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여행과 사색

율포해수욕장 - 수채화 같은 바다에서

이동권 2022. 9. 10. 15:42

율포해수욕장 앞바다 (득량만 청정해역)


청정한 빛이 감도는 바닷가 작은 마을은 삶의 욕망에 지쳐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푸른 심연을 보여준다. 바다에 내려앉은 회색 빛 구름 무리, 작은 목덜미 구부린 채 수평선을 향해 날아가는 갈매기, 갯바위에 붙어 작은 거품을 내뿜는 석화, 은빛 물고기를 실어 나르는 고깃배, 어민의 애환을 달래주는 청신한 바람 등 바다의 숭고한 생명력을 느끼게 하는 모든 것들이 잠시나마 명상의 시간을 선사한다.

욕망의 시선으로 세상을 살면 함께 껴안고 가야 할 모든 것들을 순수하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사물과 현상의 본질적인 모습을 볼 수 없으며, 자신의 잣대와 눈으로 삐뚤어진 열정을 불태우면서 나만 잘살면 된다고 생각한다. 결국 아름다운 것들을 사악하게 파멸시킨다. 우리는 탐하지 않아야 자연의 일부가 되고 아름답게 변할 수 있다. 나는 해변가 모래밭에 눈목(目)자를 여러 개 썼다. 바다가 물어다 주는 파도에 내 영혼의 눈을 깨끗하게 씻어달라고.

율포해수욕장은 천혜의 자연이 서로 몸 부대끼며 남도 특유의 아름다움을 연출하는 곳이다. 꾸미지 않았지만 부족한 것이 없으며, 피서지로서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편하게 위로받고 휴식할 수 있으며, 온정이 넘치지만 각박한 삶 또한 엿보이며, 특별히 무엇이 아름다운지 얘기할 수는 없지만 신묘하게 서로 어울려 여행의 참 맛을 느끼게 하는 곳이다.

율포해수욕장은 반세기를 살아온 거대한 소나무 숲이 빙 둘러싸고 있다. 무공해 청정해역 득량만 바다를 마주 보며 사랑을 속삭이는 것 같다. 곳곳엔 국민관광지답게 아기자기한 편의시설과 야영장, 전망대, 녹차 온천 등이 가족단위나 연인, 친구들과 함께 온 여행객들의 발길을 붙잡기 충분하다.

 

피로를 풀 겸 녹차 온천장에 갔다. 녹차 온천장에 들어가면 녹차 잎을 끓인 녹차탕과 해수탕이 있다. 물은 깨끗하고 보드라워 여독을 확실히 풀어준다. 한 쪽 벽면은 해수욕장 전경이 내려다보이는 대형 유리로 돼있다. 안에서는 밖이 보이지만 밖에서는 안이 보이지 않는다. 벌거벗은 몸을 감출 필요는 없다.

 

막 잡히기 시작한 질 좋은 전어회도 먹었다. 특유의 감칠맛과 신선함이 느껴져 입안이 즐거웠다. 가을철에 율포해수욕장에 들리면 꼭 먹어보길 권한다. 밥을 시키면 회를 비벼 먹을 수 있도록 비빔밥 그릇과 참기름을 준다.

욕망의 이름을 벗어던지고 바다를 바라본다. 단 한순간만이라도 마음을 놓고 바다를 바라본다. 바다를 바라보면서도 바다를 보지 못하거나 온갖 세상의 근심과 욕망을 떠올리는 사람들에게는 바다는 그저 깨끗하거나 더럽게만 보일 뿐이다. 반면 바라거나 탐하는 마음 없이 바다를 바라보는 사람들에게는 푸른 심연과 이상향의 대지가 보인다. 그때야 비로소 바다는 우리에게 바다요, 자연이며, 아름다운 영혼이 된다. 인간 관계도 마찬가지다. 욕망의 대상, 이용의 대상, 끊임없는 갈구의 대상으로 바라보면 상대가 인간으로 보이지 않고 욕망의 거미줄 속에 득실거리는 벌레로 보인다. 나는 벌레가 되기 싫다. 또한 거미줄도 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내 마음의 눈이 아름다워질 때까지 많이 부끄러워하며 살 것이다. 불순한 욕망이 없는 열정으로 수채화 같은 영혼을 간직한 바다 앞에서 이상향의 날개를 편다. 내 인생이 끝나는 날까지.

 

율포해수욕장 방파제 - 이곳에 가을철의 별미인 산 전어와 각종 해산물이 들어온다. 배가 들어오는 시간을 잘 맞추면 도매가로 직접 살 수도 있다.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율포해수욕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