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여행과 사색

부산 - 세월이 내려앉은 보수동 헌책방 골목

이동권 2022. 10. 2. 20:54

보수동 헌책방 골목

 

활자에 빠질수록 스스로 무지함을 알게 됐고, 자연스럽게 서점을 찾는 날이 많아졌다. 지식의 뿌리가 튼튼하게 내릴 수 있도록 서점에서 자양분을 얻어 왔다. 그러나 요즘은 사정이 다르다. 불안한 마음에 서점을 찾는 사람들이 늘었다. 뭐라도 공부하지 않으면 뒤처진다는 생각에 메몰 돼 버렸다. 뭔가 좀 까다롭고 어려운 세상이 됐다.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가을이다. 부산국제영화제에 들려 영화 삼매경을 계획 중이라면 ‘부산 보수동 헌책방 골목’을 찾아가 보자. 카메라를 들고 사진도 찍어보고, 멋진 골목길 계단에 앉아 차도 마시면서, 지식의 향연에 푹 빠져보자. 여행의 즐거움이라는 것이 특별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보수동 헌책방 골목


부산 보수동 헌책방 골목을 찾았다. 국제시장 뒷골목을 걷다 국제시장을 돌아나가면 헌책방 골목이 나타난다. 근처에는 먹을거리를 파는 상점이 아주 많다. 부꾸미와 씨앗호떡, 식혜와 과일꼬치를 손에 쥐고 찾아가면 금상첨화다.

좁은 골목으로 들어가면 헌책방들이 즐비하다. 책들이 쌓여있어 그런지 골목에는 책 냄새가 꽉 차있었고, 서점 안에는 쉽게 구할 수 없는 옛날 책들을 구하러 온 사람들로 인산인해다. 새 책도 비교적 싼 가격에 팔기 때문에 수험서를 사러 온 학부모와 학생들도 제법 눈에 띈다.

보수동 헌책방 골목은 한국전쟁 때 생겼다. 부산으로 피난 온 사람들이 국제시장 인근에 정착하고, 학생들에게 공부를 가르치는 공간이 이곳에 만들어지면서 헌책을 파는 상점들이 군집을 이루기 시작했다.

불과 40~50년 전만해도 책을 구하기가 참으로 어려웠다. 출판 산업 규모가 워낙 낙후한 데다 먹고사는 것마저도 힘들어 책을 사 보기가 힘들었다. 그 시절에는 수많은 지식인들과 학생들이 헌책방에서 책을 구했고, 헌책이라도 구하면 뛸 듯이 기뻐하며 공부했다.

부산 보수동 헌책방 골목은 낯설지만 아름다운 여운을 남겼다. 오래된 건물과 골목, 누렇게 바랜 책들과 책장, 귀퉁이에 녹이 슨 창문과 간판들, 높은 산동네까지 뻗은 계단과 갤러리를 연상시키는 벽화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옛날로 날아간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했다.

헌책방에는 숨겨진 보물들이 많았다. 고서들과 민속자료들, 오래된 출판사에서 출간된 책들, 각양각색의 이야기를 담은 문학 책들 할 것 없이 보통 서점에서는 구할 수 없는 책들로 가득했다. 특히 다양한 지식을 전달하는 인문학 책들과 싼 가격에 파는 이벤트 책들은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세상이 어지러울수록 인문학 책을 많이 봐야 한다. 책 만드는 편집자들도, 책을 쓰는 저자들도, 책을 읽는 독자들도 그래야 한다. 책은 우리 사회의 현실을 진단하고 개인과 국가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을 알려준다.

부산 보수동 헌책방 골목에서는 부산국제영화제 시기에 맞춰 ‘보수동 책방골목 축제’가 열린다. 2022년은 코로나19로 행사가 취소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