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내가 만난 사람

이병근 문예창착단 들꽃 대표 - 실력있는 '춤꾼'으로 거듭난다

이동권 2022. 9. 21. 01:34

문예창착단 들꽃


2002년 문예창작단 '들꽃'은 탄생했다. 거리에는 현란한 예술과 자본의 유혹이 출렁였지만 이들은 젊음의 축포를 뒤로 한 채 민중 속으로 뛰어 들어가 뜨겁게 몸을 불살랐다. 포항 포스코, 하이텍알시디코리아, 코오롱, 구미 오리온 등등 온갖 집회현장을 누비면서 힘찬 율동으로 기세를 드높였다.

이병근 문예창착단 들꽃 대표. 진지한 가운데에서도 표정은 무척 장난스럽다. 춤을 추는 사람이어서인지 말보다도 행동이 더욱 크고 활달하다. 그보다도 더 말수단이 좋은 단원이 있다. 바로 문미니  단원이다. 문예창작단 들꽃의 대외적인 일을 도맡아 하며, 대본을 쓰고 기획하는 일을 주로 한다. 김경범 단원은 표정이 예술이다. 능글능글하게 화제도 잘 만든다. 다재다능하며 그림을 그리듯 춤을 이미지화하는데 탁월한 솜씨를 가지고 있다. 박성철 단원은 들꽃에 합류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조용한 편이다. 아니, 원래 성격도 그런 것 같다. 그래도 할 말은 꼭 하고 야무진 구석이 있다. 박대선 단원은 음악을 담당한다. 절대음감이라는 애칭이 따라다닐 만큼 귀가 밝고 예민하다. 피아노를 주로 치며, 가끔 작곡도 하지만, 아직까지는 겉으로 내보인 곡은 없다.

문예창작단 들꽃의 애환은 '김밥'에서부터 시작한다. 집회가 보통 2시에서 3시 정도에 시작하면 점심을 먹을 수도, 안 먹을 수도 없어 난감하다. 맥주 한 잔만 마셔도 몸이 무거워 춤을 추기가 어렵기 때문에 공연을 시작하기 전에는 충분한 음식을 섭취하지 못하고 무대에 오른다. 이들은 하는 수 없이 오늘도 김밥 한 줄로 허기를 달랜다.

이 뿐인가. 지금이야 할부금도 없는 승합차를 가지고 있지만, 예전에는 앞 유리가 깨진 트럭을 몰고 다녀야만 했다. 한 번은 경범 씨 집에 들렀다가 어머니께 인사드리고 차에 탔는데, 시동이 걸리지 않아 난감하기도 했다. 어머니께서는 아들이 들꽃에서 춤추는 일을 반기지 않았기에, 한심하고 당혹한 표정으로 이들을 지켜보았다고 한다.
어찌 됐던 시동을 켰다. 이 대표는 "신문지에 불을 붙이고 살살 녹이면 시동이 잘 걸린다"고 재밌게 얘기한다.

무대 위의 모습과 현실의 모습이 너무 달라서 애정전선에도 문제가 많다.

"무대에서 공연하는 모습을 보면 강인하고 멋져 보입니다. 하지만 무대에서 내려오면 평범한 사람에 불과하죠. 무대에 선 저를 보고 좋아하는 여자들도 있었지만, 여러 가지 현실적인 일들로 고민하는 제 모습을 보고는 떠나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들꽃은 계속 향기를 만들면서 들판을 가득 채워간다. 민중의 기억 속에 남는 예술 단체로 남겠다는 포부다. 이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꾹 참고 자신의 길을 걸어갈 것이다. 

들꽃 멤버들은 개성이 강하다. 때문에 서로 의견이 엇갈릴 때는 큰 소리도 오고 간다. 그렇지만 한번 결정한 일은 그대로 밀고 나간다. 또 아무렇지도 않은 일에 싸우는 경우도 있고, 큰 일인데도 별 무리 없이 의견 일치를 보는 경우도 있다. 아무튼 좀 독특하다. 그러나 이제까지 있었던 수많은 공연 중에서 멤버들이 가장 기억 속에 담고 있는 공연은 비슷했다. 서로 다른 것 같지만 한 곳을 지향하며 달려가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이병근 대표는 부산에서 있었던 공연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김주익 열사가 크레인에 올라가서 손을 흔들어준지가 엊그제 같은데 갑자기 돌아가셨다는 소식이 들려왔죠. 처음에는 믿기지 않았습니다. 부산에 도착해서 한진중공업에 가보니까 사람들이 상복을 입고 있더군요. 그때서야 실감이 났습니다. 정말 가슴이 메어지는 줄 알았지요. 폭설이 와서 한때 경부고속도로가 막힌 적도 있었는데, 하는 수 없이 다른 고속도로를 타고 울산에 내려가게 됐습니다. 차로 스키를 타야 했던 여행길이 공연보다 더욱 기억에 많은 날이었습니다."

김경범 단원은 "문득 포항 포스코 투쟁에서 돌아가신 하중근 열사가 생각난다"면서 "병원 앞에서 공연을 하기도 했지만, 많은 사람들과 함께 있다는 것이 더욱 좋았다"고 말했다.

이병근 대표는 "초기에 문예창작단 들꽃을 만들고 독자적인 활동을 시작하면서 '팀의 정체성'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흘러나온 적도 있었다"면서 가슴앓이했던 과거를 회상했다. 내가 지금은 어떠냐고 묻자 그는 "어떤 얘기가 나와도 '그런가 보다'하고 넘긴다"며 웃어버렸다. 

문예창작단 들꽃도 세월이 흐를수록 여유와 연륜이 쌓여가는 것이 보인다. 하지만 아직 세상 물정에는 그다지 밝아 보이지 않는다. 수수께끼처럼 또 다른 답을 내밀면서 두 눈을 번득이고 있는 것이 세상이다. 마룻바닥에 쥐구멍을 모두 막아버리면 새로운 구멍이 난다. 불만과 불평 때문에 힘들어하기보다는 감싸 안으면 좋을 것 같다.

 

들꽃의 활동은 2022년에도 여전하다. 이병근 대표나 단원들이 무대에 선 사진도 보이고, 카페도 운영된다. 언제 다시 한 번 만나보러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