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내가 만난 사람

장형윤 감독 - 잘 만들면 관객 반드시 모인다

이동권 2022. 9. 21. 22:00

장형윤 감독


사무실 안은 조용했다. 모두 자신의 일에 열중하고 있었다. 어떤 친구는 연필을 들고 배경 스케치에 여념이 없었다. 어떤 친구는 3D 쉐이프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자리를 잡았고, 또 어떤 친구는 스캔받은 이미지에 인물 윤곽을 힘차게 그려 나갔다. 숨소리마저 고요하다.

세계 4대 애니메이션 축제 중 하나인 일본 히로시마 애니영화제에서 장형윤 감독의 '아빠가 필요해'가 '그랑프리' 다음에 해당하는 2등상 '히로시마'상을 받았다. 말이 2등상이지, 실제 '히로미마'상은 사랑과 평화를 기원하는 이 영화제의 정신이 숨 쉬고 있는 상이어서 그 의미는 매우 깊다. 상금도 '그랑프리'와 같다.

장형윤 감독의 '아빠가 필요해'는 여섯 살 여자아이의 아버지가 된 늑대 소설가의 이야기이다. 이 작품은 작년 대한민국 애니메이션 대상 특별상과 도쿄 국제 애니페어 작품상도 수상한 바 있다. 

장형윤 감독을 만났다. 힘겨운 여건 속에서도 애니메이션이라는 어려운 길을 가고 있는 그가 자랑스러웠다. 세계 시장, 아니 한국 시장에서만 보더라도 우리나라의 애니메이션은 겨우 낙제점을 면할 정도로 낙후되어 있는 상황이 아닌가. 세간의 기대를 모았던 '아치와 씨팍'도 흥행에 실패해, 장편 애니메이션에 대한 차기작 지원금은 더 이상 없을지도 모른다.

"고등학교 때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직장에 취직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대학에 들어가 보니까 '뭘 해야, 인생의 후회가 없을까' 고민을 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좋아하는 것을 해야겠다고 결정하고 대학교 1학년 때 애니메이션을 시작했습니다. 정말 너무 힘들더군요. 군대에 들어가서 다시 제대할 때가 되자 '사회에 나가서 뭘 할까'고민하다 결국 애니메이션을 또 하게 됐습니다."

장형윤 감독에게 있어 애니메이션은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의 손짓이 분명했다. 

애니메이션은 그림을 필름처럼 이어 붙여 만든 영화이다. 노동력도 만만치 않아서 웬만한 끈기와 노력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게다가 예술적인 감각도 있어야 한다. 캐릭터 하나를 만들기 위해 수천 장을 스케치한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이다.

"애니메이션 작업은 거대한 벽면에 십자수를 놓거나 뜨개질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실사 영화에서는 배우가 움직이지만, 애니메이션은 일일이 한 컷씩 그려야 합니다. 작업 속도도 느린 데다, 아무리 멋있는 그림도 조금 동작을 달리해 반복해서 그려야 합니다. 단순한 작업이 주는 과로와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3D 컴퓨터 작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이 하나하나 이미지를 구성하고 조정해줘야 하기 때문에 노동력이 많이 들어갑니다."

장형윤 감독이 운영하는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이름은 '지금이 아니면 안 돼'다. 사무실 이름이 참으로 독특하다. '지금이 아니면 안 돼'라니.

 

장 감독은 "하루하루 전망이 보이지 않을 때는 다른 일을 하고 싶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면서 "지금 하지 않으면 후회할 일이 생길지 모르기 때문에 이왕 결정한 일, 최선을 다하자는 의미에서 '지금이 아니면 안 돼'라는 이름을 지었다"고 말했다.

한국 영화가 천만 관객을 동원했다는 사실은 이제 특별한 뉴스가 아니다. 그러나 장편 애니메이션 영화는 관객들에게 외면당했다. 애니메이션 판에서도 훌륭한 영화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 '아치와 씨팍'도 흥행에서는 참패하고 말았다. 이것이 바로 한국 애니메이션의 현실이다. 장 감독은 그 원인을 어디에서 찾고 있을까.

"문제는 애니메이션의 질입니다. 국내 관객들은 잘 웃어주고, 애니메이션에 대해서도 매우 호의적입니다.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는 사람들이 더욱 작품을 잘 만든다면 관객들은 반드시 모입니다."

마지막으로 그의 바람을 들어보자.

"애니메이션을 아이들만 보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어른들이 보기에도 훌륭한 작품이 많습니다. 한국 애니메이션에 많은 관심을 가져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