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젤스 셰어’, 이 영화를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이유는 거장 ‘켄 로치’ 감독 때문이다. 그는 ‘불쌍한 암소’(1967)로 데뷔할 때부터 사회적 약자를 향한 끝없는 애정을 일관되게 쏟아왔다. 이를테면 갱생의지가 없는 영국 탄광촌 노동자의 삶을 묘사한 작품 ‘케스’(1969), 영국 경제의 현실이 한 노동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날카롭게 파고든 작품 ‘사냥터지기’(1980) 같은 작품이다.
그의 대표작은 계급적으로 각성하는 건축 노동자의 삶을 다룬 ‘하층민들’(1991, 칸 영화제 비평가상), 딸의 예복을 마련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가난한 노동자의 이야기 ‘레이닝 스톤’(1993, 칸 영화제 심사위원상), 두 형제가 아일랜드 독립을 위해 헌신하던 중 각각 다른 길을 선택해 운명의 대척점에 서는 역사적 비극을 그린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2006,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등이 있다.
켄 로치 감독은 1994년 가난 때문에 양육권을 빼앗긴 여인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 ‘레이디 버드’를 발표하면서부터 ‘블루칼라의 시인’으로 불렸으며, 전 세계 시네아스트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그는 총 12번이나 칸 영화제 경쟁 부분에 초청됐고, 여러 영화제에서 다수의 상을 수상하는 등 전설적인 기록을 세웠다.
켄 로치 감독이 77세가 되던 해였다. 그가 노익장을 과시하며 영화 ‘앤젤스 셰어’를 발표했다. 이 영화는 예측불허의 유머와 감동, 그리고 세상을 보는 따뜻한 시선으로 전 세계인들의 극찬을 이끌어냈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 ‘피에타’가 베니스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할 때, 이 영화는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을 받았다.
아름답거나 생명력이 있는 사람들은 우리를 성찰하게 만든다. 우리가 그들을 통해 되돌아보는 것은 다르지 않다. 그것은 아름다운 마음을 실천하고 나누며 사는 이타심이다. 이 단순하고도 평범한 가르침을 말하고 있는 영화가 바로 ‘앤젤스 셰어’다. 이 영화는 살면서 꼭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이 무엇이며, 어떤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야 하는지 자연스럽게 알려준다.
구제불능 청년들이 있다. 싸움질, 도둑질이나 하면서 사는 이 시대의 밑바닥 청춘들이다. 절도에 천부적인 소질이 있는 모, 기차역에서 난동을 피우는 ‘백치남’ 알버트, 술과 약물에 취해 공공기물을 파손하고 노상방뇨하는 라이노, 하는 일 없이 사고만 치다가 폭행죄로 고소당한 로비. 하나 같이 술 찌꺼기 같은 잉여의 삶을 살고 있다. 이 영화는 이들이 재판장에서 사회봉사 명령을 받고 사회봉사센터에서 만난 이후의 일상을 그린다.
겉으로만 보면 이들의 일상은 예전과 같이 한심하기 그지없다. 정신을 차리고 살아보려고 해도 주위에서 가만히 놔두지 않는다. 그래서 일상은 계속해서 진절머리 나게 반복되고, 반복된다. 하지만 이 영화는 이들의 일상을 따뜻한 시선으로 훑으면서 이들에게도 고민과 책임감 그리고 선의가 있다고 강변한다. 따뜻한 마음을 지닌 사회봉사센터 직원 ‘해리’를 통해 이들이 지닌 아름다운 심성을 발굴하면서, 우리 사회가 어떻게 하면 변하게 되는지 넌지시 얘기한다. 곧 이들의 문제가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낳은 문제이며, 한 사람의 소소한 노력이 타인의 미래를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 곰곰이 생각하게 만든다.
물론 그 바탕에는 거칠고, 모자라고, 투박한 일상에서 겪는 힘겨움을 긍정과 유머로 승화시킨 청춘들의 낙천적인 성격이 있다. 크게 욕심내지 않고 만족하는 마음, 자신들에게 희망을 준 해리에게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은 이 영화의 압권이자 반전이며, 이 영화가 관람객들에게 궁극적으로 전달하려는 메시지다. (이 부분을 보면 까치가 구렁이로부터 새끼를 구해준 나무꾼에게 은혜를 갚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어놓은 전래동화가 생각난다.)
이 영화는 자주 웃게 만든다. 등장인물들이 황당해서 웃고, 바보 같아서 웃고, 더러워서 웃는다. 전체적인 영화의 스토리도 코믹하게 구성돼 있다. 코믹영화의 전형을 그대로 보여준 것 같다. 하지만 이 영화를 코미디라고 얘기할 순 없다. 등장인물들이 폭행, 절도, 풍기문란 등으로 잡혀와 재판장에 선 장면부터 오크통에 담긴 위스키를 도둑질하는 장면까지 사뭇 진지한 가운데 웃음이 터진다. 그래서 그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
이 영화에서 ‘위스키 도둑질’을 부자들의 돈을 나눠 쓰는 것으로 관용하고, ‘앤젤스 셰어’라는 의미로 형상화시킨 감독의 탁월한 능력은 코미디 그 너머에 있다. 앤젤스 셰어(천사의 몫)란 오크통에서 위스키나 와인을 숙성시키는 과정에서 해마다 양이 2~3% 정도 자연 증발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 영화가 웃기게 들려주는 얘기는 거창하지도 특별하지도 않다. 소소한 일상에서 진실한 마음으로 자신과 타인을 위해 나누고 아끼며 사는 마음이야말로 불평스럽고 불만족스러운 현실을 가장 아름다운 삶으로 바꿔줄 선물이라는 것, 그리고 혼자서 즐기는 기쁨은 잠시 타오르다 꺼져버리는 순간의 쾌락에 불과하지만 타인과 함께 나누는 마음은 세상에서 가장 기쁘고 보람찬 행복을 만들어준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이 영화에서 느끼는 감동과 무관하게 술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특히 위스키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꼭 보길 권한다. 위스키가 무엇인지 조금이라도 궁금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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