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졸고 있다. 무기력하게 핸드폰을 만지작거린다. 무슨 고민이 있는지 멍하니 앞을 주시한다. 평범한 지하철 안 풍경이다. 하지만 아름다운 음악 소리가 적막을 깨는 순간 사람들은 달라진다. 사람들은 “뭐지?”, “누구지”라는 표정으로 눈을 휘둥그레 뜨고 주위를 살핀다.
한 남자가 바이올린을 켠다. 그리고 여러 사람들이 잇따라 가방에서 악기를 꺼내 연주에 동참한다. 지하철 안은 오케스트라 공연장으로 변하고, 어느새 사람들의 얼굴이 밝아진다. 웃음꽃이 핀다. 서로를 아는 듯 눈인사를 한다. 고개를 흔들며 음악을 타는 사람까지 있다.
10분도 채 되지 않은 ‘플래시몹’(flash mob)이 사람들을 기쁨의 도가니에 밀어 넣었다. 무기력한 사람들을 세상 걱정을 모르는 천진한 어린아이가 되도록 만들어버렸다.
‘플래시몹’은 플래시크라우드(flashcrowd)와 스마트몹(smart mob)의 합성어로, 하워드 라인골드의 책, ‘참여군중’(smart mob)에서 유래됐다. 플래시몹은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일시에 모여 똑같은 행동을 하다 사라지는 퍼포먼스다.
플래시몹은 2002년 미국 뉴욕에서 처음 시작됐다. 많은 사람들이 심야에 한 호텔 로비에 모여 15초 동안 요란하게 박수를 친 뒤 사라졌다. 이후 약속이라도 한 듯 세계 각국의 대도시에서 똑같은 플래시몹이 벌어졌고, 한국도 마찬가지였다. 그 힘은 무엇일까.
김태형 심리학자의 설명이다.
“일단은 재미있다는 이유도 있겠지만, 군중 혹은 집단의 힘과 에너지가 느껴져서인 듯하다. 예를 들면 음악에서의 합창, 무용에서의 군무, 월드컵 응원전 등에서 받게 되는 것과 유사한 감동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요즘과 같이 모든 개인들이 파편화돼 있는 사회에서 플래시몹은 조직이나 집단의 힘과 역동성을 느끼게 해주는 효과가 있다. 플래시몹이 주는 가장 중요한 심리적 효과는 비록 일시적이긴 하지만, 소속감과 연대감이다. 사람은 원래 공동체에 소속돼 이웃과 단결하고 협력하면서 살아갈 때 가장 큰 기쁨과 행복을 느끼는 사회적 존재다. 요즘처럼 모든 이들이 고독감에 시달리는 사회에서 사람들은 동호회나 팬카페 등을 통해서라도 일체감, 소속감, 연대감 등을 느끼려 한다. 이런 점에서 플래시몹은 참여자에게 주는 심리적 효과의 측면에서 볼 때 2008년 촛불시위의 축소판(비록 그 추구하는 목적이나 규모는 다르지만)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아마 한국사회에 공동체가 유지되고 있어서 사람들이 공동체나 조직을 통해 자기 권리를 표현하고 추구할 수 있었다면 플래시몹은 그다지 각광을 받지 못했다. 플래시몹의 긍정적인 측면은 나와 비슷한 생각, 목적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확인함으로써 고독감은 완화되는 반면 소속감, 연대감을 느끼는 것, 조직 혹은 집단의 힘을 확인함으로써 무력감을 일부 완화시켜주는 반면 집단에 대한 신뢰감을 강화하는 것, 집단행동을 하는 과정에서 조직성이나 규율성 등이 강화되는 것이다. 부정적인 측면은 플래시몹은 안정된 조직이나 공동체가 없는 익명의 군중이 벌이는 일회성 이벤트이므로 사회적 존재인 사람이 절실히 원하며 건강하고 안정적인 공동체를 통해서만 확보할 수 있는 소속감, 연대감, 통제감, 집단에 대한 신뢰감 등을 지속적으로 담보해줄 수 없다. 그래서 플래시몹은 공동체 혹은 조직에 대한 한국인들의 열망을 일시적으로 달래주는 역할밖에 하지 못하며, 플래시몹은 비록 집단행동이기는 하지만 안정적인 조직이나 공동체에 기반하지 않는, 개인주의에 기초한 소규모 집단행동이므로 사회발전의 에너지로 작용하기 힘들고 더 수준 높은 집단행동으로 발전하기도 힘들다. 안정된 조직에 의해 뒷받침되지 않은 2008년의 촛불항쟁이 흐지부지 끝나버렸듯이 공동체를 복원하려는 노력이 없는 플래시몹에의 매몰 그리고 플래쉬몹이 정치적 탄압을 면할 수 있는 탈정치적인 놀이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면 플래시몹은 한국인들의 정치적 각성과 공동체의 복원보다는 오히려 탈정치화와 개인주의를 강화하는 악영향을 미칠 위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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