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0. 7. 22:12ㆍ이야기/그래 그 영화

별다른 장면이 없는데도 자극적이다. 맛깔난 대사 때문이다. 지적 호기심과 풍부한 상상력으로 가득하다. 잔혹한 어떤 사회가 아주 가까운 미래에 펼쳐질 것만 같은 불안을 심어준다.
영화 ‘코스모폴리스’는 자본주의 사회의 부조리와 비윤리성, 폭력성을 여과 없이 의제로 끌어낸다. 또 엄청난 부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디로 흘러들어 가는지 알려준다. 현재 미국은 최고 부유층의 소득이 계속해서 증가해 미국 전체 소득에서 상위 1%가 차지하는 비중이 7.7%에서 17.1%로 늘었다. 이 얘기는 누군가의 소득이 그 정도 줄었다는 말과 똑같다. 과연 그들은 누구의 뼈골을 빼먹고 있는 것일까.
이 영화는 세계적인 소설가 돈 드릴로의 소설이 원작이다. 그래서인지 주인공의 대사들이 심상치 않다. 자본주의 사회의 전반적인 불평등이 왜 야기되는지,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유추가 가능하다. 반면 대사가 너무 많아 지치기도 한다. 상영되는 내내 관객들의 몰입을 요구한다. 자칫 방심하면 얘기를 놓치고 만다. 영화에서 대사는 꼭 필요한 요소다. 하지만 대사로 모든 것을 설명하면 감동이 떨어진다. 구체적인 상황으로 보여줘야 감동이 더하다. 이 영화가 괜찮은 영화인 건 분명한데, 그런 부분은 좀 아쉽다.
극 중 이야기는 구토를 부른다. 주인공은 상위 1%의 미국 부자다. 28살에 천문학적인 돈을 주무르는 거물 투자가가 됐다. 그는 리무진에서 하루를 시작한다.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돈을 잃는다. 또 부자, 천재라는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강박한다. 그래서 수많은 전문가들을 리무진에 태워 자문을 구하고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듣는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의 불안을 떨쳐주지 못한다. 그는 또 리무진에서 섹스도 하고, 하루에 한 번씩 건강검진도 받는다. 결혼 또한 섹스와 겉치레로 일관한다. 조건에 맞춰 사랑도 없는 결혼을 하고, 이미지에 타격을 내지 않는 범위에서 이혼도 불사한다. 그런데도 그들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그의 리무진이 거리를 지나는 동안 시위대들의 데모가 일어난다. 미국 월가에서 일어난 ‘점령하라’와 비슷한 시위다. 사람들은 세계 공황의 근원으로 그를 지목한다. 돈으로 세계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에릭 패커’다. 그는 가지고 싶은 것이 있으면 국가의 소유물마저 자기 것으로 만들고 싶어 안달이다.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감독은 주인공의 하루를 섬세하고 꼼꼼하게 묘사한다. 영화를 보고 있으면 다음 이야기가 자꾸 궁금해지고, 극 속으로 빨려 들어가 주인공과 함께 리무진을 타고 있는 느낌을 받는데, 인물 심리를 예리하게 묘사하는 연출의 힘이 아닐까 싶다.
이 영화는 자본주의의 끝을 보여준다. 특히 이 영화의 결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점이 크다. 미국발 금융위기로 시작된 글로벌 경기침체는 엄청난 실업률을 불렀다. 고용은 개인의 행복과 함께 경제를 총체적인 난국으로 이끄는 아주 중요한 문제다. 이 영화는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이 주장하는 실업률이 증가하는 이유를 정면으로 반박한다. 그들은 실업률이 증가한 이유를 ‘일자리가 없어서가 아니라 일하려는 의지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라고 말해왔다. 하지만 이 영화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돈이 안 되거나 필요치 않으면 해고됐고, 죽임을 당하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영화 말미에 총부리는 다름 아닌 에릭 패커로 향한다. ‘에릭 패커 당신이 죽어야 모든 것이 해결된다.’
여태까지 우리는 상위 1%가 왜 많은 돈을 버는지 얘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상위 1%에 대한 얘기가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다. 우리 사회 변화의 핵심 요인이 바로 상위 1%라는 것을 인식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이 영화는 일종의 난제를 던진다. 어떻게든 상위 1%를 들여다보자고. 아울러 이 영화는 미국 경제의 심장부 월가에서 일어난 점령 시위를 극으로 끌어들여 우리 사회의 방향성을 제시한다. ‘자본주의의 탐욕을 버려라’, ‘돈보다 사람이 먼저다’, ‘부자들에게 세금을 더 부과하자’, ‘생계비, 일자리 걱정을 하지 않게 해 달라’, ‘99퍼센트가 가난한 불평등을 종식시키자’.
세계경제가 불황과 갈등의 터널을 헤매고 있다. 2008년 9월 세계금융위기는 팍스 아메리카나(미국 제국주의)의 종언을 고했고, 우리는 정의가 실종되고, 원칙이 파기되고, 성실하게 노력해도 희망이 없고, 정당한 대가를 보상받을 수 없는 자본주의의 몰락을 경험하고 있다. 이 영화를 보면 풍요가 무너지고 있는 미국과 미국 상위 1%의 부도덕한 만행의 실상을 알게 되면서 새로운 사회에 대한 희망을 자연스럽게 꿈꾸게 될 것이다.
당신은 어떤 사회를 원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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