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쓸쓸한 침묵이 흐른다. 축축한 흙내가 풍긴다. 곰살맞은 전원풍경이 그리운 여행자에게 농촌은 그야말로 ‘자연’이겠지만, 그곳에서 나고 자라 죽음을 바라보는 나이에 접어든 노인들에게는 징그러운 삶의 터전으로 보일 것이다. 땀으로 생명을 키워내고 결실을 맺는 농촌이 왜 징그러운 곳으로 변해버린 것일까. 오랫동안 흙매를 놓지 않아 폐허처럼 변해가는 ‘빈집’을 보니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농촌에서는 한숨이 끊이질 않는다. 쌀수입 개방 압력이 식량안보를 걱정하게 만들고, 대형마트에 들어선 수입산 열대과일이 입맛마저 변하게 하고, 어디서 나고 어떻게 자란지도 모르는 소고기, 돼지고기들이 먹거리 안전을 위협해서만은 아니다. 물질문명은 ‘부자’라는 새로운 동경을 만들어냈다. 또 먹고 살기 어려워지니 사람들은 모두 농촌을 떠났고 땅도, 인정도, 젊음도, 웃음도 점점 사라져 가게 됐다. 그래도 삶의 터전을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은 노인들이다. 농촌이 바로 자신의 인생 자체이기 때문이다.
혼자 사는 노모는 자식들에게 부담이 될까봐 도와달라는 얘기도 못하고 끙끙대며 밭을 일구고, 수확한 농작물은 그마저 도시에 사는 자식들에게 모두 보낸다. 아비는 한 해 쌀농사를 열심히 지어 햅쌀 부대 가득 싣고 농협에 가도 모 심고, 비료 값 내고, 농약 치고, 임대료 내고, 농기계 움직인 돈조차 받질 못해 얼굴이 어둡다. 게다가 홍수나 가뭄 등 재해까지 겹치면 세상 살 힘마저 놓고 싶어진다. 이것이 바로 우리 농촌의 생생한 진실이다.
박홍규 작가는 차마 그런 현실을 지나칠 수 없었다. 그래서 새벽에 일어나 늦은 밤까지 허리 한 번 제대로 펴지 못하고 농사짓는 농민들을 그렸고, 80년대부터 진행된 개방농정 앞에 무너져가는 농촌의 현실과 이에 대항하는 처절한 농민들의 투쟁을 화폭에 담아냈다. 또 고통과 고뇌 속에 살고 있는 농민들의 삶도 달랬고, 도시인들에게 점점 잊혀 가는 고향을 되살리기 위해 노력해왔다.
“농민계급의 양극화가 심하다. 수입개방이후 중농들이 빈소농, 임대농으로 전락했다. 이러니 젊은 사람들이 농촌에서 아이를 키우고 살겠나. 선택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나는 85년부터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근데 농사짓다 망했다. 빚도 많이 졌고, 하우스농사도 망쳤다. 생활고에 시달리고 절망적인 시간을 보냈다. 자기 땅도 아니고 남의 땅에 농사지으며 살아보니 어렵더라.”
사람이 사는 집 같은데, 사람은 없다. 노인들은 서 있기도 힘든 통증을 안고 논에, 밭에 일하러 나갔다. 허릿병, 신경통, 관절염이 노상 괴롭혀도 해야 할 일을 놓을 수 없다. 그러면 삶은 죽음과 같아져 버린다. 곳곳에 인적이 끊긴 빈집이 보인다. 아예 몇 년째 비어 있는 집도 있다. 할머니는 일하다 말고 휜 허리를 곧추 세운 채 먼저 저 세상으로 간 이웃집 ‘할매’를, 도시로 이주한 누구누구의 가족들을 떠올리며 긴 한숨을 쉰다.
하늘에는 짚을 태운 연기와 냄새가 가득하다. 근래에 와서는 산불이나 환경, 안전 등을 이유로 짚 태우기를 금지하고 있지만 노인들은 질병과 잡초를 없애기 위해 예로부터 해오고 배운 대로 짚을 태운다. 사나운 추위를 이겨내고 봄이 찾아온 빈집, 어둠이 내려앉은 초가삼간은 누구를 기다리는지 옷이 걸려있고, 불도 켜져 있다. 은행나무가 노랗게 물든 빈집에서는 가족들과 함께 수확의 기쁨을 나누던 그 옛날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박홍규 작가의 주요 모티브는 ‘농촌의 현실’이다. 작품 소재로 빈집을 끌어들여 농촌의 현실을 잔잔하게 비춰낸다. 그의 작품에는 빈집을 두고 떠난 사람과 빈집을 이웃하고 사는 사람, 누군가가 살고 있을 것 같은 빈집 등 다양한 빈집이 등장한다. 이 빈집은 농민의 삶이자 오늘날 농촌을 그대로 투영한다.
“전주 완주 통합 반대 운동을 하면서 신흥리라는 동네를 수도 없이 오갔다. 그 길에 빈집이 있었다. 그런데 하루는 그 집에 옷이 걸려 있더라. 반갑기도 했고, 섬뜩하기도 했다. 이 집을 보고 작품을 구상했다. 달도 그려 넣고 별도 반짝이게 하고 방에는 불도 켜 놓았다. 희망, 꿈이 있으면 좋지 않느냐. 늦게까지 일하고 집에 들어갈 때 불이 켜져 있으면 반갑고, 지쳤던 마음도 녹여주더라.”
고된 노동으로 얻은 수확에 깃든 가치를 아는 사람은 드물다. 먹지 않으면 죽는 것이 생명이요, 인간이지만 도시는 먹거리를 생산해내는 사람들에게 콧방귀고, 농업 또한 산업사회에서 저평가되고 있다. 돈이면 다 된다는 것이다. 박홍규 작가는 이러한 농촌의 현실을 마음으로 그려냈다. 강렬한 색과 선으로 농촌의 고단한 삶과 노고를 잊지 말라고 얘기한다.
“새벽 3~4시에 작업한다. 작업을 하다보면 술 생각이 난다. 투쟁하는 장면도 생각나고 동지들도 떠오른다. 안쓰러워 마음도 아프고 쓸쓸해지기도 한다. 작품을 기획하고 그려내는 작업도 쉽지 않다. 집중해서 작업을 하게 된다. 그래서 술을 마신다. 작업할 때 몸을 망친다.”
박 작가는 그림으로 세상을 바꾼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왜 농촌의 현실과 농민의 투쟁을 그리느냐고 물으면 당당히 말한다. 농민들의 애환과 절망과 희망이 담긴 자신의 그림은 온전히 자기만의 그림이 아니라고. 또 그는 문화예술은 그 시대를 반영이자 그 시대의 진실과 아픔을 외면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것을 그는 ‘현장성’, 생활과 동화되는 문화예술이라고 했다.
“예전에는 문화예술이 세상을 바꾸는 무기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문화예술이 대중과 현장에서 정서적으로 교감을 이루고, 마음들을 녹아낼 수 있는지가 더욱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나이 먹으니까 철이 든 건지, 현실을 제대로 보게 된 건지는 모르겠다. 농민들의 삶과 애환이 녹아들어 있는 내 그림을 함께 나누며 힘을 내면 좋은 것이다. 그림의 생명은 작가와 관람자 서로 교감하는 현장성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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