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리스마 작렬이다. 목소리 끝내준다. 얼굴은 인상파에다 무대를 장악하고 이끌어가는 힘은 넘친다. 뮤지컬 <메리 포핀스를 찾습니다>의 주인공, 김기종 배우다. 그는 극 중에서 아내를 잃은 외로움과 슬픔을 이겨내기 위해, 험난한 세상에서 살아가야 할 자식들을 지켜내기 위해 자신의 마음을 감춘다. 사나운 북풍과 같은 얼굴로 근엄하게 주위 사람들의 항의와 불만을 제압하면서 냉정과 날카로움으로 위장한다. 마치 서리발이 눈앞에서 날리는 듯하다. 하지만 그는 무대에서 내려오면 부드러운 남자다. 미소가 깃든 그의 얼굴을 보게 된다면 무대 위 냉랭한 얼굴은 모두 연기였다는 것을 정확하게 알게 된다. 그 웃음 어딘가에서 천진만난한 분위기가 감지된다는 것도.
뮤지컬 <메리 포핀스를 찾습니다>가 공연 중인 대학로 뮤디스홀을 찾았다. 배우들은 모두 공연 준비로 바쁠 시간. 김기종 배우도 연일 작품이 계속되면서 피곤이 누적되고 있다. 그는 “매일 공연이 있어 스케줄 조절이 가장 힘들고 피곤하다”며 “신체적 피로도 있지만 극을 끌고 가는 역할이기 때문에 심리적으로도 부담이 있다”고 한숨을 내쉰다. 하지만 얼굴은 밝다. 그는 매일매일 자신의 역사를 새로 쓰는 각오로 무대에 오르고 있다.
심호흡을 하고 객석에 앉아 김기종의 연기를 유심히 봤다. 손짓, 발짓, 대사, 노래, 아주 세세한 움직임까지 뚫어지게 관찰했다. 두 번째 봤지만 역시 멋지다. 외형적인 아름다움이 아니라 배우로서 멋지다. 공연이 끝난 뒤 본인이 매력이 있는 걸 아느냐고 물어보니 웃어버린다. 관객들이 자신의 매력을 알아봐 주고, 좋아한다고 얘기해준 것에 무조건 “고맙다”고 머리를 조아린다. 그는 “무대가 주는 선물, 관객이 주는 선물”이라며 “평생 갚아야 하는 선물”이라고 겸손하게 말한다.
그는 이 뮤지컬에서 아이들을 사랑하지만 그 마음을 그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파묻는 부정을 천연덕스럽게 연기한다. 극 중 역할로만 보면 그는 괜찮은 아빠가 아니다. 깐깐하고 고집이 세며, 사방이 불통인 아빠다. 하지만 매력이 느껴진다. 원칙주의자 같지만 왠지 모르게 수더분하다. 까다롭지만 말과 행동은 반드럽지 않다. 정이 있어 보인다. 그래서 그는 진짜 우리네 아빠 같다. 무섭게 얘기하고 살벌하게 노려보지만 마음 한편에서는 아빠의 사랑과 관심이 느껴진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배역을 완벽하게 소화해내는 그의 연기력 때문만은 아니다. 그에게 풍기는 이미지가 아빠라는 배역과 잘 어울린 탓도 있다. 예를 들면 한효주가 장희빈 역할을 맡는 것과 김혜수가 맡는 것은 다른 느낌을 준다. 첫인상, 관상 등 ‘겉으로 보이는 이미지’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배우들은 자신이 맡은 배역에 철저하게 몰입해 연기 하지만 언어 습관이나 눈빛에서 그런 게 드러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캐스팅 책임자들은 배역을 정할 때 배우의 기본적인 이미지를 유념한다. 악역전문배우란 말도 그냥 나온 게 아니다. 그런 아우라를 쉽게 뽑아내기 위해 특정 배우에게 자꾸 악역을 맡기다 보니 악역전문배우가 생긴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실제 악인이 아니고, 배우들도 고정된 이미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각고한다.
김기종은 푸근한 아빠의 뉘앙스, 완고한 귀공자의 분위기가 겉에서 풍긴다. 이 뮤지컬의 주인공으로 선발됐을 때 그런 점도 충분히 고려됐을 듯싶다. 하지만 그는 아직 결혼도 하지 않은 총각에, 아버지의 무뚝뚝한 성품까지 헤아릴 줄 아는 섬세한 아들이다.
“이 작품에서 제가 맡은 조대장이라는 캐릭터는 전형적인 우리 시대 아빠의 모습이다. 사회적으로 뛰어나고, 자식들을 사랑하지만 표현력이 부족한, 자식들이 잘 되도록 자신의 스타일대로 지시하는 것을 사랑이라고 착각하며, 자신이 원하는 인생을 자식들이 살기를 바란다. 비록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어색하지만 그 안에 있는 것은 사랑이다. 공연을 보러 아버지가 오셨는데 감정이입이 되더라.”
김기종은 관객의 혼을 빨아들이듯 무대를 쥐락펴락한다. 노래를 부를 때도 감정을 최대한 담아내지만 절제를 잃지 않는다. 또 눈빛 하나로 관객들의 마음을 뒤흔들고 빠르게 감정을 이입시킨다. 어떤 무대에서도 연기하고 노래 부르며 관객들을 열혈 팬으로 만들어버릴 기세다. 그런 내공은 그냥 쌓이는 게 아니다. 그러나 그는 뮤지컬 무대에 선 경험이 많지 않다. 중요한 작품을 꼽아보자면, 그는 뮤지컬 ‘스쿨런’이라는 작품에서 일탈하는 아이들을 붙잡아 마음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선생님 역할을 맡았고, 뮤지컬 ‘울지마 톤즈’에서 이태석 신부님의 또 다른 자아인 조관 역할로 무대에 섰다.
그에게 배우로서 타고난 기질이 느껴진다. 하지만 그의 가장 큰 힘은 ‘홀로’가 아니라 ‘함께’ 무대를 만들어간다는 소신과 책무에 있다. 그가 꿈꾸고 원하는 배우인생도 그래서 ‘무엇’이 아니라 ‘어떻게’다. 유명한 배우, 잘 나가는 스타가 아니라 주위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게 위로하고 감동을 주는 연기자, 무대 위에서도 눈과 귀, 마음이 열려 있는 연기자가 되길 원한다.
“나는 소통하는 배우가 되고 싶다. 배우, 관객, 스텝들과 잘 소통하는 것이 목표다. 쉬울 수 있는데 가장 어렵다. 언제나 어떻게 하면 소통을 더 잘할까 고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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