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내가 만난 사람

황혜신 조각가 - 당신에게 아이란 무엇이냐?

이동권 2022. 9. 14. 21:34

황혜신 조각가 ⓒ정택용


아이들의 슬픈 울음소리가 공기 중에 퍼진다. 투명한 유리창을 타고 흘러내리는 가랑비처럼 귓가에 아른거린다. 숨이 막혀 졸도할 정도로 어둡고 침울하다. 어찌나 선명하고 검게 물들었는지 환상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곧 있으면 조명에 비친 아이들의 이마와 눈과 입술이 염산에 녹아내릴 것만 같다.

제각기 사연을 담고 있는 아이들은 피곤에 지친 모습으로 세상과 맞서고 있다. 어둠 속에서도 제 갈 길을 찾아가는 야행성 동물처럼 강인한 생명력으로 번쩍인다. 하지만 아이들은 거세게 밀려오는 급류에 휘말린 듯 어디론가 쓸려가 버린다. 손을 잡아달라고 손을 뻗쳐도 어느 누구 하나 잡아주는 사람이 없다. 차갑고 냉소적인 세상에서 더 이상 이 가엾은 아이들의 마음을 위로해 줄 사람이 없는 것이다.

"발육이 좋아져 어른만큼 키가 자란 아이들이 가끔 화장실이나 골목 어귀에서 떼 지어 모여 있는 것을 보면 가슴이 덜컹해집니다. 책임감보다 즉흥적이고 폭력적인 아이들, 각종 청소년 범죄 소식들은 아이들의 모습을 두려움의 대상으로 바꿔 놓았습니다. 아마 그들의 눈에 어른들은 비겁하고 나약하며 돈으로 세상을 살아가려는 존재들로 보일 것입니다. 그런 아이들에게 어른들의 충고가 귀에 들어올 리 없습니다. 앞만 보고 걸어라, 낯선 사람과 말하지 말고 그들을 믿지 마라, 그렇게 가르친 것은 어른들이 아니었습니까. 어른들의 세계보다 아이들을 위한 세계를 경험하도록 해줘야 합니다. 자신이 살아온 것이 힘들었기 때문에 사회에 뒤떨어지지 않게 가르치고 키우려는 부모님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이런 교육은 아이들을 더 각박하고 힘든 세상으로 밀어 넣는 것입니다. 저도 작업하면서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곤 했는데, 아이가 많이 힘들어하더라고요. 힘들더라도, 아이들의 손을 더욱 따뜻하게 잡아주고,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으면 합니다"

FRP에 채색, 오브제 145×150×80cm 2006 ⓒ정택용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입장에서, 아이들의 상처를 주제로 한 작품을 만드는 게 고통스러웠으리라.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은 더욱 설득력이 있고, 아이들에 대한 고민도 매우 현실적이었다.

"작품을 만들면서 얼굴만 봐도 저 아이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있도록 표정에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아이들을 키울 때도, 내려보면서 강요하고 명령하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우리의 미래를 짊어질 소중한 존재이니까, 소중하게 대해야죠."

타인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못하고 사는 세상이 됐다. 요동치는 생명의 소리를 듣고, 그것에 한결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가치보다 '물질'이 중요한 세상이 된 것이다. 사랑과 이해로 삶의 날카로움을 정화시키고, 그 고귀한 소생의 의미를 실천해가는 모습도 보기 드물다. 이러한 원인은 무엇일까. 바로 어린 시절부터 어른들의 가치관을 주입당했기 때문이다.

황혜신 조각가는 사람들에게 이와 같은 질문을 던진다. 당신에게 있어 아이란 무엇이냐고.

 

"우리가 무심코 스쳐 지나가는 이 아이들의 생각이 곧 사회 전체의 가치관을 주도하게 될 것이고, 사회도 덩달아 변화하게 될 텐데, 표면적이고 감각적인 속도감에 젖어 있는 우리들은 그들이 어떤 식으로 변화되고 침식되는지 깨닫지 못합니다. 세상은 너무나 어지럽고 눈앞은 마치 게임처럼 어지럽게 널려 있는데, 나아가는 것에 급급한 부모님은 아이가 넘어지기 전엔 속도를 줄일 생각도 하지 않습니다. 애정결핍, 욕설, 강요, 학대, 무시, 차별, 가정해체에 따른 방임, 감정적 체벌 등 아이들은 이러한 폭력에 너무나 쉽게 노출된 채 자라고 있습니다."

그는 애타는 마음으로 자신이 소망하는 세상에 대해 들려주었다. 사람들이 아이를 갖고 싶어 하는 세상, 아이들이 어른을 믿고 이 세상에 낳아주신 그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하게 되는 세상, 그 아이가 웃음을 잃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일을 찾아 긍정적인 삶을 포기하지 않는 세상, 그리고 그 아이들이 자신처럼 행복하게 자라날 아이를 꿈꾸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다고.