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그래 그 영화

더 웹툰: 예고살인 - 공포영화? 아닌 스릴러, 김용균 감독 2013년작

이동권 2022. 10. 8. 20:02

더 웹툰: 예고살인 , 김용균 감독 2013년작


영화 '더 웹툰:예고살인'. 제목만 보면 영화 '이웃사람'이나 '26년'처럼 웹툰이 원작인 영화 같다. 요즘 웹툰 영화들이 대세이지 않은가. 또 형사가 등장해 살인자를 쫓는 형식은 공포영화지만 스릴러 같았다. 예고살인이라는 소재 때문이었다. 이유야 어떻든 제목에 웹툰으로 살인을 예고한다고 질러놓았으니, 문제는 영화가 얼마나 신선하느냐에 달렸다. 소재만 웹툰을 차용하고 기존 예고살인 영화의 공식을 그대로 따라간다면 이 영화는 그저 그렇고 그런 영화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요즘 관객들의 눈높이, 굉장히 높다.

처음부터 출연 배우들의 성격이 심상치 않아 보였다. 형사는 다혈질에 의욕으로 똘똘 뭉쳤다. 웹툰 작가는 예민한 데다 우울증까지 심각하다. 머지않아 은둔형 외톨이, 히끼코모리가 될 것 같다. 첫 살인은 사무실에서 벌어졌다. 용의자도 증거도 없다. 단 피해자는 웹툰과 똑같은 방법으로 살해됐다. 예상대로 형사는 웹툰 작가를 족친다. 확실한 증거라고 볼 수 없는 휴대폰 음성메시지를 들려주며 "사실대로 얘기하라"고 다그친다. 하지만 작가가 하는 말은 "나는 본 대로 그렸다"다.

두 번째 살인이 벌어지는 날, 웹툰 작가는 자신이 그린 만화와 똑같은 방법으로 사람이 죽는다는 것을 알고 살인을 막기 위해 현장으로 달려간다. 형사도 웹툰과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 현장으로 달려간다. 하지만 작가는 죽음을 막지 못한다. 어느 누구도 예상할 수 없는 신묘한 힘에 의한 죽음 앞에 속수무책이다. 그리고 현장에 뒤늦게 도착한 형사는 작가를 발견하고 그를 살인 혐의자로 체포한다. 작가는 자신이 살인자로 몰리자 하나하나 실토한다.

여기까지는 기존의 예고살인 영화와 다르지 않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김용균 감독은 관객들에게 메시지를 아주 또렷하게 보낸다. 주인공들을 모두 나쁜 놈으로 만들고, 관객들에게 이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을 보면서 '당신은 저들과 다르냐', '당신은 자신을 성찰하면서 살고 있느냐'고 질문한다. 이 부분에서 가슴을 지그시 누르는 체증이 느껴진다. 공포영화가 주는 오싹함이 아니라 부끄러워 몸 둘 바 모르게 만든다. 과연 우리는 지나간 과오에 대해 얼마나 반성하고 있을까. 감독은 주인공의 입을 빌어 말한다. (이 살인은) 귀신이 저지른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가슴속에 숨기고 있는 죄가 현실에서 재현된 것일 뿐이라고. 예를 들면 얼굴이 흉측한 엄마가 창피해 죽기를 바라는 딸이 있었다. 엄마는 딸의 방을 청소하다 자신이 죽기를 바라는 딸의 일기를 보고 충격을 견디지 못해 목을 맨다. 천장에 매달린 엄마를 발견한 딸은 엄마를 살릴 수 있었지만 방관한다. '어서 죽어'라고 울부짖는다. 이 딸은 이 영화의 첫 번째 피해자다.

이 영화의 모든 충돌은 욕망에서 비롯된다. 마음의 고요와 평화를 유지하며 살기 힘든 세상이다. 올곧은 성품을 가졌다고 해도 쉼 없이 죄여 오는 유혹을 물리치기 어렵다. 어떤 이들은 끊임없이 경쟁을 요구하는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욕망한다고 자위한다. 욕망하지 않으면 시체나 다름없다고 생각한다. 그럴수록 더욱 마음을 비우고 사회를 바라보는 여유가 필요하다. 욕망은 채우려고 할수록 채워지지 않기 때문이다. 삶의 에너지는 자신에게 쏟을 때보다 이웃과 사회를 위해 쏟을 때 더 세고 위대하다. 이 에너지 또한 편안하고 고요한 마음에서 나온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은 욕망한다. 하지만 욕망의 끝은 파멸이다. 파멸을 면하는 길은 흙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자신을 되돌아보는 것. 오직 그것 하나밖에 없다.

이 영화는 이런 주제를 꽉꽉 담아낸 까닭에 공포영화라기보다는 스릴러물 같다. 처음에는 감독이 관객에게 말 걸기를 시작하면서 공포영화라는 생각이 조금씩 사라지다가 결말에서는 확신하게 된다. 놀라서 오싹해지기보다는 부끄러워 움츠려 들게 한다. 관객들에게 특별한 감동을 주고 싶은 감독 입장에서 보면 느낌은 좀 달라도 어떻게든 성공은 했다. 감독의 마음속에는 따뜻하고 건강한 사회를 간절히 소망하는 것 같다. 하지만 어느 것 하나도 그냥 얻어지는 것은 없다. 김 감독이 영화를 통해 험난한 삶의 여정을 이겨내는 방법을 제시한 것처럼 우리에게도 지혜의 눈이 필요하고, 욕망을 끊어내기 위한 각고의 노력과 희생이 있어야 한다. 사회 변혁의 틀을 잡아가는 사랑과 투쟁의 과정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