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내가 만난 사람

이마리오 서울영상집단 감독 - 죽는 날까지 영화 만든다

이동권 2022. 9. 21. 00:59

서울영상집단 이마리오 감독


이마리오 감독은 머리를 길게 길어 묶었다. 머리를 길게 이유는 3~4일에 한 번씩 머리를 감아도 태가 안 나기 때문이다. 그 이유가 전부는 아닐 것이다. 생각해보면 작업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신경 쓸 일을 없앨 의도일 수도 있고 아니면 예술가로서의 열정이나 개인적인 스타일일 수도 있다

이마리오 감독은 서울영상집단에서 다큐멘터리를 제작한다. 다큐멘터리는 사실을 전달하는 것을 넘어 자신의 '메시지'를 정확하게 표현해야 한다. 그래서 발품도 많이 팔아야 하고, 사색도 깊어야 한다. 다양한 각도에서 문제에 접근하고, 왜 이러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설명을 해주어야만 관객들은 감동을 받을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비춰본다면 서울영상집단의 작업의 다큐멘터리는 훌륭하다. 많은 작품을 보지는 못했지만, <불타는 필름연대기>, <192-399:더불어사는 집 이야기> 등의 작품을 보면서 정말 홀딱 반했다.

이마리오 감독은 "서울영상집단에서 활동하는 감독 3명은 서로 공생하는 관계"라고 말했다. 마땅하게 일을 도와줄 사람도 찾기 힘들고, 사람을 충원하고 싶어도 개인 작업이 많은 요즘에는 사람 구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 때문에 이들은 서로가 없어서는 안 될 동지적인 관계로 지내며 서로에게 도움을 준다.

"서울영상집단은 처음부터 다큐멘터리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1990년에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많은 분들이 활동했었죠. 본격적으로 서울영상집단이 사람들의 관심을 모은 것은 1995년 김영삼 정권 시절 농어촌 통폐합 정책에 반대하는 두밀리 마을 주민의 투쟁을 담은 다큐멘터리였습니다. 이 당시에 저는 참여하지 못했지만, 2000년 이후에 두밀리 아이들이 어떻게 변하고, 이 싸움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살펴보는 영상작업에는 참여했습니다. 주민들은 결과는 패했지만, 과정은 이긴 것이라는 말을 하더라고요. 이 얘기를 들으면서 그 과정에 서울영상집단이 있었다는 것이 뿌듯하더라고요"

서울영상집단은 사무실 운영비와 최소한의 활동비만을 지출한다. 다큐멘터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자비를 털어야 하며, 돈이 없으면 아르바이트라도 불사해야 한다. 이마리오 감독도 한겨레 신문 아카데미에서 영상을 강의해 경비를 벌고 있는 형편이다. 이런 상태가 계속된다면 다큐멘터리 작업을 이어나가기가 힘들 것만 같다. 그러나 그의 꿈은, 서울영상집단의 꿈은 강하고 원대했다. 네덜란드의 저명한 다큐멘터리 작가, '요리스 이벤스'와 같이 죽는 날까지 작품활동을 하고 싶다는 것. 요리스 이벤스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다큐멘터리 감독으로서, 스페인 내전과 중일 전쟁, 베트남전과 남미 혁명 등을 쫓아다니면서 놀라운 행적을 남겼다.

"저명한 네덜란드의 작가 요리스 이벤스가 60세 넘어서 만든 작품을 보고 크게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의 작품은 여러 나라에서 벌어진 혁명의 현장을 기록한 영상입니다. 그처럼 죽기 전까지 포기하지 않고 다큐멘터리 작업을 계속하고 싶습니다. 외국에서는 20~30년대부터 다큐멘터리를 만들었지만, 한국에서는 '상계동올림픽'이 처음입니다. 20년도 안됐습니다. 그만큼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힘들고, 우리나라의 현실에서는 더욱 어려운 작업입니다. 충무로 시장과는 본질적으로 다르죠"

영화계에서 일하는 사람들과는 만나면 맨날 술이라는 이마리오 감독. 반전 평화에 고민이 많았던 그는 2003년 베트남 학살 문제 담은 다큐멘터리 '미친 시간'을 연출했다. 이 영화는 베트남 전쟁에서 한국군에게 희생당한 민간인들을 기록한 필름. 이 감독은 영화 '미친 시간'에서 전쟁으로 인해 가슴 아픈 사연을 간직하며 살고 있는 생존자들과 끔찍한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역사의 현장을 담아내면서 요즘에도 그치지 않고 벌어지고 있는 전쟁의 참혹함을 고발한 바 있다.

"전쟁, 전장의 개념이 한국 사람들에게는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지각하지 못하는 사이에도 전쟁은 계속 일어나고 있습니다. 예비군 훈련, 자이툰 부대 이라크 파병 등을 보아도 은연중에 우리 사회는 전쟁을 준비시키고 있는 것이나 다름 아니죠. 독립영화나 다큐멘터리에 관심을 가져주세요. 다큐멘터리를 통해 감독과 등장인물들과 관객들이 서로 의사소통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세상이 좀 밝아지지 않겠어요."

 

서울영상집단은 최근 서울을 벗어나서 지방도시로 거처를 옮겼다. 이익 집단화된 한국독립영화협회(한독협)에서 탈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