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생각나무

보험설계사 구인난, 보험설계사는 합법적인 다단계 판매원일까?

이동권 2022. 9. 30. 15:28

(좀 옛날 얘기고, 시스템이 많이 달라졌을 테지만) 어느 매체에서도 말하지 않는 얘기를 해보려고 한다. ‘보험설계사’의 세계다. 억대 연봉을 받는 보험맨들은 뉴스에 종종 등장해 잘 알겠지만 ‘피고름’을 짜내는 그 바닥 이야기는 무척 생소할 듯싶다.

보험의 꽃은 ‘보험설계사’이다. 이들은 보험업계가 단순한 보장성 보험을 뛰어넘어 첨단 종합금융 산업으로 발전하는데 견인차 역할을 한 ‘숨은 공신’이다.


보험설계사들은 오늘도 발바닥이 닳도록 현장을 누비며 ‘억대 연봉’을 꿈꾸고 있을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보험설계사 가운데 ‘억대 연봉 클럽’에 가입돼 있는 사람은 5천6백여 명에 이른다.

최근 대졸 남성들이 보험업계에 몰리고 있다. 각종 금융상품을 결합한 보험을 판매하려는 고학력 전문가들의 입성이 활발하다. ‘인구 10명당 생명보험 가입자 7명’, ‘수입보험료 기준 세계 6위’라는 수식어에 걸맞게 보험 산업은 외적으로 크게 성장했지만 내용적인 면에서는 많이 낙후돼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들은 앞으로 선진 보험시스템이 정착되면 보험설계사가 전문가로서의 위상을 떨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하지만 보험업계는 인력난을 호소한다. 판매실적이 뛰어난 보험설계사들을 스카우트하려는 전쟁도 벌어진다. 보험업계의 구인난은 보험설계사의 현실을 살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보험사들은 별도의 채용공고와 소개를 통해 교육생들을 모집한다. 교육기간은 회사에 따라 1개월에서 3개월 정도이며, 교육이 끝나면 보험협회에서 주관하는 자격시험을 치른다. 물론 합격하면 보험설계사로 일할 수 있다. 하지만 교육 중에 많은 사람이 그만둔다. 

 

M사에서 근무하는 K씨는 “교육을 마치고 보험설계사가 되는 사람은 한두 명에 지나지 않을 정도로 중간에 포기하는 사람이 많다”면서 “교육이 아침 7시부터 밤 10시까지 쉴 새 없이 이뤄지는 것도 ‘다른 생각할 겨를 없이 바쁜 생활을 유도’하는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억대 연봉을 꿈꿨던 이들이 교육을 마치기도 전에 그만두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외국계 보험사에 근무하는 보험설계사는 월급이 없다. ‘활동비라도 나오겠지’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10원짜리 한 개도 주지 않는다. 보험설계사는 법적으로 보험사에 직접 고용되지 않은 개인 사업자로서 보험 계약에 따라 수당을 받는다. 따라서 단 한 건의 계약도 성사되지 않으면 단 한 푼의 돈도 받을 수 없다. 쪽박 차기 십상이다.

계약 후 정해진 기간 동안 가입자가 보험금을 내지 않으면 받았던 수당도 반납해야 한다. 가입자가 돈을 내지 않으면 보험 가입 후 보험설계사가 가입자 대신 미리 보험금을 내주는 경우가 있는데, 이러한 손해를 막기 위해서다. 해지 압박에서 벗어나는 시점은 회사별로 천차만별이다. 보통 가입자들이 6개월에서 1년 이상 보험료를 부어야 자유로워질 수 있다.

국내 보험사는 설계사들에게 쥐꼬리만큼이긴 하지만 일정한 기본금을 준다. 그러나 함정이 있다. 강제는 아니지만 할당량을 채워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직장을 떠날 준비를 하는 게 좋다. S사에 근무하는 한 보험설계사는 인터뷰를 거절했지만 “영업 압박은 장난이 아니”라고 말했다.

각종 활동비도 모두 개인부담이다. 버스를 타고, 고객을 만나 차를 마시고, 선물을 준비하는 것도 회사로부터 지원받지 못한다. 자기 호주머니를 털어야 한다.

한 주에 3건 정도 계약을 성사하면 일 잘하는 보험설계사로 인정받으며 회사에서 정해놓은 실적을 돌파하면 매니저가 될 수 있다. 매니저는 자유롭게 보험설계사를 채용할 수 있으며, 자신이 관리하는 보험설계사가 계약을 성사하면 일정 금액의 커미션을 받는다.


유능한 보험설계사들은 매니저가 되지 않으려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 영업의 한계를 느끼고 매니저가 되며, 실적이 좋지 않은 경우에는 직업을 바꾼다. 또 매니저들은 지점장이 될 수 있다. 지점장이 되면 연봉은 천정부지다. 보험설계사가 계약한 보험은 그렇게 쪼개져 매니저, 지점장, 회사로 흘러들어 간다.

I사에서 근무하는 보험설계사에게 이러한 사정을 물어보기 위해 전화를 시도했지만 “자기들끼리 쉬쉬하는 내용이기 때문에 인터뷰를 하려면 전직자를 찾는 게 나을 것”이라고 거절했다.

그럼 다단계 판매가 무엇인지 알아보자.


다단계는 개인사업자인 판매원들이 회사의 물건을 구입해 파는 형식이다. 그리고 자기 밑에 판매 조직원을 운영하고 그 수입의 일부를 커미션으로 받는다. 이중의 일부는 바로 위 관리자에게 돌아가고 마지막으로는 본부 총수에게까지 간다. 다단계 판매원들이 구입한 상품의 수익은 모두 회사의 것이다.

판매 조직원을 많이 거느릴수록 조직 내 상위그룹으로 승진해간다. 때문에 판매원들은 하위 조직을 늘리기 위해 노력한다. 이런 판매 방식은 이론상 그럴듯하지만 말단 판매원에게 재고가 누적되고 금전적인 손해가 많아 적잖은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다.


이젠 보험설계사와 다단계 판매원을 비교해서 생각해보자.

보험설계사들은 다단계 판매원처럼 물건을 구입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상품 재고가 누적되거나 금전적인 손해는 없다. 하지만 월급도 없이 회사의 상품을 팔고 수수료를 받는 개인사업자라는 점은 똑같다. 활동비도 개인 부담이다. 또 매니저가 하위 조직원을 거느리며 수당을 받는 시스템도 서로 유사하다. 밑에 능력 있는 하위 조직을 많이 거느릴수록 수입은 늘어난다. 보험설계사와 다단계 판매원은 정말 비슷하지 않은가.


K씨는 이러한 지적에 대해 “가족이 없으니까 괜찮다”는 반응이다. 가족이 있으면 수입이 불안하기 때문에 어려움이 많다는 것. 하지만 간곡한 당부도 잊지 않는다. 그는 “보험설계사를 시작하기 전에 자기가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인지 그것을 고민해야 한다”면서 “불합리한 측면도 있지만 자신이 선택한 상황에서 무작정 보험회사를 손가락질할 수도 없지 않느냐”고 강조한다.


마지막 K씨의 말이 의미심장하다.


“보험설계사들 중에 보험에 들지 않는 사람이 많아요.”


참으로 아이러니한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