고 힘들었을 것이다. 뼈에 각인되었을 상처를 가진 사람들에게, 그리하여 뼛속 깊이 원한이 쌓인 사람들에게 이성적 판단과 행위를 요구할 수는 없다. 그래서 우리 사회의 이념 대립에는 어쩔 수 없이 세월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그 정도의 상처는 무엇으로도 회복되지 않기 때문이다.”
정지아 작가가 앞으로 독자들과 소설로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 느낌이 온다. ‘나’와 ‘너’가 아니라 ‘우리’가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을 향한 디딤돌 역할이다.
“사람이 진정으로 잘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이런 게 요즘의 화두다. 우리 사회는 너무나 남의 시선을 많이 의식한다. 남에게 예쁘게 보여야 하고, 돈도 있어 보여야 하고, 능력도 있어 보여야 한다. 그래서 성형을 하고 스무 살 꽃다운 여자들도 화장을 한다. 아무리 돈이 없어도 대학생이라면 어학연수 한 번쯤 다녀와야 하고, 빚을 내서라도 해외여행을 다녀와야 한다. 그래서 있어 보이면, 예뻐 보이면 좋은가. 그래서 남들처럼 살면 행복한가. 나 역시 그런 질문들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나에게도 늘 묻는다. 나는 무엇을 하면 행복한가? 나는 어떨 때 행복한가? 내가 진정으로 행복한 것들을 찾고 싶고, 진정으로 잘 살고 싶다. 우리가 진정으로 잘 산다는 것을 제대로 찾을 때 우리 사회도 조금은 더 나아지지 않겠나. 독자들과 그런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세상이 어지러울수록 배우는 게 남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머리를 싸매고 공부하라는 것이 아니라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고 찾아보는 습관이 필요하다. 제 아무리 지식이 많은 사람이라도 사회가 돌아가는 것을 모르면 무식하다. 인간이 바로 정치적,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이다. 세상을 둘러보고, 주위에 관심을 쏟으면 미혹에 빠지지 않고, 오히려 긍정적인 마음도 얻을 수 있다. 너무도 개인적이고 이기적인 사람들, 사회문제에 나 몰라라 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정지아 작가는 자신에 대한 공부가 먼저라고 지적했다.
“자기를 잘 들여다보면 거기 세상 문제에 대한 답도 있을 거라 믿는다. 잘 사는 사람들은(돈이 많거나 출세한 사람을 말하는 게 아니다) 절대 이기적이지 않다. 나이 들어 보니 인간에게 가장 큰 기쁨은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누군가와 진심으로 소통하고, 누군가의 성장을 돕고, 그리하여 누군가가 나로 인해 성장하는 것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값진 선물이요 축복이다. 사람에게 남는 것은 사람뿐이다. 그러니 잘 사는 사람들은 제 주변을, 제가 속한 세상을 고민하고 보듬지 않을 수 없다. 각자 알아서 잘 사는 세상, 옆사람이 옆사람을 알아서 챙기는 세상, 그래 살만 한 세상이 내가 꿈꾸는 세상이다.”
정 작가는 개인적으로 보면 결코 흔하지 않은 삶을 살았다. 또 소설을 쓰면서 많은 사람들의 삶을 탐구해왔다. 어떻게 사는 게 좋은지 나름대로 기준이 있을 듯싶다.
“얼마 전 키우는 개가 새끼를 낳았다. 주인이 하도 무심해서 새끼 가진 것도 몰랐는데 저 혼자 낳았다. 새끼 키우는 학교라도 다닌 듯이 키우기도 잘 키운다. 때 되면 알아서 젖 먹이고, 때 되면 알아서 배변을 유도한다. 그러고는 나 잘했지? 묻는 듯이 내 옆으로 와 빤히 바라본다. 머리 몇 번 쓰다듬으면 즐거워한다. 지금 남의 집을 얻어 살고 있는데 옆집 사는 주인아저씨가 우리 개를 싫어한다. 말라뮤트인데 그런 개는 잡아먹어도 맛이 없다는 이유다. 눈병을 앓아서 아저씨 트럭으로 병원에 간 적이 있는데, 개 따위 그냥 놔두면 다 낫는다며, 쓸데없이 돈 쓴다고 두고두고 잔소리다. 그런 양반이 우리 개, 새끼 낳았다고 돼지고기 두 근을 삶아왔다. 나는 그냥 이렇게 살면 된다고 생각한다. 에미가 에미 도리를 다하고, 잘했으니 칭찬을 원하고, 잘했으니 칭찬하고, 서로 애정을 주고받으며 살면 되지 않는가? 먹을 것으로 생각했던 개지만 새끼를 낳았으니 기특해하고, 기특하여 고기로 보답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면 되지 않는가? 못난 사람도 잘난 사람도, 윗사람도 아랫사람도, 저 할 도리를 다 하고, 도리를 다한 것을 마땅히 인정해주는 세상이었으면 좋겠다. 알고 보니 이런 세상이 저 공자가 말한 君君臣臣父父子子의 세상이란다. 사람들 각자도 이렇게 살았으면 좋겠다. 나 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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