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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내가 만난 사람

정희승 사진가 - 고정된 해석에서 자유로워지는 부적절한 은유들

정희승 사진가의 작품


거꾸로 매달린 전등과 포개진 의자, 지지대 없이 덩그러니 펼쳐진 커튼과 거울 위에 옆으로 붙은 벌. 정희승 작가의 작품은 시선을 압도한다. 오묘하고 기이하다. 뭔가 특별한 것 같지만 특별하지 않는 묘한 분위기에 ‘왜’라는 궁금증을 유발한다. 그러면서 온갖 상상을 불러일으키고 생각의 확장, 시선의 확장을 유도한다.

보통 사진은 인물이나 장소의 특성을 규정한다. 사진 속 공간 옆, 사진으로 나오지 않은 곳에 무엇이 있고, 어떤 상황이 벌어지는지 사색을 제한시켜 왔다. 그러나 정 작가의 사진은 다르다. 수많은 궁금증 속으로 관람자를 빠지게 만든다.

“부적절한 은유들은 사진의 재현적 매체로서의 한계, 그리고 이미지가 언어로 환원될 수 없다는 사진매체에 대한 나의 근본적인 회의를 드러낸다. 우리의 현실을 구성하는 미디어 이미지들이 언어에 의해서 얼마나 쉽게 그 의미가 왜곡되는지, 그리고 그것들이 얼마나 쉽게 사실로 받아들여지는지는 굳이 이야기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정 작가는 현실보다 이미지 자체에 집중한다. ‘대상의 표면에는 잘 드러나지 않는 것, 잠재된 상황들, 배후에 감춰진 존재들’에 대해 천착하면서 이미지에 어떤 역할과 가능성이 있는지 파고든다.

“나는 현실 문화에 대한 비판보다는 이미지 자체로서의 가능성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그리고 나에게 그 가능성은 사진 이미지가 관습적인 의미작용으로부터 살짝 미끄러지는 순간에 발견된다. 이 작업들은 결국 그러한 의미의 탈출 지점들을 찾아나가는 과정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 이미지들은 모두 부적절한 은유들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고정된 해석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정희승 작가의 작품은 심도를 가늠하기 힘든 반면에 거친 느낌도 준다. 확실하지만 불확실하고, 범상하지만 자별하고, 일반적이지만 독특하다. 그래서 그의 사진이 오락가락하고 어렵다는 인상을 준다.

“사진들이 어렵다고 느껴지는 것은 어쩌면 내가 대상을 바라볼 때 확실과 불확실, 평범과 비범을 구분 짓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바로 그 규정할 수 없는 상태가 정확하게 내가 작업들을 통해 찾아가는 지점이기도 하다. 정물 사진 이전의 인물사진 연작들도 주제 면에서는 이러한 대상의 비결정적인 상태를 표현하고자 했지만 형식적으로는 동시대 예술사진의 안전하게 공인된 틀 안에 있었다고 생각한다. 12점으로 구성된 동일한 형식의 사진 연작은 예술사진의 형식으로서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종류의 것이었다. 내가 정물 사진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사실 이러한 형식으로부터 탈피하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미리 가정된 개념보다는 우연과 즉흥성에 의존하기 시작했고, 다양한 크기의 사진들, 사물과 신체, 인물과 정물, 컬러와 흑백이 한 공간 안에서 만나게 됐다.”

창작자는 작업을 할 때 영감이 필요하다. 시인은 시어에 대한 영감, 화가는 그림에 대한 영감, 음악은 악상에 대한 영감으로 작업한다. 사진 또한 창의적인 작업이다. 그는 어떤 개념과 영감으로 사진 작업을 하고 있을까.

“사진의 영감은 물론 시각적 경험에서 온다. 하지만 여기서의 시각적 경험의 대상은 구체적인 형태를 지닌 사물이나 이미지만을 의미하진 않는다. 소설이나 시에서 떠오르는 추상적인 이미지도 내게는 매우 중요한 시각적 경험으로 축적된다. 그렇게 머릿속에 저장된 이미지 아카이브가 구체적인 사물과 만나게 되는 어떤 순간에 사진 이미지가 만들어지는 것 같다.”

 

정희승 작가는 제11회 다음작가상 수상자로 선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