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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타주 - 도식적인 구조 상쇄하는 반전과 결말, 정근섭 감독 2013년작

이동권 2022. 10. 5. 22:22

몽타주, 정근섭 감독 2013년작


또 ‘아동유괴살인’이다. 소재가 빈곤하다. 요즘 한국 영화팬들을 감동시킬 소재가 너무도 판에 박혀있다. 아이를 잃은 엄마의 슬픔, 인륜이 허락하지 않은 죄, 끝까지 잘도 빠져나가는 범인 그리고 지구 끝까지라도 쫓아갈 것 같은 형사의 기세. 뻔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영화 ‘몽타주’를 보기 전까지는 그랬다.

예감은 그대로 적중했다. 김상경은 범인을 찾지 못해 괴로워하는 정의로운 형사, 엄정화는 아이에게 삶을 저당 잡힌 채 눈물을 뚝뚝 흘리는 엄마로 분했다. 두 사람은 진정성 없는 주변인들과 싸웠고, 그러한 고난과 역경에서도 얽히고설킨 사건의 실타래를 풀면서 범인을 벌했다. 그러면서 이 영화는 주인공의 입을 통해 ‘공소시효 폐지’를 계속해서 강조했다. 전형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기우였다. 이 영화를 만든 정근섭 감독은 ‘여우’였다. 똑똑하고 기발했다. 최근 들어 이런 소재와 구조를 가진 영화가 줄줄이 개봉돼 식상함이 밀려올 것 같았지만 아니었다. 이 영화는 흡인력이 대단했다. 시나리오도 탄탄했고, 배우들의 연기력도 만만치 않았다. 편집도 깔끔하고 매끄러웠다.

김상경과 엄정화는 조각난 진실을 붙여가며 범인을 잡았다. 전형적인 범죄 영화의 공식이지만 예상치 못한 반전과 결말로 부족한 부분들을 상쇄했다. 또 연출, 각본, 배우, 편집 등의 요소들이 최상의 퀄리티를 보장하면서 소재의 빈곤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을 없앴다. 아동유괴살인.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지만 그것이야말로 잘만 만든다면 ‘인간의 마음을 가장 잘 뒤흔들 수 있는 이야기’라는 생각까지 하게 만들었다.

이 영화는 ‘용의자X의 헌신’과 같은 흥미진진한 추리를 기대하긴 어려웠다. 범인과 형사가 ‘밀당’을 하면서 관객들을 호기심의 바다로 빠져들게 만드는 ‘용의자X의 헌신’과는 애초부터 스토리 구조가 다르다는 건 인정한다. 그럼에도 한 번 정도는 무릎을 칠만한 추리가 필요했지만 이 영화는 평이했다. 이러한 아쉬움도 이 영화의 반전과 결말은 깨끗하게 상쇄했다.

이 영화의 반전과 결말은 사행천의 물살 같았다. 스토리가 예상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면서 관객들에게 훅 한 방을 날렸다. ‘이럴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이럴 것처럼 상황을 몰고 가다 ‘그럴 것’으로 가버리는 식이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다고나 할까.

범인을 법정에 세우게 만드는 엔딩 또한 설득력이 충분했다. 무리하지 않았고, 마지막 부분이라고 해서 억지로 감정을 폭발시키지도 않았다. 오히려 상황의 본질을 대사와 표정을 통해 정서적으로 잘 형상화했다. 이 영화는 저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했고, 떨리는 가슴을 조용히 쓸어내리게 만들었다.

최종적으로 정리해 봤을 때 이 영화는 재밌었다. 잘 만들어진 스릴러고, 많은 관객을 동원할 것으로 예상됐다. 전반부가 다소 길고, 굳이 왜 이런 컷을 넣었을까 의아한 장면이 있긴 했다. 군더더기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범인이 남자 아이를 유괴하려다 실패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이 장면이 너무도 허망하게 종결돼 ‘뭐지’라는 생각이 들었고, 돈이 목적인 유괴범이 산동네로 보이는 곳에 사는 남자아이를 유괴하려는 설정은 이해되지 않았다. 단, 아동유괴살인은 특별한 사람들이 당하는 것이 아니라 너와 나, 우리에게도 충분히 벌어진다는 ‘일상성’을 부여하기 위한 의도로 해석하긴 했다. 분명 감독의 의도가 있을 것이다.

아무튼 이 영화는 흥행예감이 든다. 잘 만들어진 웰메이드 영화로 평가받을 수 있을 것 같다. 소재와 감동을 자아내는 포인트가 너무도 분명해서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겠지만 반전과 결말이 그런 선입견을 모두 잠재운다. 그럼에도 여전히 아동유괴살인 영화는 다시는 보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