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내가 만난 사람

홍준철 교수 '음악이 있는 마을' 상임지휘자 - 당신이 BBC특파원이에요?

이동권 2022. 9. 22. 19:14

홍준철 교수, 음악이 있는 마을 상임지휘자


서양음악에 매몰된 음악계에 훈훈한 바람을 불어넣고 있는 <음악이 있는 마을>의 홍준철 상임 지휘자를 성공회성당에서 만났다. 

호박색 같은 광택이 은은하게 풍긴다. 예술가에게 느껴지는 첫인상도 남다르지만, 음악가들에게는 독특한 특징이 있다. 아무리 빳빳해 보이는 사람들도 음악을 들으면, 음악 얘기가 나오면 얼굴 표정이 놀라울 정도로 감미롭게 찌그러진다는 사실이다. 

"가끔 기자들에게 물어요. 당신이 BBC 특파원이냐고. 서양 공연 소개할 때는 거품을 물고 내주면서 한국 공연은 아예 다루지 않거든요. 가까운 일본만 해도 자국의 공연에 대해서는 작게나마 내줍니다. 자국의 문화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자는 의식이 있는 거죠."

홍교수의 표정이 잠시 무뚝뚝해진다. '한국 신문기자들 생각 좀 하고 살아라'라고 호통치는 것 같다. 한국 사람들은 너무나도 '밖의 문화'를 좋아한다. 굳이 자세하게 설명하자면 '서양문화'다. 이 바닥에서 아는 사람들끼리의 대화에서도 서양의 음악과 공연에 더욱 많은 관심을 보인다. 나도 그러한 점은 반성이 된다.

한국 음악계의 잔잔한 변화를 이끌어 온 <음악이 있는 마을>이 만들어진 것도 홍 교수의 답답함에서 기인한다. 왜 우리 음악을 세계적으로 만들어가는 데 무심하느냐는 것이다.

"우리 음악은 서양음악에 종속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것도 바로크에서 낭만까지 약 200여 년에 집착하고 있지요. 자기 나라의 음악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데, 늘 수용자의 입장에서 음악을 보고 있습니다. 가끔 이러한 의견을 피력하다 보니, '당신은 실천은 없고 말만 하느냐'라는 얘기가 흘러나왔습니다. 그래서 <음악이 있는 마을>을 만들게 됐습니다. 우리 음악을 중점적으로 개발해서 나중에는 서양으로 진출하자는 의도였죠. 서양음악을 무시할 수 없지만 전부인 양 생각하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음악의 한 부분일 뿐이에요. 아시아, 남미, 동구권, 소수민족 등등 너무나도 좋은 음악이 많습니다."

수많은 단원이 <음악이 있는 마을>을 거쳐갔다. 이동률이 꽤 높은 편이다. 마음은 음악을 하고 싶지만, 먹고사는 일로 시간 내기가 힘들어 그만두는 까닭이다. 그래서 홍교수는 새로운 단원을 구하기 힘들다고 성토한다. IMF 때에도 이렇지 않았는데 점점 사람들이 시간 내기를 어려워한다는 것. 그는 "내부적으로 매력을 상실했는지 따져봐도 그런 결함은 찾기 힘들었다"면서 "먹고 살기가 더 어려워졌기 때문"이라고 판단했다.

<음악이 있는 마을>에는 아무나 들어갈 수 있다. 하지만 일정한 음악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오디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아마추어 합창단이라고는 하지만 음악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 게 홍 교수의 단언이다.

그래서인지 여러가지 어려운 일들이 많다. 주로 시간이 문제이다. 홍 교수도 일일이 설명하지 않았지만 '만만치 않다'는 듯 고개를 설레설레 흔든다. 직장 생활 때문에 힘들 것이라고 이해하면서도 못내 아쉬운 표정이 역력하다.

"음악에 뜻이 있어서 성가대나 학교에서 활동했던 분들이 많이 들어옵니다. 본격적으로 음악을 해보자는 심사지요. 하지만 음악을 전공하지 않았기 때문에 전문합창단에는 들어갈 수 없어 <음악이 있는 마을>을 찾습니다. 그러나 다른 직업에 다니고 있기 때문에 1주일에 2번 만나 연습하는 것부터 무척 힘듭니다. 먹고사는 문제가 우선순위이죠. 선천적으로 음악성은 있지만 악보를 잘 보지 못하는 분들도 있고, 연습을 하면서도 머릿속에 직장, 가정 문제 등 딴생각을 하고 있어 몰입하기가 힘듭니다. 그런 분위기를 음악적으로 바꾸기가 여간 어렵지 않아요......"

홍준철 교수는 <음악이 있는 마을>에 목숨을 걸었다. 서양 음악에 메몰 된 음악계의 새로운 변화를 이끌어가겠다는 것. 그는 또 <음악이 있는 마을>이 한국 음악계에 영향을 미치고 음악계가 나아가는 방향을 수정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는 그 연장선상에서 후학들도 가르치고 있다.

그는 "이름값 때문에 외국합창단에 밀리는 측면도 있지만, 실력이 딸리지는 않는다"면서 "저도 몇몇 공연에 가봤지만, 저희들보다 낫지 않다"고 말했다.

그의 포부는 매우 당차다. <음악이 있는 마을>을 세계적인 합창단으로 만들어가겠다고.

<음악이 있는 마을>은 초대권 없는 공연으로 유명하다. 올 테면 오고, 말 테면 말라는 식이다. 그러면서도 다른 공연에 비해 객석 점유율은 뒤떨어지지 않는다.

"공연도 양극화되고 있습니다. 40~50만 원 하는 외국 공연이나, 아예 아마추어들의 공연은 그럭저럭 잘 되는 편이지만, 저희들처럼 중간 정도의 레벨에 있는 공연은 거의 사람들이 찾아오지 않죠. 그래서 마음을 비웠습니다. 오려면 오겠지라는 심정이죠. 실제 공연에서 관객의 15~30% 정도만 공연 수익으로 보시면 됩니다. 다 초대권이죠. 저희 공연은 객석 점유율 50% 정도로 보시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