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리저리 몰아치는 차가운 바람이 말라버린 도시의 영혼을 울리며 짐승 같은 소리를 낸다. 하늘은 해를 감추고, 가릴 것 없는 앙상한 가로수들은 단조로운 황무지의 개미집처럼 쓸쓸함을 연출한다. 녹슨 철근에 덕지덕지 붙어있는 콘크리트 조각처럼 마음마저 얼어붙은 이 겨울에는 차라리 흰 눈이 내렸으면 좋겠다.
한겨울 눈을 기다리며 떠나는 빙어낚시. 고작 우리의 소멸이 아주 작은 자연의 일부일지라도 아름다운 사랑을 품고 떠난다. 삶이 얼마나 쉽게 부서지는지 알고 있기 때문에 하루하루의 삶을 소중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 집착할 필요도, 소유할 필요도 없다. 하늘이 구름을 바라보듯, 바람이 먼지와 섞이지 않듯 그대로 받아들이며 떠난다.
거짓말처럼 여로에 오르자마자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여전히 마음은 메마르고 손길은 황량하기 그지없다. 흰 눈은 소리 없이 차창에 녹아 부서지며 사랑과 인생을 생각하게 한다. 우리의 인생이 흩날리는 눈처럼 녹아 없어져 한 곳에 머물 수 없으니 뜨겁게 몸을 태워가며 살라고 말하는 것 같다.
여행은 아무리 작고 사소하더라도 기쁘고 즐겁다. 말없이 바라보고만 있어도 인생을 나누게 하고 자신을 비춰보게 한다. 떠들썩하게 살면서도 자신을 바라보는 아주 작은 모험마저도 외면해버리며 사는 이들에게 가끔은 홀로 떠나는 여행을 권한다. 치유의 근원도, 자신을 기쁨 속으로만 묶어두려 해서 숭고한 삶의 의미를 망쳐버리는 안일함도 스스로에게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자연으로 떠나는 사람들로 영동고속도로는 주차장이 됐다. 혼잡함을 피해 국도로 행로를 바꿔 자연의 품으로 돌아가는 길을 재촉해본다. 차창 밖으로 옹기종기 모여있는 오래된 시골 마을이 보인다. 찢어진 비닐하우스가 바람에 휘날리며 황량한 마음을 쓸어내린다. 마을 어귀에 정갈하게 일렬로 서서 눈을 맞추는 누렁이 가족이 건조하고 퇴색된 일상을 조금이나마 물리친다.
차창 밖은 이미 어둠이 내렸다. 초행길이라 지도보기를 수십 번, 저녁 식사 때에 맞춰 강원도 춘천에 도착했다. 지글지글 몸을 비틀어대는 해산물로 요기를 달래고는 긴긴밤 술과 담소로 삶의 여로를 달랜다.
술기운이 오전 잠을 부축일 무렵 길을 나섰다. 오봉산 넘어가는 고갯길마다 벌거벗은 대지 위에 동풍이 몰아친다. 차가운 산의 기운이 천지에 만발한 하얀 설화와 뒤엉키면서 여리고 멋없는 내 마음속에 그리운 이름을 휘갈긴다. 지난 것들이 모두 숨어 보이지 않는 세상, 내 어두운 마음도 감춰 새로이 듣고, 보고, 말할 수 있도록 하라고.
호수는 푸른빛이 감돌면서 얼었다. 빙어 낚시를 위해 직경 15~20센티미터로 얼음 구멍을 팠다. 춘천에서 화천으로 넘어가는 구비마다, 지형과 땅의 깊이에 따라 크고 작은 호수를 스스로 이루고 있다. 강원도의 겨울이 춥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단단하게 얼어붙을지 몰랐다. 대충 보아도 15센티는 넘게 얼었다. 구멍 안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마음은 비우고 볼 일이지만, 한 마리 잡기도 쉽지 않아 곤궁한 마음이 밀려온다.
빙어 미끼는 '구더기다. 빙어를 먹는다는 것은 구더기 먹는다는 말과 같다. 하지만 비위가 약하다는 사람도 빙어는 잘 먹는다. 눈에 보이지 않으면 된다는 게 그들의 반응이다.
빙어를 깨끗하게 먹으려면 빙어를 식초와 생수를 3:7로 섞은 물에 넣는다. 1분 정도 있으면 배에 있는 이물질을 토해내고 깨끗하게 씻긴다. 식초란 게 참 대단해서, 이상하게도 빙어들이 죽지 않는다. 이 빙어를 초고추장에 찍어 먹으면 비린내도 안 나고 정말 맛있다. 괜찮다면 식용유 1통을 준비해서 살짝 튀겨 먹어도 좋다.
화천의 강은 얼어붙었다. 그러나 고요한 물줄기를 계속 움직인다. 스스로 흐름이 되어 서서히 움직이다가, 잠겨 들다가, 인간에게 잘려나간 죽은 나무의 뿌리까지 적셔주고 보듬으며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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